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인생은 덧없고 예술혼은 길게 남는다

운우(雲雨) 2016. 10. 18. 22:32

인생은 덧없고 예술혼은 길게 남는다.

이런 문구는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것이기에 그리 대수로울 것도 없었다.

그러나 이번 통영의 문학기행은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문학기행 이었다.

그냥 한국소설가협회의 봄 세미나 겸 문학기행이니 그냥 다녀왔다고 생각하면 그만이겠지만 이번 기행은 특별한 순서가 마련되어 있었다.

아침에 서울을 떠날 때부터 다음날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어서 그런지 하늘은 회색빛이었다.

밑으로 내려가며 차창으로 보이는 산과 들의 모습은 우중충한 색깔에서 연둣빛 색깔로 바뀌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논에는 비닐 못자리가 조성이 되어 있었지만 아직 농부들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간간히 산에는 겹 벗꽃이 피어 있고 하얀 조팝꽃이 오월을 밝히고 있다.

이제 산과 들의 색깔은 녹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는 모습이다.

함양을 지나 산청으로 접어들며 진주 남강의 상류의 모습이 들어온다.

그쪽이 고향이라는 김현진 작가의 설명이 있었다.

남강 땜의 물이 너무 맑고 깨끗해 부산에서 그 물을 끌어가고 싶은데 경남에서 반대 한다는 것이다.

좋은 것이 있으면 서로 나누어 먹는 것이 전통적인 우리의 인정이고 풍습인데 세상은 참으로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자연이 보여 주는 모습은 아름답기만 하다.

굽이굽이 돌아 바위에 부딪치며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내려가는 남강 상류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다.

조금 더 가니 통영 시가지와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일단 통영 문인협회의 환영을 받으며 경상대학교 해양과학대학에서 저녁식사가 준비 되어 있었다.

바다 도시답게 싱싱한 회가 푸짐하게 나온다.

모두 배부르게 포식을 하고 경상대학에서 박경리 선생님의 세미나가 열렸다. 우선 이동하 소설가협회 대표 이사장의 대작 <토지>와 작가의 신념이란 주제로 강연이 있었고 전 한국여성문인회 회장이었던 소설가 김지연 선생님의 박경리 문학과 통영이란 주제로 발표가 있었다.

세 번째는 박경리 선생님의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제목으로 ‘산다는 것. 옛날의 그 집. 여행. 홍합’을 낭송으로 듣는 시간을 가졌다.

반가운 것은 김지연 선생님을 만난 것이다. 80세가 다 된 나이지만 아직도 정정한 분이다. 옛날 내가 청년 때 본 소설 <씨톨>이란 소설을 쓴 분이다.

또 김우종 교수를 만난 것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소설가라기보다는 수필가로 더 유명한 분이다.

그분이 쓴 <인생과 예술> <돌과 속삭인 인생노트>는 그분의 해박한 명작 해설을 곁들인 감칠 맛 나는 엣세이집이다.

이제 모두 연로하여 세월의 흔적이 역력해 인생무상을 느끼게 했다.

어둠이 깔린 통영의 밤은 더욱 아름다웠다.

마음이 그냥 숙소에 있으라고 두지를 않는다.

최정호 김웅기 선생과 함께 바닷길을 따라 통영시내로 향했다.

바다에 투영되어 반사되는 불빛이 아름답다.

통영에 오면 충무 김밥과 오미사 꿀빵과 물회를 먹어야 통영에 왔다 간 것이란다.

그래서 찾았지만 충무김밥과 물회는 먹을 수 있었지만 끝내 오미사 꿀빵을 먹을 수 없었다.

약 4~ 5km의 거리를 걸어 들어오니 과학대 연구동 앞에 손경형 등 몇 명이 앉아 있다.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오락회가 펼쳐지며 뭉치게 된 것이다.

12시가 넘어서야 그 오락회가 끝이 났다.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안개가 자욱하다.

샤워를 마친 후 밖으로 나왔다.

캠퍼스를 한 바퀴 도니 시간이 꽤나 걸린다.

그러나 공기가 맑아 기분이 상쾌하다.

아침을 먹고 청마 유치환 문학관으로 향했다.

문학관을 들려 청마의 생가를 들렸다.

청마의 생가는 한약방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청마 문학관을 돌아본 후 이순신 장군 공원으로 향했다.

이순신 장군 공원은 정말 아름다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곳이었는데 그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바다와 산, 바위, 자연의 조화가 너무도 절묘하게 어우러진 모습이 감탄사를 연발케 했다.

과연 한국의 나폴리라 하더니 과연 아름다운 항구도시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그리고 점심식사 후 박경리문학관개관기념식에 참석하게 되어 있었다.

3시부터 기념식이라 시간이 있어 기념관 공원 위에 위치한 선생의 묘지로 향했다.

선생님의 묘는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검사 출신의 개인 소유 땅이었는데 선생님의 독자였기에 아낌없이 그 땅을 희사했다고 한다.

아주 아름다운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고 하루에도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의 묘소를 찾는다 한다.

묘소를 돌아보고 내려가니 개관식의 진행이 시작되려 한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자리가 없을 정도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

물론 서울 등 먼 곳에서 박경리 선생님의 기념관을 축하 하러온 독자 및 팬들이었다.

묘소를 오며 원로 소설가와 한 대화다.

“역시 한 사람의 소설가는 위대했습니다. 아무리 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장관을 지냈다 할지라도 이렇게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찾아오지 않을 겁니다. 소설 토지가 있고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예술인 박경리 선생님은 소설가로서 영원히 한국인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원로 작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이런 명예만 얻을 수 있다면 죽으면 아무 쓸데도 없는 돈이 무슨 필욘가. 죽어도 살아 있는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이지. 원래 인생은 덧없는 것이고 예술혼은 긴 것이지.“

그는 갔지만 그의 위대한 작품인 토지는 언제까지나 한국인의 가슴에 녹아 영원히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여행을 한다.

그러나 말 그대로 여행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해야한다.

나로선 이번 여행이 나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나를 찾게 된 것 같아 유익했던 여행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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