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의 문학 오페라

슬픈 얼굴의 기사 돈키호테

운우(雲雨) 2021. 12. 26. 21:27

슬픈 얼굴의 기사 돈키호테

 

세르반데스의 소설(돈키호테)

맛네의 오페라(돈키호테)

 

누가 무슨 소릴 해도 젊음은 아름답고 좋은 것.

이 행복이 나를 낙원으로데려갑니다.

 

유난히 힘든 인생에 대해 얘기할 때 우리는 흔히 "파란만장한 인생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그런데 작가 중에서 세르반데스처럼 파란만장한 인생"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도 없을듯 하다. 그는 스스로를 시 쓰는 일보다 불행에 더 이력이 난 인물"로 묘사할 정도로 고난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독서광 세르반테스 

 

미켈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1547, 1616)는 1547년 스페인 마드리드 근교의 대학 도시 알칼라 데 에나레스에서 한 하급 귀족의 일곱 자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떠돌이 의사였는데, 세르반테스를 비롯한 가족들은 아버지가 일자리를 옮길 때마다 스페인 여러 도시를 떠돌아 다니는 불안정한 생활을 해야했다.

세르반테스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대학교육을 받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1569년 마드리드 학교에 재직 중이던 후안 로페스 데 오요스라는 사람이 책을 냈는데, 여기에 세르반테스의 시가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오요스 밑에서 공부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오요스는 엄청나게 박학다식한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책에 세르반테스의 시를 소개하면서 "나의 소중한, 사랑하는 제자," 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로 미루어 세르반테스를 무척 아끼고 사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오요스는 20대였던 세르반테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당시 세르반테스는 글이 인쇄되어 있는 것이라면 찢어진 종이 쪼가리까지 읽을 정도로 엄청난 독서광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독서를 통해 스스로 터득한 인문학적 처신과 인본주의자였던 스승 오요스의 가르침이 세르반테스가 작가로 성장하는 지적 원동력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창 혈기왕성한 청년 시절, 세르반테스는 안토니오 데 시구라라는 친구와 결투를 벌이는 와중에 왕이 있는 성에서 무기를 꺼내서는 안 된다는 법을 어긴 죄로 사법 당국의 수배를 받는 신세가 되었다. 체포되면 오른손을 잘리고, 10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해야 하는 중죄였다. 결국 그는 벌을 피해 마드리드에서 도망을 쳐 스페인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이탈리아 로마로 갔고, 그곳에서 사제로 일하고 있는 먼 친척의 도움으로 아쿠아비바 추기경의 비서가 되었다. 

르네쌍스의 중심지인 이탈리아에서 세르반데스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다. 추기경을 수행하면서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 로마 등 이탈리아의 유서 깊은 도시들을 두루 여행했으며, 이탈리아어와 고전 라틴어를 배우고, 이탈리아 르네쌍스 작가들의 작품에 심취했다. 이런 이탈리아에서의 생활은 작가로서 세르반테스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레판토해전의 영운

 

그러던 그가 어느 날 너무나 의외의 선택을 했다. 현지에 주둔하고 있는 스페인 함대에 자진해서 입대한 것이다. 1571년, 레판토해협에서 교황청과 베네치아공화국, 스페인의 연합 함대가 투르크 함대와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에서 세르반테스는 왼팔에 총상을 입고, 평생 왼팔을 못 쓰는 불구가 되었다. 이것으로 그는 '레판토의 외팔이,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그의 나이 24살 때였다. 

1575년, 세르반테스는 군복무를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다. 당시 그는 왕의 동생과 나폴리 총독이 스페인 왕 앞으로 보내는 추천서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을 왕에게 보이면 모종의 혜택을 받을 것이 분명했지만 운명의 신이 훼방을 놓았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도중 알제리에 근거를 둔 이슬람 해적들에게 붙잡혀 포로가 된 것이다. 그의 품에서 추천서가 발견되자 세르반테스는 졸지에 거물급 인사로 분류되었다. 

해적은 거물급 인사의 몸값으로 엄청난 금액을 요구했다. 가난한 세르반테스 가족에게는 그만한 돈이 없었고, 그는 포로로 비참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노예 생활은 무려 5년 동안 계속 되었다. 그동안 네 번이나 탈출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다가 그의 가족들과 삼위일체회의 노력으로 몸값을 지불하고 간신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때가 1580년, 그의 나이 33살 때였다. 

막상 집이라고 돌아와 보니 가족은 그의 몸값 때문에 빚더미에 올라 앉아 있었다. 레판토 해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용사였고, 그 때문에 이교도에게 잡혀 온갖 고초를 겪었지만, 어렵사리 돌아온 고국에 그를 위한 일자리는 없었다. 1587년, 세르반테스는 세비야로 가서 당시 영국과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던 무적함대의 보급관으로 취직했다. 보급관으로 일하면서 그는 왕에게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일자리를 청하는 편지를 보냈지만 거절당했다. 이때 허가 없이 말을 내다 팔았다는 이유로 투옥되기도 했다. 

1594년부터 세르반테스는 세무 공무원으로 일했다. 허지만 말단직이었던 그는 늘 돈에 쪼들였다. 이 직업이 그에게 도움을 준 것이 있다면 세무 공무원으로 스페인 곳곳을 돌아다니며 각 지방 사람들의 특성을 관찰하는 기회를 가졌던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 일도 얼마 되지 않아 그만두어야했다. 당시 경제공황의 여파로 거래하던 은행이 파산하자 그 책임을 지고 투옥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에게는 시련이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유배 생활 중에 <신곡>을 썼던 단테가 그랬고 <예프게니오네긴>을 썼던 푸시킨이 그랬다. 또한 도스트예프스키는 도박 빚에 쪼들리다가 <노름꾼>이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다. 세르반테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세비야 감옥에서 몇 달을 보내는 동안 일생의 역작이 된 <돈키호테>를 구상했다. 

세르반테스는 마흔이 다된 나이에 작가로 데부했다. 1585년, 처녀작<라 갈라테아>를 시작으로 <누만시아>, <알제리에서의 삶>을 잇달아 내놓았다. 그리고 1597년부터 <돈키호테>를 쓰기 시작해 1605년에 제1부를 완성했다. 책은 불티나게 팔렸지만, 정작 작가인 세르반테스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지금과 같은 저작권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이어 1613년 중편소설 12편을 모아 놓은 <모범소설집> 1614년 시집<파르나소로의 여행>, 1615년 돈키호테> 2부와 <극작품들과 단막극들>을 발표했다. 그리고 병석에서 페르실레스와 시히스문다>를 유작으로 남기고 1616년 세상을 떠났다.

 

서양 문학의 보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출간 당시부터 독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 작품을 유쾌한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라는 캐릭터가 빚어내는 흥미진진한 얘깃거리로만 여겼다. 

<돈키호테>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 진 것은 18세기로 이때 언어 예술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다가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철학자, 역사가, 사상가, 비평가, 정치가 등이 이 소설의 복합적인 메시지를 탐구하고자 다양한 시도를 거듭하면서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는 인간 내면에 공존하는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오늘날 <돈키호테>는 서양 문학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작품으로 꼽힌다. 세계 여러 나라 말로 번역 되었으며, 순수 문학 작품으로 지구촌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디킨스, 도스트예프스키, 조이스와 같은 작가 뿐만 아니라 작곡가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으니, <돈키호테>를 소재로 대략 50편의 작품이 쓰였다.

 

모험의 길을 떠나다

 

중년의 향사 알론소 키하노는 너무도 열심히 기사소설을 읽은 나머지

마침내 현실과 환상을 혼동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결국 그는 책을 읽는 데 너무나 열중한 나머지 몇 날 밤을 한숨도 자지 않고 말똥말똥한 상태로 지새곤하는 반면, 낮에는 완전히 비몽사몽이었다. 이렇게 잠도 자지 않고 책만 읽다보니 머리속이 푸석푸석해지는가 싶더니 결국은 이성을 잃어버리기에 이르렀다. 머리속이 책에서 읽은 마법 같은 이야기들, 즉 고통과 전투, 도전, 상처, 사랑의 밀어들과 연애, 가능치도 않은 갖가지 일들로 가득차버린 것이다. 그는 책에서 읽은 몽환적인 이야기들이 진실이라고 생각했으며, 이 세상에서 이보다 더 확실한 이야기는 없다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중략)

사실상 그는 이성을 상실해버렸기 때문에 세상 그 어떤 미치광이도 생각지 않았던 이상한 생각을 시작했다. 조국을 위해 헌신하는 편력 기사가 되어무기를 들고 말 등에 올라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지금까지 읽었던 소설 속 편력 기사들의 모험들을 직접 실천에 옮겨 자신의 이름과 명성을 길이 남겨야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기사에게는 무기와 투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그는 조상님들이 쓰던 낡은 무기를 꺼내 손질하고, 얼굴 가리개가 떨어져 나간 투구를 고친다. 그리고 말라빠진 말에게 로시난테라는 귀족적인 이름을 붙이고, 자기 자신에게도 기사에 어울리는 돈키호테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런 다음 기사에게 필요한 것이 또 무엇인가 생각하다가 사랑하는 여인을 떠올린다. 기사에게 있어 무기, 투구, 말, 하인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귀부인과의 사랑이다. 기사로서의 풍모를 갖추려는 돈키호테에게는 사모하는 여인을 찾아내야하는 또 하나의 과제가 주어진다. 사랑 없는 편력 기사는 열매 없는 나무요, 영혼 없는 육체이기 때문이다.

 

편력 기사에게 다반사로 일어나는 만큼 내가 운이 좋아서건 혹은 나의 원죄로 일어난 불행이건 어쨌든 거인을 만나 그 거인을 한방에 꺼꾸러뜨리거나 몸을 두 동강 내어 승리를 거두고 거인을 무릎꿇게 한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 거인이 내 사랑스런 여인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가련한 목소리로 말하게 하는거야.

"저는 말린드라니아섬의 통치자인 거인 카라쿨리암브로입니다. 칭찬받아 마땅하신 기사돈키호테 데라만차 님과 단 한 번의 결전으로 패자가 되었습니다. 그 기사께서는 저에게 부인을 찾아가 덕망 높으신 부인의 처분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공상을 하면서 돈키호테는 자신이 이름을 붙여줄 만한 여인을 생각해낸다. 그의 마을 근처에 한 농부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기사의 사랑을 받을 만큼 예쁘거나 고상하지도 않은, 그저 평범하기 그지없는 처녀였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그녀를 기사의 사랑과 칭송을 받아 마땅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설정한다. 정작 처녀 자신은 돈키호테가 누군지 모르고 있는데 말이다. 그녀의 이름은 알돈사 로렌스였다. 돈키호테는 그녀에게 다른 이름을 붙여주기로 하고, 공주와 귀부인에게 어울릴 만한 이름을 찾았다. 그러다 드디어 ,음악적이고' 신비롭고, 의미심장한, 둘시네아 텔 토보소라는 이름을 생각해낸다.

돈키호테는 둘시네아의 사랑을 얻고자 로시난테를 타고 모험에 나선다. 먼저 그가 도착한 곳은 라만차 지방의 한 주막집이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이곳을 성이라고 생각하고, 주막집 주인과 창녀가 보는 가운데 편력 기사가 되는 엉터리 의식을 치른다. 이튿날 돈키호테는 길을 가다가 만난 톨레도의 상인들에게 둘시네아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요구하다가 매질을 당한다. 매를 맞고 만신창이가 되어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을 때, 이웃 사람이 그를 알아보고 집으로 데려온다. 

집에서 돈키호테를 돌보는 조카 딸과 가정부, 마을 사제는 돈키호테가 기사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서 머리가 이상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집에 있는 책을 모두 불태우기로 한다. 이때 사제가 책을 한 권씩 집어 들고, 이것을 불에 태울까 아니면 그냥 놓아둘까  판단하는 대목이 있는데, 바로 여기에서 세르반데스의 박학다식함과 문학적 소양이 그대로 드러난다. 돈키호테가 소장하고 있는 책에는 세르반데스의 첫 번째 소설 <라 갈라테아>도 있다. 여기서 그는 사제의 입을 통해 세르반데스라는 작가를 ,시 쓰는 것보다 불행에 더 이력이 난 인물' 이라고 평가한다. 

이렇게 해서 사제는 돈키호테의 조카딸, 가정부와 공모해 돈키호테테의 정신건강에 해롭다고 생각하는 책들을 모두 불태워버린다. 돈키호테가 자기 서재에 있는 책이 모두 없어졌다고 말하자사제는 이 모든 것이 마법을 부리는 무리들의 소행이라고 둘러대고, 돈키호테는 이를 철석같이 믿는다. 하지만 책을 모두 불태워버려도 소용이 없었다. 보름 동안 집에서 조용히 요양하면서 몸을 추스른 돈키호테는 또다시 모험에 나설 준비를 한다. 기사에게 시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머리가 둔한 이웃집 농부 산초 판사를 구워삶아 시종으로 삼는다. 그리고 앞으로 섬을 손에 넣게 되면 그를 그 섬의 영주로 만들어 주겠다고 그에게 약속한다. 아둔한 농부는 그 말을 믿고 처자식을 버리고 돈키호테의 뒤를 따라 나선다. 

이렇게 해서 두 번째 모험에 나선 돈키호테는 거대한 풍차를 거인으로 알고 무고하게 풍차로 달려든다. <돈키호테>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으로, 현실을 무시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이상을 무모하게 추구하는 이상주의자의 상징으로서 돈키호테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도망치지 마라. 이 비열한 겁쟁이들아. 이 기사님께서 너희들을 대적하러

왔노라. 네 놈들이 거인 브리아레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팔이 1개, 머리가 50개 달린 거인)보다 더 많은 팔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내게 값을 치러야할 것이다.

 

돈키호테는 온 힘을 다해 사랑하는 여인 둘시네아에게 자신을 맡기고, 위기에서 도와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 다음 풍차로 돌진한다. 하지만 풍차 날개에 치여 무참하게 깨지고 만다. 

이후 돈키호테는 비스카야인과 싸움을 벌이고, 양떼들을 군대라고 착각하고 공격하며, 둘시네아를 위해 산속에서 고행을 하고, 주막집에서 포도주를 담은 가죽부대를 거인이라 착각하는 기행을 벌인다. 돈키호테는 이 두 번째 출정에서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우리에 갇히고 소달구지에 실린 채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여기까지가 제1부이다.

 

10년 만에 나온 속편

 

<돈키호테>1부가 세상에 나온 지 9년이 지난 1614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당신는 <돈키호테>가 엄청난 호응을 받으며 널리 읽혔던 시절이었다. 이런 때 알론소 페르난데스 데 아베야네다라는 필명의 작가가 <돈키호테>의 속편을 내놓은 것이다. 세르반데스는 바짝 긴장했다. 원작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한 그는 한동안 손놓고 있었던 <돈키호테> 속편 집필에 박차를 가했다. 그로부터 1년 뒤, 1부가 출판되고 10년이 지난 1615년 돈키호테가 한 달간 집에서 요양하다가 세 번째로 집을 나서는 내용의 속편 <기발한 기사 돈키호테 데 라만차>를 내놓았다. 속편은 ,행동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명제로 이달고에서 기사가 된 돈키호테와 그의 종자산초가 한 일들이 책으로 출판되어 세간의 호평을 받으며, 이제 세상 사람들 모두가 돈키호테의 행적에 대해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이야기가 시작된다.          

속편에서도 돈키호테의 기행은 계속된다. 여기서 세르반테스는 원작자인 자기보다 먼저 속편을 내놓은 아베야네다를 경계하고자 아베야네다가 쓴 돈키호테 이야기가 가짜라는 사실을 여러 차례 밝힌다. 속편에서 돈키호테는 전편과는 다른 대접을 받는다. <돈키호테>전편이 크게 인기를 끈 후, 돈키호테는 이미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그를 알아 보았다. 전편에서 돈키호테는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속편에서는 그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진다. 그가 미치광이라는 것ㅇㄹ 알지만, 그를 놀릴 속셈으로 겉으로는 정중하게 기사 대접을 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공작 부부이다. 이들은 돈키호테를 자기 집으로 초대해 온갖 예우를 베푼다. 심지어 돈키호테가 시종인 산초 판사에게 약속한 섬을 다스리는 권리를 주기로 한다. 공작 부부의 목적은 이렇게 돈키호테를 마음껏 골려먹는 것이지만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는 이를 진짜 현실로 믿는다. 자신들이 놀림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말이다. 

보다 못한 돈키호테의 친구인 삼손 카라스코가 그를 고향으로 데리고 가려는 계획을 세운다. 돈키호테를 고향으로 보내기 위한 방법은 단 하나 기사로 변장해 그와 결투를 벌여 이기는 것이다. 그래서 승리한 기사의 권한으로 그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는 것뿐이다. 결국 카라스코는 기사로 변장해 돈키호테와 결투를 벌인다. 결투의 결과는 카라스코의 승리, 진 동키호테는 카라스코의 명예와 찬사를 보낸 후 쓸쓸하게 귀향길에 오른다. 산초는 여행이 끝난 것을 진심으로 기뻐한다. 

돈키호테는 고향에서 가족들의 병간호를 받는다. 죽음의 병상에 누워 있는 그의 옆에는 예전에 그를 공상으로 몰고갔던 소설책들이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다. 하지만 그 책들은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되었다. 그가 환상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돈키호테는 이렇게 고백한다. 

 

이제 나는 자유롭고 맑은 이성을 가지게 되었단다. 그 증오할 만한 기사도 

책들을 쉬지 않고 지독하게 읽은 탓에 내 이성에 내려앉았던 무지의 어두운

그림자가 이제 없어졌단다. 그 책들이 가지고 있었던 터무니 없음과 속임수

를 이제야 알게 되었어. 이런 사실을 이렇게 늦게 깨달아, 영혼의 빛이 될 다

른 책을 읽음으로서 얼마간이라도 보상할 시간이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는것

이 단지 원통할 뿐이다.(중략)

이미 편력 기사에 대한 불경스런 이야기들은 모두 나에게 증오스러운 존재

가 되었오. 그런 책들을 읽음으로써 내가 빠졌던 아둔함과 위험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오. 하느님의 자비로 내 머리가 교훈을 얻어 그런 책들을 혐오

하게 되었나이다.

 

돈키호테가 환상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안 카라스코는 둘시네아 귀부인이 마법에서 풀려났다는 등 그의 환상을 부추기는 여가지 이야기를 하지만, 돈키호테는 이제 그런 농담은 집어치우라고 말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심하게 미쳤던 사람이 갑자기 제정신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죽을 날이 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며 안타까워한다. 결국 돈키호테는 조용하 죽음을 맞는다 평생 공상을 쫓던 한 인간의 삶은 이렇게 막을 내린다. 카라스코는 돈키호테의 묘비에 이런 말을 새긴다.

 

그 용기가 하늘을 찌른 

강인한 이달고 이곳에 잠드노라.

죽음이 죽음으로도

그 목숨을 이기지 못했음을 

깨닫노라.

그는 온 세상을 하찮게 여겼으니 

세상은 그가 무서워 

떨었노라. 그런 시절 그의 운명은 

그가 미쳐 살다가 

정신 들어 죽었음을 보증하노라.

 

마지막으로 세르반테스는 가짜 속편 작가에게 "이미 썩은 돈키호테의 뼈가 무덤 속에서 펀히 쉴 수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그를 다시 살려내는 일은 하지 말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으로 소설을 마무리한다. 

 

현실을 피해 환상으로

 

돈키호테가 허황된 기사소설에 심취했던 것처럼 한때 서양에서 기사소설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기사소설은 16세기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이때 스페인은 한마디로 ,잘나가는' 나라였다. 잇따른 정복 전쟁과 승리, 식민지의 확대, 라틴아메리카에서 들어오는 막대한 금은보화는 이를 담당한 군인계층, 즉 기사들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이때 스페인 사람들은 기사소설의 무용담에 열광했다. 세르반테스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작가로서의 삶을 지향하는 대개 무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세르반테스는 달랐다. 지나치게 기사소설을 많이 읽은 탓일까. 그는 소설 속 기사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투르크에 맞서는 스페인 전투함대에 자원입대했다. 심한 열병을 앓았지만 쉬라는 상관의 말을 무시하고 적과 싸우다가 부상당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에 다시 군으로 돌아갔고, 그 공을 인정하는 추천서를 가지고 귀국하다가 해적에게 붙잡혀 5년간 비참한 포로 생활을 했다. 

그런 다음에야 간신히 돌아온 조국의 예전의 잘나가던 스페인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당시 스페인은 전쟁에서 돌아온 용사들을 부양할 능력이 없었다. 오랜 복무를 마치고 귀국한 제대 군인들이 설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세르반테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먹고 살려고 체납 징수원으로 일하며 온갖 고생을 다해야했다. 그 과정에서 감옥도 가고 파문당하기도 하는 등 온갖 고초를 겪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기사의 영광이라는 돈키호테적 환상을 버리지 못했다. 1587년 스페인 무적함대에 군사 식량을 조달하는 일을 시작한 그는 그로부터 얼마 후 무적함대가 영국에게 속절없이 패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세르반테스를 이를 치욕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스페인 왕 펠리페 2세에게 영국에 대항해 다시 싸울 것을 제안하는 시를 두 편이나 쓰기도 했다. 

그것은 기사도가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은 세르반테스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자기가 몸과 마음을 바쳐 지켜온 세계가 허구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것을 인정하든지 아니면 미쳐버리든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세르반테스는 후자를 선택했다. 그것이 바로 돈키호테의 세계이다. 돈키호테는 환상을 현실로 생각했으며, 진짜 현실을 '마법에 걸린 것으로, 것으로 치부했다. 세르반테스는 자기 앞에 펼쳐진 참담한 현실을 ,마법'으로 생각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세상을 살아나갈 수 없었던 것이다. <돈키호테>는 과거의 낭만적이고 영웅적인 기사소설과는 다르다. 이 소설은 역설적이게도 기사도 정신이라는 것이 이제는 하나의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를 위해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살짝' 혹은' 심하게 미친 인간으로 만들었다. 이상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는 세상에서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환상의 세계에서 환상의 세계에서 사는 것, 즉 ,미치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돈키호테>를 읽다보면 과연 이 인물이 정말로 미치긴한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왜냐하면 미치광이 짓을 하다가 어느 순간 너무나 멀쩡한 인간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것도 인간과 사회, 역사, 종교, 사물에 대한 깊은 이해를 지닌 사려깊은 인간으로 말이다. 그렇게 돈키호테는 광기와 이성 사이를 종횡무진으로 오간다. 이 소설을 쓸 당시 세르반테스의 상태가 이랬 것이 아닐까. 한때 영광스런 조국 스페인의 기사였던 그였으나 천신만고 끝에 돌아온 조국은 그에게 아무런 보상도 해주지 않았다. 그는 돈키호테라는 인물을 내세워 참담한 현실로부터 도피했다. 그러다가는 어느 순간 인문학적 교양이 충만한 작가로 돌아오곤 했는데, <돈키호테>에는 이런 방황의 궤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돈키호테를 미치광이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는 제 정신으로 돌아온 돈키호테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온전한 정신의 돈키호테는 매우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는 통찰력이 뛰어나고,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따뜻하고 공평하게 대하는 매우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이다. 적어도 그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기만하거나 속이지 않으며, 자신의 신념에 충실하고 정직하다. 둘시네아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 우직함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광이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바로 그것이 돈키호테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슬픈 얼굴의 기사 돈키호테

 

프랑스의 작곡가 쥘 마스네(1842~1912)가 1910년에 발표한 오페라 <돈키호테>는 이렇게 진지한 돈키호테를 보여준다. 마스네는 비제의 뒤를 이어 19세기 프랑스 오페라를 대표하는 작곡가이다. 프랑스 몽토에서 태어나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서 공부했으며, 나중에 모교에서 교수로 일했다. 마스네는 여러 장르의 음악을 작곡했지만, 그중 주목할 것은 역시 오페라이다. 소설 <마농 레스코>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돈키호테>를 바탕으로 <마농>, <베르테르>, <돈키호테>를 작곡했고, 명상곡으로 유명한 오페라 <타이스>도 그의 작품이다. 

마스네 오페라의 특징은 주인공이 대부분 여성이며, 전체적으로 섬세하고 우아한 정취를 풍긴다는 점이다. 작곡가로서 마스네는 멜로디가 독창적이지만 호흡이 짧고, 영감의 긴장을 오래 지속시키지 못하며, 관현악법도 참신하지만 견고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프랑스 작곡가 뱅상 댕디는 그를 ,종교에 반하는 호색성을 전달한다.'라고 비판했으며, 논객 레온 도데는 그의 음악을 금조나 공작새가 꼬리를 펼치는 것같이 자극적이고 음탕한 것이라고 폄하했다. 

이렇게 여성적인 섬세함과 우아함을 사랑하는 작곡가가 어떻게 돈키호테 같은 엉뚱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을까. 사실 돈키호테는 마스네의 음악적 취향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이다. 바로 이 시점에서 밝혀야할 것이 있다. 마스네의 <돈키호테>는 세르반테스의 원작을 직접 오페라로 옮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오페라는 프랑스 작가 자크 르 로렝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서 영감을 받고쓴 <슬픈 얼굴의 기사 돈키호테>라는 희곡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세상에 나온 후, 여기에 영감을 얻어 수없이 많은 파생 작품이 나왔다. 처음에 이 소설은 그저 우수꽝스러운 캐릭터를 가진 돈키호테라는 인물의 기행을 그린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19세기 낭만주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돈키호테에 대해 새로운 해석이 내려졌다. 말하자면 현실 세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서글픈 ,이상주의자로 그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로렝의 <슬픈 얼굴의 기사 돈키호테>도 그중 하나이다. 로랭은 1856년 프랑스 베르주라크에서 태어났다. 처음에 구두 수선공으로 일하다 파리로 올라와 시인으로 활동했는데, 무명 시인이었던 탓에 늘 가난했다. 극심한 빈곤을 견디다 못해 한동안 구두 수선 일을 다시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건강에 이상이 생겨 파리를 떠나 따뜻한 남쪽 지방으로 가서 요양하던 중, 친구들의 도움으로 <슬픈 얼굴의 기사 돈키호테>가 빅토르 위고 극장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로렝은 이 작품에서 ,슬픈 얼굴' 다른 말로 하자면 현실로부터 외면당하는, 그럼에도 내면에 숭고한 신앙심을 가진 돈키호테를 창조해냈다. 그 ,슬픈 얼굴'은 또한 로렝 자신의 얼굴이기도 했다. 그는 무명 시인이었다. 당시 연극을 본 파라 사람 중에 로렝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로렝은 이런 자기 자신을 돈키호테의 모습에 투영했다. 그가 창조한 ,슬픈 얼굴의 기사' 라는 촉촉한 이미지는 어둠이 내린 저녁에 극장을 찾은 프랑스 관객들의 취향에 딱 맞아 떨어졌다. 로렝의 연극 <슬픈 얼굴의 기사 돈키호테>는 대단한 인기를 끌었는데, 바로 이것을 바탕으로 대본작가 앙리 캥과 작곡가 마스네가 합심해 오페라 <돈키호테>를 만들었다. 

 

광장의 돈키호테

 

막이 열리면 축제가 한창인 스페인의 마을 광장이 보인다. 멀리서 환호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간간이 들리는 가운데 퇴페적이고 관능적인 전주곡이 흐른다. 둘시네아 집의 발코니 밑에서 주앙, 로드리게를 포함한 청년 네 명이 둘시네아를 찬양하는 4중창<아름다운 숙녀, 매력의 여왕>을 부른다. 네 명이 모두 남자지만, 이 중 두 명은 소프라노가 남장을 하고 부르기 때문에 실제로는 테너와 소프라노가 남장을 하고 부르기 때문에 실제로는 테너와 소프라노가 함께 부르는 4중창이다. 여성의 음색이 들어가서인지 이 세레나데는 아주 신비롭게 느껴진다. 네 남자는 마을 사람과 합세해 둘시네아에게 모습을 보여달라고 애원한다.

이 말에 드디어 둘시네아가 모습을 드러낸다. 세르반데스의 원작에서 둘시네아는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돈키호테나 산초 판사의 입을 통해서만 언급될 뿐이다. 실제의 둘시네아는 텔 토보스 마을에 사는 농부의 딸이다. 그다지 예쁘다고는 할 수 없는 외모를 가진, 그저 평범한 농부 처녀일 뿐이다. 아무리 좋게 보려고해도 우아함, 고상함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하지만 돈키호테의 환상 속에서 그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여인이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한 돈키호테의 신념은 거의 광기에 가까운데, 다른 사람에게 그녀의 아름다움을 인정하라고 강요하다가 엄청 두드려 맞을 정도이다. 

어느 날 그는 산초와 함께 마을 길을 걷다가 당나귀를 타고 오는 둘시네아와 마주친 적이 있다. 그 평범한 모습과 그녀에게서 나는 예사롭지 않은 악취에 돈키호테는 당황한다. 하지만 그는 곧 악마가 마법을 써서 둘시네아의 모습을 추하게 바꾸어 놓은 것이라고 믿음으로써 이 상황을 정리한다.

그런데 마스네의 오페라에서 둘시네아는 원작의 둘시네아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여기서 그녀는 남자들을 상대로 웃음을 파는 화류계 여자로 나온다. 얼굴이 예뻐서 이 남자 저 남자로부터 구애를 받지만, 그녀는 그것이 진실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요염한 모습으로 <여자 나이 스물이 되면>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그런 종류의 사랑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얘기한다. 그녀는 무언가 특별한 사랑, 진실한 사랑을 원한다. 

이때 주앙이 들어와 근처에 돈키호테가 산초 판사와 같이 와 있는데, 그가 둘시네아의 연인이라며 떠들고 다닌다고 비웃는다. 그 말을 둘시네아가 듣고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다는 것이다. 오페라에서도 둘시네아는 돈키호테의 환상이다. 그는 화류계 여자인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고귀한 여자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어떤 고통과 희생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올리는 가운데 돈키호테가 산초 판사와 함께 등장한다. 두 사람은 사람들이 자기들을 향해 환호성을 외치는 것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다. 돈키호테는 산초를 시켜 거지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도록 한다. 산초는 이때문에 저녁밥을 굶게 되었다고 투덜거리지만 돈키호테는 모두 아낌없이 주라고 지시한다. 그런 다음 일장 연설을 한다. 

 

나처럼 사시오. 젊게 사시오. 사랑에 빠지시오.

누가 무슨 소릴 해도 젊음은 아름답고 좋은 것.

이 행복이 나를 낙원으로 데려갑니다.

기쁨이 우리의 길을,

선함이 인간의 가슴을

향기처럼 가득 채우기를,

들판위로, 시원한 바람 부는 숲 위로

태양이 영원히 빛나기를,

그 안에 달콤한 향기의 맛난 열매 그득하기를

시냇물과 개울들이 더 큰 소리로노래하기를

모두 모두 행복하기를.

 

여기서 돈키호테는 인생을 예찬하는 낙관주의자이자 낭만을 즐기는 로맨티스트이다. 젊음과 태양과 바람만 있다면 행복하다고 노래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다. 이 말에 사람들이 환호한다. 사람들이 모두 가고나자 돈키호테는 둘시네아의 집 발코니에서 <별이 떠오르고, 밤하늘의 어둠이 대지에 장막을 드리울 때>라는 세레나데를 부른다. 세레나데는 본래 밤에 사랑하는 여인의 창 밑에서 기타나 만돌린 같은 악기를 직접 뜯으면서 노래하는 사랑 고백이다. 이 점을 감안했는지 이 대목에서는 오케스트라의 현악기가 피치카토로 돈키호테의 노래에 반주를 한다.

하지만 달콤한 돈키호테의 세레나데는 연적인 주앙의 출현으로 방해를 받는다. 주앙은 돈키호테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두 사람이 한창 결투를 벌이고 있을 때, 멀리서 둘시네아의 목소리가 들린다. 주앙은 돈키호테를 조롱하면서 퇴장하고, 이어서 돌시네아가 들어온다. 돈키호테는 둘시네아를 흠모한다면서 사랑의 증표로 과달키비르 성을 그녀에게 바치겠다고 한다. 하지만 둘시네아는 이것이 전혀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그를 이용할 생각에 그에게 지극히 현실적인 제안을 한다. 자기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면 강도 테네브룬에게 빼앗긴 목걸이를 다시 찾아 달라는 것이다.

돈키호테는 그 말을 듣고 내일 당장 떠나겠다고 대답한다. 둘시네아는 돈키호테가 이상한 사람이지만 자신을 여신처럼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은근히 즐기며 자리를 뜬다. 혼자 남은 돈키호테는 그녀에게 부여받은 임무를 확실히 해낼 것이라고 다짐하는 노래를 부르는데, 멜로디가 앞에 나온 세레나데와 비슷하다. 비장한 각오로 길을 떠나는 기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로맨틱한 결전의 노래이다. 

 

풍차와 결투하다

 

돈키호테는 산초와 함께 둘시네아의 목걸이를 찾기 위한 모험에 나선다. 이때 돈키호테는 새로운 세레나데 <당신과 함께 있으리라>를 지어 부른다. 목관악기의 동일 유형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인상적인 세레나데이다. 둘시네아가 자기에게 임무를 주었다는 사실이 기뻤는지 이 세레나데는 앞의 것에 비해 분위기가 밝고 명랑하다. 

하지만 이때 산소가 들어와 찬물 끼얹는 소리를 한다. 어제 ,둘시네아 만세'를 외치던 자들은 실제는 사람이 아니라 까만 돼지와 염소들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오페라에서는 무엇이 현실인지, 무엇이 환상인지 확실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1막에 사람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높여 "고귀한 기사 돈키호테 데 라 만차!"를 외치는 대목이 있는데, 사실은 그것이 돈키호테의 환상이었다는 것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그렇게 이 오페라에는 현실과 환상이 모호하게 섞여 있다. 

산초는 둘시네아가 화류계 여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드러내놓고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여자가 어떤 존재인지 알려주는<이 못된 것들 Commet Peut -on penset du bien>이라는 아리아로 이를 암암리에 드러낸다.

 

이 못된 것들, 여우, 거짓말쟁이, 수다쟁이들을

어찌 그리 어여삐 여기시는지 

제일 낫다는 년도 아무 가치가 없구먼.

눈을 다소곳이 내려뜨고 다니는 

얌전한 여자들을 보자고요.

종종거리고 거리를 쏘다니며 

아이건 어른이건 할 것 없이

고상한 소리를 지껄이지요.

그런데 보세요.

갑자기 머리에 뒵집어 쓴 만틸라 아래로

눈이 반짝거리지요. 왜일까요?

비밀의 문이 열려 있는 걸 보았기 때문이죠.

겉으로 얌전한 척한 탕녀가 그 안으로 사라집니다.

그 사이 그녀의 남편은 

따분한 미사에 실증이 나서 

대가리를 연신 긁어대고 있지요.

계집들은 음탕하고 사악한 악마예요.

우리 남자들을 불행으로 몰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라고요.

 

산초는 호방한 목소리로 여자들을 다 ,요망한 것'이라 노래한다. 그 ,요망한 것'에는 돈키호테가 지고의 여인으로 여기는 둘시네아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미 환상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돈키호테는 이런 산초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데 바로 그때 또 다른 환상이 펼쳐진다. 돈키호테 앞에 커다란 거인이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사실 그것은 거인이 아닌 풍차이다. 그런데도 돈키호테는 풍차를 거인으로 생각하고, 풍차와 결투를 벌이려고 시도한다. 주인의 무모한 환상에 당황한 산초가 제동을 걸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돈키호테는 거대한 풍차를 향해 돌진한다. 긴박하게 흘러가는 음악과 함께 돈키호테의 공격이 시작된다. 돈키호테는 무모하게 풍차와 싸우다가 장렬하게 패배한다.

 

강도의 소굴에서

 

긴박한 음악이 회오리처럼 ㅈ나간 후, 무대는 또 다시 조용해진다. 앞에 나왔던 세레나데와 같은 선율의 간주곡이 흐르는 가운데 돈키호테와 산초가 강도들의 소굴로 들어가는 길목에 도착한다. 산초가 잠이들자 돈키호테는 로맨틱한 음악을 배경으로 둘시네아가 준 임무를 완수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바로 그 순간 강도들이 나타난다. 돈키호테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강도들에게 붙잡힌다. 두목은 그를 당장 해치워버리라고 명령하고, 강도들은 힘찬 목소리로 돈키호테를 나무에 매달면 참 볼만할 것이라고 말하며 줄거워 한다. 나무에 매달려 마지막 순간을 맞게된 돈키호테는 의연한 자세로 신에게 기돌ㄹ 드린다. 오르간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가 경건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그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던지 두목의 마음을 움직인다. 두목은 부하들에게 돈키호테를 풀어주라고 명령한다. 

위기를 모면한 돈키호테는 <나는 편력기사요.je suis lechevalier errant>에서 스스로 "악을 바로 잡는 편력기사, 한숨짓는 어머니들과 거지들과 억압받는 자들, 운명에게 버림받는 자들에게 한없이 친절한 방랑자, 불타는 태양과 맑은 대기와 하늘을 열렬하게 사랑하는 사람" 이라고 소개한다. 그런 다음 자기가 여기에 온 목적을 이야기 한다. 두목이 둘시네아의 고귀한 목에서 빼앗아간 목걸이를 되찾고자 함이라는 것이다. 그 말에 두목은 돈키호테에게 둘시네아의 목걸이를 돌려준다. 강도들이 "오! 고귀한 기사여"라며 그의 말 앞에 엎드리고, 돈키호테는 평소에 자기를 비웃던 이들이 자기 행동의 목적을 이해하게 되었다며 으스댄다.

 

실패한 사랑과 이별

 

4막의 무대는 둘시네아 집의 안뜰이다. 아름다운 간주곡이 흐르는 가운데, 둘시네아를 흠모하는 젊은이들이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하지만 둘시네아는 쓸데없는 짓이라고 이를 무시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기는 무언가 특별한 사랑, 고귀하고 숭고한 사랑을 원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의 처지를 잘 알고 있다. ,매춘부인 주제에 무슨 진지한 사랑?' 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그녀는 지금부터는 다 떨쳐버리고 사랑의 순간적인 쾌락만 생각하자고 노래한다. 

곧 이어 돈키호태와 산초 판사가 등장한다. 둘시네아는 설마 돈키호테가 목걸이를 가져왔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가 목걸이를 내놓자 매우 놀란다. 주어진 임무를 완수한 돈키호테는 그녀에게 청혼을 한다. 둘시네아는 비웃듯이 "나와 결혼해 주시오." 라는 돈키호테의 말투를 여러 차례 반복해서 흉내 내고, 이를 지켜 보던 사람들 역시 비웃는다. 이 말에 돈키호테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자 미안한 생각이 든 둘시네아는 돈키호테에 사과한다.

 

당신의 슬픔에 저도 괴로워요. 마음이 정말 무겁네요.

하지만 저는 당신의 환상을 깨야해요.

그래서 당신의 청혼을 거절한거예요.

당신에 대한 진지한 사랑을 

이렇게나마 증명해보이고 싶어서요.

당신을 속이면 제 마음이 아플 것 같아요.

내 영혼, 내 입술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것,

이것이 저의 운명이에요.

저처럼 불결하고 가치 없는 여자 때문에 

당신이 고통을 받고 있다니,

제게 욕을 하세요. 복수하세요.

 

둘시네아는 돈키호테가 자신의 실체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자기는 남자를 상대로 몸과 영혼을 파는 화류계 여자, 돈키호테가 상상하는 그런 고귀한 여성이 아니기에 그의 진실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처럼 그의 환상을 부추기고, 적당히 그것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그러는 것은 돈키호테를 속이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자기가 그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이라고 말한다. 

돈키호테는 기사처럼 둘시네아에게 무릎을 꿇고 그녀를 축복한다. 하지만 산초는 돈키호테가 둘시네아와 같은 천한 여자를 너무 정중하게 대한다고 비난한다. 그때 사람들이 들어온다. 그중 한 사람이 돈키호테는 희생양인 체하는 바보에 불과하다고 비웃자 둘시네아는 그를 ,숭고한 바보' 라고 일컫는다. 그러자 산초가 돈키호테를 비웃는 사람들에게 <비웃어요. 모두들, 이 가여운 이상주의자를Riez, allez, riez du Pauvre ideologue>>이라며 이렇게 외친다.

 

 꿈속에 사는 가여운 이상주의자.

예수님처럼 오직 사랑과 선함만을 이야기하던 사람을

어디 맘 껏 비웃어들 보시오.

그의 구멍뚫린 양말과 다 해진 윗도리와

흙에 절은 반바지를 야비하게 조롱해 보시오.

당신들, 천박한 악당, 아첨꾼, 창녀들,

이 성자와 같은 사람 발밑에 엎드려여야할 것들이.

가요, 위대한 분.

우리 새로운 모험을 찾아 떠나요.

가서 비굴한 놈들을 해치우고

불행한 이들에게 선의 빵을 나누어주자고요.

 

산초는 장대한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추어 돈키호테의 위대함을 노래한다. 그리고 절망에 빠진 돈키호테에게 새로운 모험의 길에 나서자고 재촉한다. 하지만 이미 기운이 쇠진한 돈키호테는 더는 일어나지 못한다.

 

돈키호테의 죽음

 

막이 오르기 전에 간주곡이 나온다. 첼로의 명상적인 선율에 영광과 오욕으로 점철된 지난날에 대한 회한이 묻어난다. 막이 오르면, 별빛이 가득한 밤, 산속에 누워 있는 돈키호테가 보인다. 현악기들이 저음의 유니슨으로 몽상가의 마지막을 쓸쓸히 노래한다. 음악이 점점 고조되자 산초가 꿈이 실현되는 저 세상에서 부디 편히 쉬라고 기원한다. 그 자리에서 돈키호테는 자기는 기사가 사라진 시대의 마지막 기사로서 선한 일을 했고, 이를 위해 용감히 싸웠다고 회고 한다. 마지막으로 돈키호테는 산초에게 전에 약속했던 섬을 주겠다고 하면서 아름다운 섬의 풍광을 노래한다. 하지만 사실 이 섬은 현실의 섬이 아닌 꿈의 섬이다. 그런 다음 돈키호테는 눈을 들어 하늘을 본다. 별 속에 둘시네아의 모습이 보이고, 멀리서 아련히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돈키호테가 황홀경에 빠져 죽음을 맞는 장면에서 바이올린이 하프 반주에 맞추어 애절한 멜로디를 연주한다. 그 탐미적인 음향이 돈키호테의 마지막을 신비로움으로 감싼다.

 

극적 일관성의 부재

 

마스네의 오페라에 나오는 돈키호테는 참으로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다. 거대한 풍차를 향해 돌진할 때는 헛된 공상에 사로잡힌 미치광이로 보이다가도 사람들 앞에서 일장 연설을 하거나 신에게 기도를 올릴 때에는 자유로운 영혼의 로맨티스트 혹은 종교적 심성이 충만한 박애주의자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돈키호테의 캐릭터에 일관성이 없는 것은 대본 때문이다. 알리 캥이 쓴 이 오페라의 대본은 세르반테스의 소설과 다르고, 로렝의 희곡과도 다르다. 

앙리 캥은 대본을 쓰면서 로렝의 원작을 상당 부분 삭제하거나 수정했다. 그리고 세르반테스의 원작에 나오는 부분을 삽입하기도 하고, 자신의 창작을 집어 넣기도 했다. 오페라 전 5막 중에서 로렝의 원작을 그대로 살린 부분은 돈키호테가 강도들과 만나는 3막과 그의 죽음을 그린 5막에 불과하다. 그리고 5막의 풍차 장면은 세르반테스의 원작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나 만약 세르반테스의 원작을 그대로 살려서 오페라 대본을 썼다면 아마 마스네는 오페라를 작곡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마스네가 <돈키호테>를 오페라로 작곡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로렝이 새롭게 창조해낸 둘시네아라는 인물 때문이었다. 세르반테스의 원작에서 둘시네아는 돈키호테가 환상 속에서 만들어낸 인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로렝의 희곡에서 그녀는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이다. 이제까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바탕으로 스없이 많은 작품이 만들어졌지만, 둘시네아를 실존 인물로, 그것도 고귀한 여성이 아닌 뒷골목 창녀로 바꾸어 놓은 것은 로렝의 작품이 처음이었다. 바로 이 점이 마스네로 하여금 오페라를 작곡하고 싶은 욕망에 불타도록 했다. 

마스네가 <돈키호테>를 작곡한 시기는 20세기 초였지만, 정신적으로 그는 여전히 19세기의 낭만주의자였다. 낭만주의 오페라 본령은 남녀상열지사이다. 이런 오페라에는 반드시 여자 주인공이 나와 매혹적인 아리아를 부른다. 하지만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줄거리상 여자 주인공을 허용하지 않는다. 원작 속의 둘시네아는 환상 속위 여인이며, 다른 사람의 대화 속에나 등장할 뿐 그 자신은 단 한마디도 않는다. 따라서 둘시네아를 주인공으로 삼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마스네처럼 섬세한 여성 취향의 오페라를 작곡해온 사람에게 둘시네아의 변신은 필연이었다. 그런 그가 로렝의 <슬픈 얼굴의 기사 돈키호테>를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둘시네아가 돈키호테와 대화를 주고받는 현실의 여자가 됨으로써 마스네는 <돈키호테>라는 오페라에 여성 가수를 세울 수 있는 명분을 얻었다. 아울러 주인공 돈키호테도 매우 시적인 인물로 묘사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마스네는 사랑이라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주인공 돈키호테에게 공상이 아닌 진짜 사랑을 만들어주고, 그로 하여금 그녀에게 보내는 달콤한 세레나데를 부르게 했다. 

마스네의 <돈키호테>는 명료한 색체감과 속삭이는 듯한 멜로디를 자랑하는 아주 매혹적인 오페라이다. 하지만 이것을 하나의 드라마로 보았을 때, 그다지 잘된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우선 주인공 돈키호테의 캐릭터에 일관성이 없다는 점이 눈에 띈다. 도대체 이 오페라 속의돈키호테는 어떤 인물인가? 1막에서 거지들에게 돈을 나누어주며 인생과 행복에 대해 그토록 멋진 연설을 하던 사람이, 별이 빛나는 밤에 둘시네아를 향해 그토록 아름다운 시를 쓰던 사람이, 2막에서는 느닷없이 미치광이가 되어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이 뜬금없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아마 앙리 캥은 ,돈키호테'라는 제목 값을 하는 장면이 하나라도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소설 <돈키호테>에서 가장 상징적인 풍차 장면을 집어넣은 것이 아닐까. 사실 이 장면이 없다면 이 오페라를 굳이 ,돈키호테'라고 할 이유도 없다. 등장인물들의 이름만 빼면 세르반테스의 원작과 로렝의 희곡이 통하는 점이 별로 통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로렝의 희곡에서 돈키호테는 매우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인물로 그려진다. 실제로 3막에서 돈키호테가 강도들에게 잡혔을 때 그는 스스로를 "세상의 악을 바로 잡는 편력기사, 한숨짓는 어머니들과 거지들과 억압받는 자들, 운명에게 버림받는 자들에게 한없이 친절한 방랑자"라고 소개한다. 이런 진지한 인물과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미치광이를 어떻게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어쩌면 오페라 속에서 전개되는 모든 이야기가 돈키호테의 환상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이 모든 것이 정말로 돈키호테의 환상이었다면, 마스네의 오페라는 그 환상을 너무 진지하고 아름다운 음악으로 표현한 셈이 된다. 그래서 무언가 앞뒤가 안 맞는 느낌을 주는, 희극 같기도 하고 비극 같기도 한 오페라가 된 것이다. 그것이 고도의 중의법이었는지 아니면 드라마에 대한 이해 부족이 빚어 낸 실수였는지는 오페라를 보는 각자가 판단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