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상고사 43

제1장 고구려의 대 중국과의 전쟁에서의 패배

제1장 고구려의 대(對) 중국과의 전쟁에서의 패배 1, 발기의 반란과 제1 환도 - 현 개평의 잔파 기원 197년에 고국천왕이 궃기고(죽고) 그를 이을 후손이 없었다. 이에 왕후 우씨(于氏)가 좌가려(左可慮)의 난(亂) 이후로 정치에 입을 벌리지 못하고 답답하게 궁중에 처박혀 있다가, 왕이 궃기자 정치무대에 다시 등장할 열망으로 애통해, 하기보다는 오히려 기뻐하면서 국왕의 사사(喪事)를 감추고 발표하지 않은 채, 그날 밤 미복(微服)차림으로 비밀리에 왕의 첫째 아우인 발기(發岐)의 집으로 찾아가서 발기를 보고, ”대왕은 대를 이을 아들이 없으니 그대가 후계자가 될 자가 아니냐.“ 고 하면서 그를 꾀이는 말을 하였다. 그러나 발기는 순나부(順那部)의 고추가(古鄒加)로서 환도성간(丸都城干:환도성의 성장)을 ..

조선 상고사 2022.01.02

제5장 차대왕의 피살과 명림답부의 전권

제5장 차대왕의 피살과 명림답부의 전권(專權) 1. 차대왕의 20년 전제(專制) 차대왕이 태조의 선위(禪位)를 받아 20년 동안 고구려에 군림하여 전제(專制)를 실행하다가, 연나조(椽那皂衣) 명림답부(명림답부(明臨答夫)에게 시해(弑害)를 당하였다. 그러나 차대왕 본기가 너무 간략하고 빠진 곳이 많아 그가 어느 정도로 전제정치(專制政治)를 하였는지, 그리고 시해를 당하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이에 의 차대왕 본기 전문을 여기에 번역하여 실은 다음 한 번 논의해 보고자 한다. 세 자는

조선 상고사 2021.12.19

제5장 차대왕의 피살과 명림답부의 전권

제5장 차대왕의 피살과 명림답부의 전권(專權) 1. 차대왕의 20년 전제(專制) 차대왕이 태조의 선위(禪位)를 받아 20년 동안 고구려에 군림하여 전제(專制)를 실행하다가, 연나조(椽那皂衣) 명림답부(명림답부(明臨答夫)에게 시해(弑害)를 당하였다. 그러나 차대왕 본기가 너무 간략하고 빠진 곳이 많아 그가 어느 정도로 전제정치(專制政治)를 하였는지, 그리고 시해를 당하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이에 의 차대왕 본기 전문을 여기에 번역하여 실은 다음 한 번 논의해 보고자 한다. 세 자는

조선 상고사 2021.12.12

제4장 차대왕의 왕위 찬탈

제4장 차대왕(次大王)의 왕위 찬탈 1, 태조(太祖)의 가정불화(家庭不和) 왕자 수서(遂成)이 이미 요동을 회복하고 한(漢)의 세폐(歲幣)를 받게 되자 태조는 그의 공을 포상하여 에 임명하여 군국대사(軍國大事)를 총 책임지게 하였다. 그리하여 권력과 위세가 그의 한 몸에 집중되고 그의 성망(聲望)이 천하에 떨치게 되었다. 만약 수성이 이 성망을 이용하여 나아가 요서(遼西)를 쳤더라면 삼조선(三朝鮮)의 서북 옛 강토를 전부 회복하기가 용이하였겠지만, 그러나 가정에 대한 그의 불평과 불만이 공명(功名)에 대한 열정을 감소시켜, 이에 요동을 회복한 다음 날 한(漢)의 강화 요구를 받아들이고 (앞의 장(章)에서 설명하였음-원주) 귀국하였다. 그의 가정불화(家庭不和)란 무엇인가? 수성은 태조(太祖)의 서자(庶子)..

조선 상고사 2021.12.05

제3장 태조, 차 양 대왕의 한족 축출과 옛 강토 회복

제3장 태조(太祖), 차(次) 양 대왕의 한족(漢族) 축출과 옛 강토 회복 1, 한(漢)의 국력과 동침(東侵)의 배경 모본왕이 한 때 요동(遼東)을 회복하였다는 것은 이미 제1장에서 말하였지만, 모본왕이 시해(弑害)당한 뒤에 태조가 7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국내의 인심이 위기가 닥칠까봐 의심하므로 요서(遼西)지방에 10개의 성(城)을 쌓았으나, 이때에 한(漢)의 부강함이 절정에 달하여 중국 유사(有史)이래 최고라 할 수 있게 되었다. 명장(名將) 반초(班超)가 서역도호(西域都護)가 되어 지금의 서아시아의 차사(車肆). 선선(鄯善) 등의 나라들을 멸망시키고 지중해(地中海)에 임하여 대진(大秦 : 지금의 이태리-원주)과 신식(信息)과 통하여, 백색 피부의 키 큰 인종과 양피지(羊皮紙)에 가로로 쓴 문자에..

조선 상고사 2021.11.26

제 2장 태조, 차 양 대왕의 문치

제2장 태조, 차 양 대왕의 문치 1, 태조. 차. 양 대왕의 세계의 오류 왕조의 세계가 틀렸는지 아닌지를 안다고 해서 사가가 아는 체 할 것은 아니지만, 고대사는 연대의 사실이 언제나 왕조의 족보에 딸리어 전하기 때문에 그 틀린지의 여부를 가리게 되는 것이다. 이제 첫 번째로 태조의 세계를 살펴보기로 하자. 이전 사서(삼국사기)에서는 태조는 유류왕의 아들 고추가 재사의 아들이고, 또한 대주류왕의 조카라고 하였다. 그러나 유류왕은 이미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연대 삭감 내에 포함된 제왕이고 광개토경호태왕의 16세 조상이므로, 모본왕에게는 3세조가 될 것이고 태조에게는 4세조가 될 것이니, 따라서 유류왕이 태조의 부친인 재사의 부친이라고 한 것은 착오로 인한 기록이거나 아니면 거짓 기록이다. 재사는 그 작..

조선 상고사 2021.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