팔월여행 / 오남희 팔월여행 / 오남희 아직 한낮은 여름인데 가을을 지우는 귀뚜라미 소리에 햇살이 몸살을 앓는다 정오의 땡볕으로 쓰르라미 날개에 묻은 끈끈한 눈물을 닦아주려 힘을 쏟다가 마음을 흔드는 가을바람에 그만 누군가 그리워지는 팔월의 태양 다정한 손길로 한 계절을 거느리며 짧은 생을 .. 좋은 시 2019.03.20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 좋은 시 2019.03.19
흐름 / 박인수 흐름 / 박인수 끝 물 상추 하늘 향해 뒤집힌 우산 노릇하고 무성하게 핀 들깨꽃 뒤편 참나무 위 끼치 울음 땅 위 검정색 집토끼 두 발로 영역 표시하고 닭장 안 하얀 눈 사방 두리번두리번 혓바닥 내놓고 할딱할딱 사자개 한 마리 그 뒤 코스모스 위 하얀 나비 넘나들고 밭 너머 저 멀리 잘 .. 좋은 시 2019.03.17
고로쇠 나무 / 박덕규 고로쇠 나무 / 박덕규 이른 봄 숲속 둥지를 살피던 까치 주사기 꽂고 있는 나무들을 보며 "식구들 모두 링거 맞고 있구나" "아니야 지금 헌혈 중이야" 좋은 시 2019.03.15
꽃잔치 / 오남희 꽃잔치 / 오남희 칼바람 추위를 뿌리에 보듬고 머리카락보다 가는 꽃줄기 겨자씨 같은 꽃망울들 밀어 올리며 지상으로 가는 길을 내고 있다 창 밖은 빙벽의 겨울 다섯 개의 꽃잎을 지니고 산고를 밀치고 피어난 쌀알만한 꽃송이들 실바람이 키운 인내와 빙점하 찬기운으로 이뤄낸 찬기운.. 좋은 시 2019.03.14
개여울 / 김소월 개여울 / 김소월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 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해적일 때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 좋은 시 2019.03.12
보리 싹 / 박덕규 보리 싹 / 박덕규 고추바람 귓불 때리면 큰 나무들도 잉잉 우는데 보리 새싹들은 참 이상해 누가 꼬드겼기에 꼭 추울 때 돋아날까? 입술 파랗게 떨며 맨발로 서 있는 보리 싹 좋은 시 2019.03.09
해질녘 고향 / 오남희 해질녘 고향 / 오남희 땅거미 찾아오는 해질녘 여기저기 타오르는 모닥불 뿌연 연기에 마을은 하나로 엉킨다 마당을 가득 점령한 잡초들을 뽑아 태우노라면 매콤한 고향 냄새가 옛 구석진 유기농 거름처럼 구수하다 평상에 누워서 바라본 별들로 가득 차 있는 하늘은 예나 지금이나 가슴.. 좋은 시 2019.03.08
들길에 서서 / 신석정 들길에 서서 / 신석정 푸른 산이 흰구름을 지나고 살 듯 내 머리 위에서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림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나.... 푸른 산처럼 든든하.. 좋은 시 2019.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