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고구려의 대(對) 중국과의 전쟁에서의 패배 1, 발기의 반란과 제1 환도 - 현 개평의 잔파 기원 197년에 고국천왕이 궃기고(죽고) 그를 이을 후손이 없었다. 이에 왕후 우씨(于氏)가 좌가려(左可慮)의 난(亂) 이후로 정치에 입을 벌리지 못하고 답답하게 궁중에 처박혀 있다가, 왕이 궃기자 정치무대에 다시 등장할 열망으로 애통해, 하기보다는 오히려 기뻐하면서 국왕의 사사(喪事)를 감추고 발표하지 않은 채, 그날 밤 미복(微服)차림으로 비밀리에 왕의 첫째 아우인 발기(發岐)의 집으로 찾아가서 발기를 보고, ”대왕은 대를 이을 아들이 없으니 그대가 후계자가 될 자가 아니냐.“ 고 하면서 그를 꾀이는 말을 하였다. 그러나 발기는 순나부(順那部)의 고추가(古鄒加)로서 환도성간(丸都城干:환도성의 성장)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