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의 문학 오페라

세기 말의 데카당스

운우(雲雨) 2022. 1. 27. 08:09

세기 말의 데카당스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

리하르토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

 

프랑스 파리 동쪽 끝에 있는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에는 로시니, 쇼팽, 비제, 들라크루아, 아르망, 발자크, 프루스트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와 문인들의 무덤이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오스카 와일드의 무덤이다. 왜냐하면 공동묘자에 있는 무덤 중에서 유일하게 유리벽에 둘러싸여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1999년, 누군가가 묘지에 붉은 립스틱 자국을 남겼는데, 그것을 시작으로 참배객마다 입맞춤을 해대는 바람에 묘지가 온통 붉은 립스틱 자국으로 뒤덮였다고 한다. 더 이상 무덤이 더럽혀지는 것을 볼 수 없었던 유족과 묘지 관리소 측은 결국 2011년에 유리벽을 세웠다. 

하지만 만약 땅속에 누워 있는 와일드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뭐라고 했을까. 무덤이 지저분해도 좋으니 그냥 내버려두라고 하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그는 언제나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고, 또 누군가를 사랑해야만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말년에 극심한 가난과 고독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죽은 후에는 좀 호사를 누려도 된다. 평생 사랑을 갈구했던 그에게 붉은 립스틱으로 대변되는 팬들의 무차별적인 애정 공세는 어쩌면 축복인지도 모른다.

 

탐미주의의 아이콘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 는 1854년 10월 16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유명한 의사이자 고고학자였던 아버지와 시인이자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9살 때까지 집에서 홈스쿨링을 받앗고, 그 후 포토라 왕립학교를 거쳐 더블린 트리니티 대학과 옥스퍼드 모들린대학에서 공부했다. 대학 시절 특히 고전학에 뛰어나서 장학금과 함께 그리스어 우등상, 인문학 학위 취득시험 1등상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와일ㄷ의 대학 생활, 그중에서도 특히 옥스퍼드에서의 4년은 그가 지적으로 성장하는 데 매우 중요한 시기로 꼽힌다. 이때 고전 문학과 인문학 분야에서 폭넓은 교양을 쌓았는데, 플라톤과 아릿토텔레스를 비롯한 그리스 철학은 물론, 스피노자, 괴테, 헤겔, 르낭, 보들레르의 작품에도 통달했다. 또한 문학적으로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해 <라벤나Ravenna>라는 시편으로 뉴디기트상을 받기도 했다.

와일드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옥스퍼드에서는 존 러스킨과 윌터 페이터 교수를 중심으로 탐미주의 운동이 펼쳐지고 있었다. 탐미주의란 예술의 미학적 기준을 도덕성이나 실용성에 두지 않고, 오로지 아름다움에만 두는 것을 말한다. 탐미주의자들은 예술을 다른 어느 것도 아닌, 오로지 아름다움 자체를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존 러스킨과 윌터 페이터 교수 외에 시인 앨저넌 스윈번, 화가 휘슬리가 이 운동에 동참했다.

와일드 역시 이에 매료되었다. 대학 시절부터 그는 소문난 탐미주의자였다. 이런 탐미주의적 성향은 그의 차림새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그의 사진을 보면, 그가 남자임에도 얼마나 옷차림에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다. 벨벳 재킷과 바지, 모피 코트, 비단 스타킹, 해바라기나 깃털 장식, 네로 스타일의 긴 머리 등, 당시로써는 분명히 ,튀는, 복장이었을 그의 차림새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으로 ,나는 탐미주의자, 라고 외치고 있다. 이런 와이드의 독특한 차림새는 곧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게다가 그는 입담도 아주 좋았다. 풍부한 지식과 교양, 달변과 유머로 탐미주의의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이런 그의 명성은 영국과 유럽 대륙을 넘어 멀리 미국에까지 날아갔다. 1881년에 길버트 설리번은 탐미주의 예술을 조롱한 <페이션스Patience>라는 코믹 오페라를 발표했는데, 이것이 미국에서도 인기를 끌면서 탐미주의의 아이콘인 와일드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덕분에 와일드는 미국에서 초청을 받았다. 1882년 1월, 미국 뉴욕에 더착한 와일드는 그로부터 1년 동안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강연을 했다. <페이션스>를 본 미국 관객들은 와일드를 만나면 그를 실컷 비웃어줄 생각이었는데, 강연을 들은 후 그의 천재성과 폭넓은 교양에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1884년 5월, 와일든ㄴ 부유한 왕실 변호사의 딸 콘스탄스 로이드와 결혼식을 올리고 첼시에 살림을 차렸다. 1885년과 1886년에 장남 시릴과 차남 비비안이 잇달아 태어났다. 그후 와일드는 직장을 지키고 틈틈이 창작에 매진하는 등 평범한 가장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1886년부터 2년간<여성세계>지의 편집장을 지내면서 대표적인 단편소설 <아서 새빌 경의 범죄>와 <캔터빌의 유령>을 썼다. 1888년에는 동화집 <행복한 왕자>, 1889년에는 논문 <허언의 쇠퇴>와 단편 소설 <W. H씨의 초상>1891년 장편<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발표했다. 

 

더글러스와의 만남

 

오스카 와일드의 생애를 볼 때, 작가로서 그의 전성기는 1891년이라고 할 수 있다. 이해 4월에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5월에 논문집<의도>, 7월에 단편 소설집<아서 새빌 경의 범죄>외, 11월에 동화집<석류나무 집>이 출간되었고, 12월에는 파리에서 단막극 <살로메>를 탈고하는 등 문학적으로 풍성한 결실을 거둔 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와일드는 알고 있었을까. 작가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리던 바로 그때, 후에 자신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불행의 씨앗이 싹트고 있었다는 것을, 그 불행의 씨앗은 엘프리드 더글러스와의 만남이었다. 더글러스는 퀸즈베리 후작의 아들로 와일드보다 열여섯살이나 어렸다. 당시 그는 옥스포드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빼어난 외모에 약간의 문학적 재능이 있었으나 폭력적인 아버지에 대한 반감 때문인지 성격이 제멋대로였으며, 사생활 또한 문란했다. 그런데 이런 두 사람이 서로에게 빠져들었다. 와일드는 이미 결혼해서 자식까지 있는 몸이었다. 그런데도 그리스 조각을 닮은 더글러스와 부적절한 맺기 시작했다. 아마도 와일드는 본래부터 동성애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그것이 오랫동안 드러내지 앟고 있다가 미소년 더글러스를 만나면서 밖으로 표출된 것이 아닐까 싶다. 

당시 와일드는 연극 공연에 대한 로열티로 일주일에 100파운드씩 벌어들일 정도로 소위 ,잘나가는, 극작가였다. 그는 이렇게 벌어들인 돈을 더글러스와 함께 사치와 향략을 즐기는 데 썼다. 두 사람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방에에 오르내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와일드도 굳이 이것을 숨기려하지 않았고, 더글러스는 한술 더 떠서 오스카 와일드의 첫사랑이 바로 자신이라고 떠들고 다녔다.

두 사람의 관계는 둘의 관계로만 끝나지 않았다. 더글러스는 와일드에게 남창의 세계를 알려주었다. 틈날 때마다 더글러스는 와일드를 남창굴로 데려가곤했다. 이때부터 와일드는 지속적으로 저소득층 출신의 어린 남자들과 관계를 맺었다. 만남의 패턴은 늘 똑같았다. 와일드는 소년을 만나면 먼저 선물을 주고, 멋진 저녁을 먹인 다음, 호텔방으로 데려갔다. 그러고는 상상하기조차 역겨운 다양한 방법으로 육체적 향락을 즐겼다. 

사실 와일드와 더글러스의 관계는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더글러스는 곱상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다혈질인 데다가 경박하고, 신경질적이었다. 그가 향락과 사치를 즐기는 속물이라는 사실은 와일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끝내 더글러스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끊임없이 돈과 애정을 요구하는 더글러스에게 지쳐 이별을 고하기도 했으나 얼마 가지 못했다. 와일드는 더글러스의 집요함과 자살하겠다는 협박에 못 이겨 그를 다시 만났다고 했으나 이것은 핑계에 불과했다. 와일드 자신도 더글러스의 치명적인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더글러스 때문에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고, 나중에 감옥까지 가는 신세가 되었지만, 와일드는 언제나 더글러스의 애정과 관심을 갈망했다. 

혹자는 더글러스가 와일드와 ,그렇고 그런' 관계라고 떠벌리고 다닌 것은 사이가 나쁜 자기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 때문이었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실제로 더글러스의 아버지 퀸즈베리 후작은 잔혹하기로 이름난 사람이었다. 아내를 채찍으로 때리기까지 했다고하니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더글러스는 독재자처럼 군림하는 아버지에게 엄청난 증오를 품고 있었다. 그래서 모욕적인 내용의 편지와 전보를 끊임없이 아버지에게 보냈다. 

한편 퀸즈베리 후작은 아들이 와일드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1895년, 그는 와일드가 자주가는 클럽에 '남색한을 자처하는 오스카 와일드에게"라고 쓴 명함을 남겼다. 공공연하게 동성애자라는 비난을 받게 된 와일드는 격노했다. 그러자 더글럿가 그의 분노에 불을 댕겼다. 자기 아버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라고 와일드를 부추긴 것이다. 와일드는 처음에 망설였으나 더글러스가 소송비용까지 대주며 종용하는 바람에 결국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당한 퀸즈베리 후작은 변호사를 고용했다. 후작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려면 와일드가 실제로 남색을 한다는 것을 밝혀야만 했다. 그래서 변호사는 사립탐정을 고용해 와일드의 행실을 캐기 시작했다. 탐정은 와일드와 그렇고 그런 관계를 가졌다는 남자들을 찾아서 그들의 얘기를 기록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와일드의 사생활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후작의 변호사는 재판정에서 어떤 남자들을 만났는지, 그들과 어떤 짓을 했는지 낱낱이 폭로했다. 법정에 나와서 직접 증언을 한 남자도 있었는데, 그 내용은 차마 글로 옮기기 민망할 정도로 지저분한 것이었다. 그렇게 재판은 와일드에게 불리하게 돌아갔고, 마침내 후작의 주장이 허위사실이 아닌 ,진실'이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재판이 끝나자 퀴즈베리 후작은 와일드에게 불리한 증거와 자료들을 검찰총장에게 보냈고, 곧 와일드에 대한 체포 영장이 발부되었다. 친구들이 프랑스로 떠나라고 권했지만, 와일드는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그는 재판 끝에 남성들과 역겨운 외설 행위를 했다는 죄목으로 법정 최고형인 2년ㄴ의 강제 노역형에 처해졌다. 호기를 부리다 된통 당한 것이다. 

 

고통의 심연, 레딩 감옥

 

누구에게나 감옥 생활은 힘들고 불편한 법이다. 하지만 와일드는 보통 사람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왜? 그는 예술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탐미주의자였기 때문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말끔하게 차려입고, 화려한 촛대와 아름다운 그릇이 놓인 테이블에서 향긋한 와인을 마시며 우아한 만찬을 즐기던 그에게 감옥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당시 영국 감옥의 환경은 끔찍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열악했다. 죄수 중에서 그는 유일하게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었다. 옥수퍼드 출신의 이 엘리트에게 감옥은 그야말로 ,개와 돼지의 소굴' 보였을 것이다. 여기서 그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중노동에 시달렸다. 배고픔과 추위, 혼자 버려졌다는 외로움과 상실감, 중노동의 육체적 고통이 그를 괴롭혔다. 그는 이 참옥한 상황을 어쩔 수 없이 견디며 매일 같이 죽음을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는지도 모른다. 비록 육체는 죽지 않았지만, 진정한 탐미주의자 오스카 와일드는 이때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감옥에 있을 때 와일드를 가장 괴롭힌 것은 가족에 대한 연민이었다. 그는 감옥에서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그의 이름 자체가 어머니의 자랑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와일드 가문의 수치가 되고 말았다. 아들의 불행에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절망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내 콘스탄스는 자식들을 데리고 독일을 떠났다. 그리고 성을 ,와일드,에서 홀랜드로 바꾸었다. 가문의 치욕이 자식들에게 대물림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와일드는 이 사실을 알고 매우 ㅅㄹ퍼했다. 감옥에서 나온 후에 아들들을 만나려 했으나 끝내 만나지 못했다. 나중에 그에 대한 복권이 이루어졌을 때에도 후손들은 와일드라는 성을 되찾지 않았다.1898년 3월부터 와일드는 더글러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심연으로부터>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 편지에는 더글러스에 대한 와일드의 절절한 애증이 담겨있다. 내용 대부분은 더글러스와 그의 가족에 대한 비난이다. 한마디로 덕ㄹ러스가 위대한 천재 예술가인 자기를 완전히 파괴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더글러스를 만난 후 자기의 인생이 얼마나 엉망진창이 되었는지, 예술가로서의 창조적 감수성이 얼마나 고갈되었는지 쓰고 있다. 이렇게 내용은 비난 일색이지만, 글의 행간을 읽으면 그 비난의 격렬함만큼이나 간절한 애정의 갈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와일드는 자기가 더글러스 때문에 고초를 당하고 있음에도 그가 이에 합당하는 관심과 애정을 보이지 않는 것을  서운하고 괘씸하게 생각했다. 애정이 식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너무나 사랑하기에 그 상황을 견디기 힘들었다. 1897년 5월, 와일드는 형기를 모두 채우고 출소했다. 그리고 그해 8월 루앙에서 더글러스와 재회했다. 그 후 두 사람은 함께 이탈리아로 가서 동거를 시작했다. 물론 주변의 반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와일드는 "내가 그에게 돌아간 것은 심리학적으로 불가피한 것이었다." 라는 말로 일축했다. 그 자신의 고백에 의하면 와일드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아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동거는 오래가지 못했다. 와일드는 아내와 친구들 그리고 무엇보다 퀸즈베리 후작의 비난과 압박에 굴복해 결국 더글러스와 헤어졌다. 잃은 것은 사랑만이 아니었다. 그는 작가로서의 창조적 에너지도 잃었다. 1898년, 와일드는 레딩 감옥에서의 경험을 담은 <레딩 감옥의 노래>를 발표했다. 그것이 출소 후에 나온 그의 유일한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이었다. 비록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그는 예전의 불꽃같은 창조력을 다시 회복하지 못했다. 감옥이 그의 무덤이었던 것이다. 

그 후 3년 동안 와일드는 파리의 하숙집에서 더글러스를 비롯한 몇몇 가까운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며 연명했다. 이 무렵 그는 "나는 절대로 이 세기를 넘기지 못할 것 같아."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오스카 와일드는 20세기를 한 달 앞둔 1900년 11월 30일 세상을 떠났다. 

 

데카당스와 팜므 파탈

 

유럽의 19세기 말은 데카당스의 시대였다. 데카당스는 쇠퇴 혹은 퇴페라고도 번역되는데., 난숙기의 예술 활동이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정상적인 힘을 잃고 지나친 향락주의나 탐미주의에 빠지는 현상을 말한다. 세기 말에 나타난 일종의 병적 징후인데,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는 이런 병적 감수성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살로메는 전형적인 팜므 파탈로 그려져 있다. 팜므 파탈은 아름답지만, 그 치명적인 매력으로 상대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힘을 가진 여성을 말한다. 저항할 수 없는 관능미와 신비하고 이극적인 아름다움을 무기로 남자들을 유혹해 그들을 불행에 빠뜨리는 팜므 파탈이 예술 작품에 등장한 것은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그동안 수많은 팜므 파탈들이 예술 작품에 등장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팜므 파탈이 자신의 치명적인 매력을 마음것 발산한 시기는 데카당스 예술이 풍미하던 19세기 말이 아닐까 싶다. 데카당스 예술가들에게 세례 요한의 목을 베어 은쟁반에 담아오도록 요구한 살로메는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예술작품에서 살로메는 어머니의 말에 순종하는 순진무구한 소녀에서부터 자신의 욕망을 위해 엽기적인 일도 마다않는 악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미지로 묘사되는데, 세기말의 살로메는 당연히 엽기적인 악녀에 속한다. 

헤로디아의 딸이 세례 요한의 목을 베도록 한 사건은 신약성서 마태복음에 나온다. 이복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반한 헤롯 왕은 동생으로부터 그녀를 빼앗아 왕비로 삼았다. 남편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왕비가 된 헤로디아는 궁에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자신의 행실을 격렬하게 비난하는 세례 요한 때문에 영 마음이 불편하다. 세례 요한은 동생의 아내를 빼앗은 헤롯 왕과 남편을 배반한 헤로디아를 근친상간을 하고 간통을 한 사악한 인간이라며 싸잡아 비난했는데, 헤로디아에게 있어 이런 세례 요한은 눈엣 가시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세례 요한을 제거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기회가 왔다. 살로메의 춤에 반한 헤롯이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헤로디아는 딸을 사주해 세례 요한을 죽이고 그 머리를 쟁반에 담아오도록 했다. 헤롯은 결국 세례 요한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세례 요한의 머리가 담긴 쟁반이 들어오자 살로메는 이것을 헤로디아에게 가져다주었다. 

여기까지가 성경에 나와 있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름 없이 그냥 헤로디아의 딸이라고만 되어있다. 그 딸의 이름이 살로메라는 것은 역사가 플라비우스요제푸스의 저서를 통해 알려졌다. 살로메는 어머니의 말을 잘 듣는 순종적인 소녀였던 것 같다. 하지만 오스카 와일드는 이 어린 소녀를 전형적인 팜므 파탈로 거듭나게 했다. 와일드는 그녀로 하여금 세례 요한의 몸에 욕정을 품도록하고, 의붓 아버지인 헤롯 왕 역시 살로메에게 음흉한 욕심을 품도록 했다. 헤롯 왕이 살로메의 엽기적인 행동에 진저리를 치며 그녀를 죽이게 했다는 이야기 역시 오스카 와일드가 만들어 낸 것이다. 

1891년, 오스카 와일드는 <살로메>를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썼다. 왜 그랬을까? 그가 프랑스어에 매우 능통했다는 사실이 이에 대한 해답이 되는 않는다. 아무리 외국어에 능통하다고해도 모국어만큼 능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가 굳이 프랑스어로 작품을 쓴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살로메>를 쓸 당시 와일드는 상징주의 문학에 깊이 매료되어 있었다. 탐미주의 신봉자로서 당연한 일이다. 상징주의 문학에서는 단어의 의미보다 단어의 울림, 그 울림이 자아내는 암시성과 상징성을 중요시한다. 어떤 단어를 들었을 때, 듣는 이의 머리에 그 의미가 선명하게 각인되면, 단어가 지닌 암시성과 상징성은 오히려 퇴색되고 만다. 상징주의 문학에서 단어의 의미는 애매모호할수록 좋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늘 사용하는 모국어는 듣는 순간 즉각적으로 단어의 의미가 머릿속에 각인되기 때문에 상징주의의 도구로는 적합하지 않다.

와일드가 모국어인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살로메>를 쓴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영국 관객에게 ,낯선, 이국의 언어로 신비로운 고대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게다가 프랑스어는 세계 어느 나라 언어보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울림을 가진 언어가 아닌가. 그는 상징주의 작가인 마테를링크를 특히 좋아했으며, 그의 희곡에서 발현된 상징주의 언어로서의 프랑스어의 가능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와일드가 <살로메>에서 사용한 프랑스어 중에는 일반적인 프랑스 사람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도 있었다. 하지만 와일드는 오히려 이것이 작품에 참신함과 색채감을 부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살로메>는 런던 공연을 위해 1892년 6월부터 무대 연습에 들어갔다. 하지만 곧 공연 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다루고, 내용이 일반적인 영국 관객들이 받아들이기에 너무 파격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894년, 더글러스가 영어로 번역하고, 오브리 비어즐리가 삽화를 그린 <살로메>의 영문판이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무대 공연은 좀처럼 성사되지 않았다. <살로메>는 1896년 에 가서야 비로소 무대에 올랐는데, 그때는 불행히도 와일드가 레딩 감옥에서 옥고를 치르고 있을 때였다. 

 

데카당스의 진수<살로메>

 

궁정의 연회장이 내려다보이는 발코니에 병사들이 서 있다. 하늘에 달이 밝게 빛나고 있다. 극은 살로메를 사모하는 젊은 시리아 용병이 "오늘 밤 살로메 공주님이 너무나 아름답구나"라는 대사를 시작한다. 헤로디아의 시종이 그를 말리지만 그는 이 말을 마치 주문처럼 세 차례나 반복한다. 곧 살로메가 등장한다. 의붓 아버지인 헤롯 왕이 자기의 음흉한 눈길로 쳐다보는 것이 역겨워 그의 시선을 피해 연회장을 빠져나온 것이다.

그때 우물에 갇혀 있는 세례 요한의 소리가 들려온다. 호기심이 발동한 살로메는 시리아 용병을 시켜 세례 요한을 자기 앞에 데려 오게 한다. 그리고 세례 요한을 보자마자 그에게 한눈에 반한다. 그런데 이때 살로메를 매료시킨 것은 세례 요한의 정신이 아니라 육체이다. 세례 요한이 정치적, 종교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닌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녀는 현란한 언어로 세례 요한의 육체를 탐닉한다. 

 

나는 당신의 몸을 사랑해요. 당신의 몸은 낫질을 하지 않은 들판의

흰 백합처럼 하얗네요. 당신의 몸은 유대의 산에 쌓여 있다.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눈처럼 하얗네요. 아라비아 여왕의 정원에 핀 장미인들

당신의 몸보다 희지는 않을거예요. 아라비아 여왕의 향료 정원에 핀 

장미도, 나뭇잎을 비추는 새벽의 발길도, 바다의 젖가슴에 걸터 앉은

달님의 둥근 가슴도 당신의 몸처럼 하얗지는 않아요. 세상에 당신의

몸처럼 하연 것은 없어요. 당신의 몸을 만지게 해주세요.

 

하지만 세례 요한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그러자 살로메는 뿌루퉁해서 그의 몸에 대해 악담을 퍼붓기 시작한다.

 

요한, 내가 사랑하는 것은 당신의 머리카락이에요. 당신의 머리카락은

포도송이 같아요. 에돔의 포도나무에 달려 있는 검은 포도송이 같아요.

당신의 머리는 레바논의 삼나무 같아요. 사자와, 낮에는 숨어 지내는 

강도들에게 숨을 곳을 제공해 주는 레바논의 거대한 삼나무, 달이 얼

굴을 감추고, 별이 겁을 먹는 기나긴 어두운 밤도 당신 머리처럼 검지

는 않아요. 숲의 침묵도 그렇게 검지는 않아요. 세상에 당신의 머리카락

만큼 검은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그 머리를 만지게 해주세요.

 

그 말에 세례 요한이 몸을 만지지 말라고 소리치자 이내 머리카락에 대한 저주를 퍼붓더니 이번에는 그의 입술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당신의 입술이요. 당신의 입술은 상아로 된 탑

위에 붙은 빨간 띠 같아요. 상아 칼로 두 동강 낸 석류 같기도 하

고 티례의 정원에 핀 석류꽃은 장미보다 붉지만 당신 입술만큼 

붉지는 않아요. 왕이 납시었음을 알리어 적들을 겁먹게 하는 트

럼펫의 붉은 나팔소리도 당신 입술처럼 붉지는 않아요. 당신의

입술은 포도주 압축기에서 포도주를 밟은 발보다 더 붉어요. 신

전에 살며 사제들이 주는 먹이를 먹고 사는 비둘기의 발보다 더

붉어요. 당신 입술에 키스하게 해주세요.

 

이렇게 살로메가 세례 요한에게 열정적으로 구애하는 것을 보고 평소에 그녀를 연모하던 시리아 용병이 절망한 나머지 칼로 자기 몸을 찔러 자살한다. 하지만 살로메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세례 요한에 대한 욕망을 드러낸다. 요한이 다시 우물로 들어가고 난 후 헤롯 왕이 등장한다. 살로메에게 은밀한 욕정을 품고 있는 그는 그녀에게 함께 술을 마시고, 과일을 먹고, 옆자리에 앉기를 권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살로메는 그의 청을 거절한다. 왕이 딸에게 불순한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헤로디아는 제발 살로메에 대한 관심을 거두라고 타박한다. 그때 다시 헤로디아를 부도덕한 여자라고 비난하는 세례 요한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 소리를 듣고 헤로디아는 진저리를 친다. 살로메에게 여러 차례 추파를 던졌지만 거절 당한 헤롯 왕은 그녀에게 춤을 추라고 한다. 살로메는 처음에 거부하다가 추기만 하면 어떤 부탁도 들어준다는 왕의 말을 듣고 생각이 달라진다. 노예들에게 향수와 일곱 개의 베일을 가져오게한 다음 샌들을 벗고 춤출 준비를 한다. 이윽고 음악에 맞추어 살로메가 일곱 베일의 춤을 춘다. 발밑에 자살한 용병 대장의 피가 흥건히 고여 있으나 그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춤이 끝났을 때, 헤롯 왕은 매우 흡족해 한다. 그리고 살로메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그녀는 은쟁반 위에 요한의 머리를 가져다 달라고 한다. 놀란 헤롯 왕은 헤로디아가 시켜서 이런 요구를 하는 줄 알고 헤로디아를 비난하지만, 살로메는 똑바로 말한다. 어머니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가 원하는 것이라고, 헤롯 왕은 온갖 보석들의 이름을 나열하며 살로메를 달래지만 그녀는 끝내 고집을 꺾지 않는다. 그녀의 집요함에 질린 왕은 결국 요한의 목을 가져오게한다.

이어 망나니가 요한의 머리를 은쟁반에 담아서 가져온다. 살로메는 그것을 집는다. 왕은 망토로 얼굴을 가리고 헤로디아는 미소를 지으며 부채질을 한다. 나사렛 사람들은 무릎을 굻고 기도를 올린다. 소원대로 요한의 머리를 갖게 된 살로메는 그것을 부등켜 안고 이렇게 말한다.

 

요한 , 당신은 내가 당신 입에 키스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지. 하지만

이제 내가 할거야. 잘 익은 과일을 깨물어 먹듯이 내가 당신 입술을 깨

물 거야. 내가 그럴거라고 했지? 그런데 왜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거야.

내가 무서워서 보지 않으려는 건가? 그리고 빨간 뱀의 날쌘 독같은 당

신의 혀도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군. 아무 말도 않고 내게 독설을 퍼붓

던 빨간 독사가 이상하군. 그 빨간 독사가 왜 더 이상 꿈틀거리지 않지?

당신은 나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어. 나를 거부했지.내게 욕설만 퍼부

으면서, 나를 창녀라 생각했고, 음란한 여자라 생각했어. 헤로디아의

딸이자 유대의 공주인 나를, 그런데 나는 아직 살아 있고 당신은 죽었

어. 이제 당신의 머리는 내 것이 되어 내가 하고싶은 대로 할 수 있게

되었어.

 

헤롯 왕은 이 끔찍한 광경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리고는 헤로디아에게 당신의 딸은 괴물이라고 외친다. 두려움에 떨며 달빛과 별빛을 가리고, 횃불을 모두 끄라고 한 다음 서둘러 궁궐 안으로 도망치려 한다. 어둠 속에서 신들린 듯한 살로메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 당신의 입에 키스했어. 요한 당신의 입에. 그런데 입술에서 쓴

맛이 나네. 피의 맛인가? 아니야, 아마 사랑의 맛이었을 거야. 사랑은

쓰다고들 하잖아. 그러면 어때? 어떠냐고? 내가 당신의 입에 키스했

는데, 요한 당신의 입술에 키스하고 말았어.

 

바로 이때 달빛이 구름 속에서 나와 살로메를 비춘다. 그 모습을 보고 왕이 진절머리를 치면서 "저 계집을 죽여라" 라고 명령한다. 병사들이 달려들어 살로메의 몸을 방패로 짓눌러 죽인다. 

 

상징과 탐미주의

 

<살로메>는 데카당스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이 작품을 통해 추구한 아름다움은 곧 부패해버리는 시체와 같은 아름다움, 즉 파계적인 아름다움이다. 예술 작품에서 이런 파괴적인 아름다움은 늘 팜므 파탈을 통해 구현되어왔다. 와일드의 살로메 역시 팜므 파탈이다. 역대의 팜므 파탈 중에서 아마 가장 엽기적이지 않을까 싶다. 그동안 팜므 파탈이 등장하는 작품은 많이 있었지만 와일ㄷ의 <살로메>만큼 세기말적 징후로서 팜므 파탈의 치명적 이미지를 극명하게 드러낸 작품은 일찍이 없었던 것 같다. 

이 작품에는 안시가 많이 나온다. 그중에서 두드러지는 것이 ,달,을 통한 암시이다. 헤로디아의 시종은 달을 보고 마치 무덤에서 일어난 여인, 즉 죽은 여자같다고 하고, 젊은 시리아 용병 대장은 노란 베일을 쓴, 발이 은처럼 하얀 공주,조그맣고 하얀 비둘기가 앉아 있는 공주같다고 한다. 시종이 바라본 달은 극히 엽기적인 결말을 암시하고, 용병 대장의 눈에 비친 달은 살로메에 대한 그의 연정을 암시한다. 반면 헤롯 왕은 달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오늘 밤 달이 아주 이상하구만. 안 그렇소? 마치 여인을 찾아 사방

을 헤매는 실성한 여자같군. 실성한 여자 말이오. 그것도 알몸으로.

구름이 그녀의 알몸을 가리려고하자 그렇게 못하게하네. 하늘에 자

신의 알몸을 드러낸 채 술 취한 여자처럼 구름 사이로 물레를 감고

있군. 분명 애인을 찾고 있는 걸 거야.

 

밤, 달, 여자, 알몸, 구름, 술, 물레, 애인 등은 살로메를 향한 해롯 왕의 은밀한 욕망을 암시한다. 

살로메가 일곱 베일의 춤을 추는 상황에서도 암시가 등장한다. 살로메는 시종에게 향수와 일곱 개의 베일을 가져오게 한 다음 샌들을 벗고 맨발로 춤을 춘다. 향수, 일곱 베일, 맨발 등의 단어에서 살로메의 춤이 어떤 춤인지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해롯 왕은 살로메의 맨발을 하얀 비둘기, 나무에서 춤을 추는 하얀 꽃에 비유하며 순결한 소녀의 몸에 대한 은밀한 욕망을 드러낸다. 

한편 살로메가 세례 요한의 몸을 탐닉하는 장면에서는 화려한 탐미적 묘사가 눈길을 끈다. 그녀는 요한의 몸을 낫질하지 않은 들판의 흰 백합, 유대의 산에 쌓여 있다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눈에, 그의 머리카락을 에돔의 포도나무에 달려 있는 검은 포도송이, 레바논의 삼나무에, 그의 입술을 상아로 된 탑 위에 붙은 빨간 
띠, 상아 칼로 두 동강 낸 석류에 비유한다. 그런데 표현 방식이 모두 동일하다. 먼저 그의 몸, 머리카락, 입술을 '...같다 라는 식의 직유법으로 찬양한 다음, '이 세상 어느 것도 당신의 ...보다 못해요. 라는 비교법을 쓴다.  그리고 마지막에 마치 후렴처럼 '당신의 몸을 만지게 해주세요.' '당신의 머리카락을 만지게 해주세요.' '당신의 입술에 키스하게 해주세요.' 라고 간청한다. 음악으로 치자면 3절로 이루어진 노래와 같은 형태이다. 

하지만 살로메가 그토록 갈망하는 아름다움은 영속할 수 없ㄴㄴ 아름다움, 곧 부패하고 마는 아름다움이다. 

 

나는 당신의 아름다움을 갈망해. 당신의 몸을 갈망해. 술도, 사과도

내 갈등을 채우지는 못해.

 

아름다움에 대한 살로메의 갈망은 곧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엽기적인 결말에 도달한다. 그녀는 요한을 죽이고서야 비로소 그의 아름다음을 쟁취하게 된다.

 

요한, 내가 당신 입에 키스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지. 하지

만 이제 내가 할 거야. 잘 익은 과일을 깨물어 먹듯이 내가 

당신 입술을 깨물 거야. 내가 그럴 거라고 했지?

 

난숙기의 예술이 더 이상 갈 곳을 잃었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예술을 파괴하는 것이다. 세기 말의 예술가들은 아름다움에 탐닉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탐미주의는 그들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도구라는 사실을, 살로메가 그토록 탐닉하던 아름다운 요한의 몸, 그 아름다운 몸이 죽음을 맞은 순간, 탐미주의 시대도 막을 내렸다. 

 

모더니즘과 데카당스

 

연극 <살로메>는 공연 금지가 풀려 무대에 오른 후에도 대중의 인기를 끌지 못했다. 작품의 소재나 내용이 당시로서는 너무 파격적이고, 하룻밤 공연으로 무대에 올리기에는 길이가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주목받지 못하던 <살로메>에 새로운 빛을 던져준 사람이 있었다.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토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864-1949였다. 

슈트라우스가 연극 <살로메>를 처음 본 것은 1903년, 독일 베를린에 있는 소극장에서였다. 하지만 그는 그전부터 이미 작업을 하고 있었다. 대본은 와일드의 원본과 라흐만의 독일어 번역본을 바탕으로 슈트라우스 자신이 직접 썼는데, 몇몇 장면을 삭제한 것 외에는 문학성 높은 와일드의 원작을 거의 그대로 살렸다. 초연은 1905년 드레스텐 궁정 오페라극장에서 에른스트 폰 슈프의 지휘로 이루어졌다. 

예술사적으로 볼 때, 와일드의 <살로메>가 슈트라우스의 음악과 만난 것은 필연이었다. 이 엽기적인 작품에는 도대체 어떤 음악이 어울릴까? 사실 낭만주의는 탐미주의와 데카당스로 상징되는 세기말 병을 표현하기엔 너무 낡은 도구였다. 와일드의 <살로메>는 완전히 새로운 음악을 필요로 했다. 그때 슈트라우스가 등장했다. 

이 오페라를 작곡할 당시 슈트라우스는 낭만주의를 넘어 모더니즘으로 가고 있었다. 모더니즘의 선구자로서 그는 수세게 동안 서양 음악을 지배해온 조성의 굴레를 벗어던지고자 했다. 실제로 오페라 <살로메>에는 조성이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이 나온다. 서로 다른 조성이 동시에 등장해서 충돌하기도 하고, 파격적인 방식으로 조가 바뀌기도 한다. 유연하게 미끄러지는 반음계와 현란한 불협화음, 애매모호하고 신비한 화성, 변화무쌍한 리듬과 박자,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낯선 음색, 이렇게 새로운 음악의 도구로R, 슈트라우스는 <살로메>의 세기말적 병페와 팀미적 데카당스를 그렸다. 아이러니하게도 20세기라는 새로운 세기의 새로운 기법이 전 시대의 세기말적 징후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도구로 쓰인 것이다.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푸치니는 슈트라우스로부터 촉발된 음악의 모더니즘을 "알프스 저편에서 넘어 온 음악의 성병"이라고 비난했지만, 이런 '음악적 성병'말고 살로메의 성도착증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살로메>는 희곡이지만, 그 안에 이미 음악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와일드는 1889년에 발표된 마테를링크의 첫 희곡 <말렌 공주>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이때 그가 주목한 것은 문장과 단어, 모티프의 반복이었다. 대사에 리듬감을 주는 이 반복이 와일드에게는 마치 한편의 음악처럼 들렸는데, 이런 음악적 효과를 그는 <살로메>에서도 추구했다. 

이 작품의 구성은 마치 3절 형식의 노래와 같다. 각각의 사건과 대사가 형태와 내용을 달리하며 세 번씩 반복된다. 먼저 살로메가 시리아 용병 대장인 나라보트에게 세례 요한을 보게해 달라고 조르는 장면이다. 살로메는 그에게 세 번 간청하고, 나라보트는 매번 거절하다가 세 번째에 이르러서야 그녀의 청을 들어준다. 요한이 살로메 앞에 오자 그녀는 차례로 요한의 몸, 머리카락, 입술을 갈망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요한은 단호하게 이를 거부한다. 헤롯 왕 역시 살로메에게 세 가지를 청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살로메는 단호한 목소리로 거절한다. 여기서 요한과 살로메의 거부는 절마다 반복되는 노래의 후렴과 같다. 

헤롯 왕이 살로메에게 춤을 청하는 대목에서도 세 차례 반복이 나타난다. 살로메는 왕의 청을 거절하다가 세 번째에 가서야 비로소 그 청을 받아드린다. 살로메가 춤을 다 춘 다음 요한의 목을 요구할 때도 왕은 이를 대신할 세 가지 선물을 제시한다. 하지만 살로메는 그때마다 이를 거부하고 집요하게 요한의 목을 요구한다. 이 역시 노래의 후렴 같은 것이다. 이렇게 매번 세 차례에 걸쳐 나타난ㄴ 사건과 대사, 단어의 반복이 극에 일정한 리듬감을 부여한다. 굳이 음악을 안 붙여도 구성 그 자체가 이미 음악인 것이다. 오페라 <살로메>에는 유도 동기가 나온다. 유도 동기란 특정한 인물이나 특정한 사건, 상황을 묘사하는 짧은 선율을 말한다. 특정한 인물이나 사건이 등장할 때마다 이에 해당되는 유도 동기가 나타나는데, 바그너가 자신의 음악극에서 이런 기법을 즐겨 사용했다. 하지만 <살로메>의 유도 동기는 훨씬 복잡하다. 바그너의 그것처럼 명확하거나 동일한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주요 인물인 살로메나 세례 요한의 유도 동기는 비교적 명확하지만, 어떤 것은 너무나 복잡하고 변화무쌍해서 쉽사리 알아차릴 수 없는 것도 많다. 특히 헤롯의 유도 동기가 그렇다.  

 

오페라 <살로메>

 

막이 오르면 클라리넷이 미끄러지듯 상승하면서 살로메의 동기를 연주한다. 이어 시리아 출신 용병 대장인 나라보트가 "오늘 밤 살로메 공주님이 너무 아름답구나."라고 노래한다. 이때 첼로가 연주하는 동기가 나라보트의 동기이다. 나라보트는 오늘 밤 살로메가 아름다워 보인다는 말을 세 번 반복한다. 곧 이어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유대인이 종교에 대해 논쟁하는 소리인데, 오보에가 짧은 세잇단 음표로 연주하는 것이 논쟁의 동기이다. 바로 그때 우물 안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내 뒤에 나보다 더 강한 이가 오실 것이다. 나는 그의 신발을 닦을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다.

 

세례 요한의 목소리이다. 그는 단호하고 당당한 목소리로 예언을 하는데, 무겁게 상승하는 음형이 세례 요한의 동기이다. 

오보에와 바이올린의 다급한 움직임을 배경으로 살로멕 등장한다. 자기를 바라보는 헤롯 왕의 음흉한 눈길을 피해 연회장을 빠져나온 것이다. 그녀는 연회장에서 유대인이 종교적인 문제로 피 터지게 싸우고 있다고 비난하는데, 이때 앞에 나왔던 논쟁의 동기와 살로메의 동기가 어우러진다. 살로메는 달을 바라보며 행복해한다.

 

달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마치 은빛 꽃 같구나. 차갑고

순결해. 달은 숫처녀와 같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어.

 

살로메가 달을 찬양할 때 오케스트라가 달빛같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음색을 구사한다. 하지만 이런 달콤함도 잠시뿐, 곧 우물에서 어둡고 단호한 요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를 듣고 살로메는 목소리의 주인공에 관심을 보인다. 그녀가 호기심에 가득찬 표정으로 "그는 노인이냐?" 라고 물을 때, 오케스트라의 리듬이 야릇하게 움직인다. 

살로메는 요한이 갇혀 있는 우물에 깊은 공포를 느낀다. 

 

저 밑은 정말 어둡구나. 저렇게 어두운 구덩이에서 사는 것은 틀림

없이 끔찍할 거야. 마치 무덤 같구나.

 

오케스트라가 음산한 화음으로 살로메의 공포를 드러낸다. 그럼에도 살로메는 요한에게 호기심을 느낀다. 그래서 나라보트에게 요한을 만나게 해 달라고 조른다. 이때 오케스트라에 살로메의 동기가 여러 차례 나타난다. 살로메의 청을 못 이긴 나라보트는 결국 요한을 데려오라고 명령한다. 요한의 등장을 기다리는 동안 금관악기들이 가세하면서 음악이 점점 고조된다. 그러다가 마침내 요한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케스트라의 템포가 느려지고, 살로메는 야룻한 표정으로 요한을 바라본다.

금관악기 소리를 배경으로 요한이 "죄의 잔이 흘러 넘치는 그는 어디 있느냐? 은빛 가운을 입고 있는 그는 어디 있느냐? 모든 사람 앞에서 어느 날 죽음을 당하게 될 그 남자 말이다."라고 외친 다음 헤로디아에 대한 저주를 퍼붓는 동안 저음의 금관악기들이 포효한다. 

살로메는 이런 요한에게 묘한 애정을 느낀다. 탐미적인 오케스트라의 음악에 맞추어 아련한 목소리로 "너무나 야위었구나. 마치 상아로 만든 조각상 같아. 그는 달처럼 순결한 것이 틀림없어. 그의 몸이 상아처럼 차가울 것 같구나."라며 요한의 몸을 탐닉한다. 하지만 요한은 그녀가 헤로디아의 

달이라는 것을 알고 물러가라고 외친다. 요한에게 다가가고 싶은 살로메와 이를 거부하는 요한의 경고가 음악적으로 극명한 콘트라스트를 이루며 교대로 나타난다.

요한에게 반한 살로메는 세 번에 걸쳐 그를 유혹한다. 방식은 매번 동일하다. 먼저 요한의 몸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고, 그의 몸을 만지게 해 달라고 한다. 그러면 요한이 저주를 퍼붓고, 이에 뿌루퉁해진 살로메 역시 그의 몸에 저주를 퍼붓는다. 그런 다음, 이번에는 요한의 머리카락을 탐닉한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머리카락을 만지게해 달라고 한다. 이를 요한이 거부하자 살로메는 머리카락에 대해 악담을 늘어놓는다. 그리고는 관심을 요한의 입술로 돌린다. 살로메는 온갖 미사여구로 요한의 입술을 찬양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의 입술에 키스하게해 달라고 한다. 요한이 이를 거절한다. 

살로메가 요한의 몸과 머리카락, 입술을 찬양하는 대목에서 음악은 서정적으로 흐르기도 하고, 격정으로 치닫기도 한다. 요한에게 그의 몸을 만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청하는 대목은 매우 매우 낮은 소리로 간절하게 노래한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요한은 단호하고 음산한 음락으로 살로메의 청을 거절한다. 

사모하는 살로메가 요한의 육체를 갈망하는 것을 보고 나라보트는 절망한다. 그러지 말라고 살로메를 말리지만 소용없다. 이때 나라보트의 동기가 고통에 가득찬 모습으로 나타난다. 견디다 못한 그는 살로메 앞에서 자결한다. 하지만 살로메는 그것을 본체만체하고 계속 요한에게 키스해 달라고 조른다. 그러자 요한이 말한다. 

 

두렵지 않으냐? 헤로디아의 딸아. 간음의 딸아, 너를 구할 수 있는 

딱 한 사람이 있다. 가서 그분을 찾아라. 그는 갈리리 바닷가의 배에

타고 있다.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해변에서 무릎을 꿇고 그

를 부르라, 그가 그대에게 다가올 때 그의 이름을 부르라. 그는 자기

를 부르는 자에게는 누구든 다가간다. 그에게 절하고 네 죄를 사해 달

라고 간청하라.

 

여기서 요한이 말하는 '그분'은 바로 예수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요한이 예수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음악이 매우 온건해진다는 점이다. 19세기 음악으로의 회귀라고나 할까. 듣는 이의 귀를 자극하던 온갖 현대적 기법이 자취를 감추고, 누가 들어도 조성이 명확한, 듣기에 매우 편안한 보통 음악으로 돌아간다. 슈트라우스는 그런 방식으로 살로메와 예수를 구분했다. 

요한이 퇴장한 후, 매우 극적이고 격렬한 오케스트라의 향연이 펼쳐진다. 그것이 앞으로 다가올 엽기적인 비극의 전주곡 같은 느낌을 준다. 이렇게 격렬한 오케스트라의 포효가 지나고나면, 고음 현악기의 트레몰로와 함께 무대가 조용해진다. 금관악기의 불안한 울림에 이어 오케스트라 악기 전체가 연주하는 불협화음이 들려온다. 분위기가 음산해진다. 이때 서두르는 듯한 느낌의 오케스트라 동기를 배경으로 헤롯 왕이 등장한다. 그는 살로메를 찾다가 그녀가 있는 것을 보고 안심한다. 

 

오늘 밤 달빛이 참 이상하군. 사랑을 찾아 사방팔방 돌아다니는 미

친 여자 같아. 술 취한 여자처럼 비틀거리고 있어.

 

이런 헤롯 왕의 말에 맞추어 오케스트라 악기들이 기묘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헤롯 왕은 살로메에게 함께 술을 마실 것을 권한다. 그러면서 "그 술에 너의 작고 발그레한 입술을 살짝 담가라. 그러면 내가 그 잔을 비울 것이다."라고 말한다. 어린 소녀의 '작고 발그레한 입술' 과 간접적으로나마 접촉하고 싶은 왕의 욕정이 드러나는 대목인데, 여기서 오케스트라는 작고 섬세한 스타카토로 이런 음흉한 속내를 드러낸다. 이어서 나오는 과일을 권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나는 과일에 나 있는 네 잇자국을 보는 것이 좋아. 한 입만 베어 먹어라.나머지는 내가 먹을게." 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늙은 왕의 욕망을 현악기의 부점리듬과 관악기의 현란한 속삭임으로 처리했다. 

바로 이때 우물 속에서 요한의 목소리가 들린다. 남편을 죽이고 근친상간을 한 헤로디아를 비난하는 소리이다. 헤로디아가 이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오케스트라 역시 날카로운 불협화음으로 그녀의 불편한 심기를 묘사한다. 곧이어 언제나 종교에 대한 논쟁을 일삼는 유대인들이 들어온다. 그들은 요한의 전체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인다. 오케스트라의 악기들도 마치 논쟁을 하는 것처럼 소란스럽게 움직인다. 그때 또다시 요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세상을 구원할 사람이 왔다는 것이다.이 말에 어리둥절하는 헤롯 왕 앞에 나사렛 사람이 나선다. 그리고 이렇게 얘기한다

 

그가 오셔서 어느 곳에서나 기적을 행하고 계십니다. 갈리리의 한 

결혼 피로연에서는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고, 카페루나움에서는 몸에 

손을 대기만 했는데 나병 환자 두 사람이 병에서 나았습니다. 소경을 

눈뜨게 했고, 산에서 천사들과 함께 얘기를 나누는 광경을 본 사람도 

있습니다.

 

나사렛 사람이 예수에 대해 말할 때 앞에서 요한이 예수에 대해 말할 때와 마찬가지로 음악이 달라진다. 이때 나오는 음악에서는 어떤 불손한 요소도 찾아볼 수 없다. 불협화음도 전혀 사용되지 않고, 조성도 명확하다. 나사렛 사람은 금관악기의 아름다운 울림에 맞추어 세상을 구하러 오신 이, 즉 예수에 대해 얘기 한다. 

하지만 이렇게 자비로운 음악의 은총은 요한이 헤로디아에게 저주를 퍼붓자 금세 공포의 울림으로 바뀌고 만다. 

 

그들의 사령관이 칼로 그녀를 찌를 것이다. 그리고 방패 밑으로 그

녀를 깔아 뭉갤 것이다. 그렇게 세상의 모든 사악할 것을 몰아낼 것이

다. 그리하여 세상의 여자들이 그녀의 혐오스러운 행위를 따라 해서

는 안 된다는 배우도록 할 것이다.

 

요한의 말에 헤로디아는 발작적으로 반응하고, 오케스트라 역시 히스테릭한 불협화음으로 이에 동조한다.

 

일곱 베일의 춤

 

이윽고 헤롯 왕이 살로메에게 춤출 것을 권한다. 살로메는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추기만 하면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겠다는 말에 마음을 바꾸어 춤을 춘다. <살로메>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일곱 베일의 춤 장면이다. 그 춤은 어떤 춤이었을까? 성경 구절 어디에도 춤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없다. 왕을 감탄시킬 정도였으니 실제로 살로메의 춤은 매우 아름다웠을 것이다. 어린 소녀 특유의 청순한 아름다움을 지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후대 사람들은 살로메의 춤을 그저 아름답게만 볼 수 없었다. 그로써 세례 요한의 목이 잘렸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살로메의 춤은 사악함이라는 원죄를 뒤집어써야했다. 초기 기독교 지도자들은 죄악을 저지르게 하는 여자의 유혹에 대한 대표적인 예로 춤을 듣고, 그 위험성을 경고했다. 춤이 남자를 유혹하는 가장 사악한 무기라는 것이다.

 

춤이 있는 곳에는 어디에나 악마가 있다. 신이 우리에게 발을 주신

것은 춤을 추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의로운 길을 걷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역설했다. 

죄악의 근원인 살로메의 춤은 나자의 마음을 훔칠 정도로 요염하고 관능적이고, 퇴페적이어야 한다. 와일드는 살러메로 하여금 맨발로 일곱 개의 베일을 쓰고 춤을 추도록 했다. 베일 춤은 본래 동방에서 온 것으로, 알몸이 될 때까지 베일을 하나씩 벗으며 추는 매우 관능적인 춤이다. 당시 오리엔탈리즘에 빠져있던 와일드는 이 동방의 춤에서 일곱 베일의 춤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물론 그는 춤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하지 않았다. 베일을 차례로 벗으면서 춤을 추라고 지시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일곱 개의 베일은 많은 것을 암시한다. 베일 속을 꿰뚫어 보려는 욕망, 베일을 벗기려는 욕망, 그런 욕망의 은밀한 표현이 일곱 베일이 아니었을까.

1894년에 나온 <살로메>의 영문판에는 옵리 비어즐리가 그린 삽화가 실려있다. 여기서 베어즐리는 살로메가 속이 비치는 바지를 입고 가슴과 배를 드러낸 채 춤을 추는 것으로 묘사했다. 아랍 문화권의 밸리 댄스와 비슷한 형상인데, 와일드는 이것을 보고 "비어즐리는 내가 생각한 일곱 베일의 춤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그것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유일한 예술가다." 라고 극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냥 그림만 가지고는 일곱 베일의 춤을 역동적으로 체험하기 힘들다. 탐미주의, 상징주의, 퇴페주의의 현신으로서 일곱 베일의 춤이 빛을 발하려면, 직접 춤으로 추어져야한다. 그런데 춤을 추려면 음악이 있어야한다. 와일드의 <살로메>가 오페라로 만들어져야하는 필연적인 이유이다. 바로 그 작업을 슈트라우스가 했다. 그의 오페라로 일곱 베일의 춤은 생생한 현장성을 갖게 되었다.

 

오리엔탈 리즘과 에로티시즘

 

일곱 베일의 춤에 대해 슈트라우스는 아주 기품이 있어야한다고 얘기했다. 그가 말하를 '기품 있는 춤'은 어딴 것이었을까? '방석 위에서 추는 춤'이라는 말로 미루어 펄펄 날아다니는 역동적인 춤이 아닌, 내면적으로 매우 절제된 춤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오페라 공연에서 추는 이 춤을 아주 음란하게 처리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R. 슈트라우스가 원한 것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방석 위에서 추어도 충분할 정도로 동작이 절제된 춤, 노골적인 성애의 표현보다는 베일로 가려진듯 은밀하고 매력적인 에로티시즘을 추구했던 것 같다. 

일곱 베일의 춤은 2박자로 빠르고 격렬하게 연주하는 팀파니의 울림으로 시작한다. 팀파니의 짧은 전주 후 오보에가 등장해 장식음이 달린 E음과 D#음을 숨가쁘게 연주한다. 그런 다음 플루트가 등장하는데, 여기서 오보에와 플루트는 슈트라우스가 오리엔탈리즘을 구현하기 위해 선택한 악기이다. 미묘한 장식음을 달고 반복되는 오보에 소리와 현란하게 상승했다 하강하는 플루트 소리가 먼 동방의 피리소리처럼 들린다.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서 있던 살로메가 악사들에게 신호를 보낸다. 음악은 어느덧 부드럽게 흥청거리면서 수그러든다. 관능적인 리듬에 맞추어 살로메가 춤을 추기 시작한다. 앞에 나왔던 장식음을 단 오보에가 다시 등장한다. 앞에서보다 템포가 한결 느려진 오보에 소리가 멀리서 아련하게 들린다. 곧 이 신비로운 동방의 피리 역할을 플루트가 이어받는다. 플루트는 흐트러진 부점음표로 하강했다가 쏜살같이 상승하고, 다시 계단을 내려오듯 셋잇단음표의 형태를 순차적으로 내려온다. 오보에가 다시 등장해 플루트와 어울린다. 

오케스트라가 2박자와 3박자 사이를 오가며 신비스럽지만 다소 자극적인 불협화음을 연주하는 동안 플루트는 섬세한 장식음을 달고 미끄러져 내려갔다 미끄러져 올라간다. 관능적으로 흐느적거리던 오케스트라가 어느덧 무수한 불협화음으로 반짝이며 하강한다.

여기까지는 이렇다 할 멜로디가 없다. 중간에 잠깐 선율적 모티프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탐미적이고 관능적인 모티프와 풍성한 색채의 자극적인 불협화음으로 채워져 있다.

음악이 4분의 3박자 C# 단조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유장한 선율이 등장한다. 그 느낌이 마치 슬픔의 왈츠와 같다. 이 멜로디가 고음역으로 옮겨가 다시 반복되면서 악상이 고조되고, 이렇게 고조된 분위기는 A#단조에 이르러 격렬한 감정으로 폭발한다. 그 후 분위기가 살짝 밝아진다. 살로메가 잠시 정신을 잃는 순간 불길한 불협화음이 등장하지만, 그녀가 정신을 차리면서 다시 반짝이는 스타카토와 밝은 분위기로 돌아간다. 

후반부에 이르면 음악이 점점 커지고 빨라지면서 듣는 사람을 흥분상태로 몰고간다. 먼저 오보에의 지속음을 배경으로 오케스트라 악기들이 반짝이는 리듬을 연주한다. 여기에 팀파니가 가세하면서 음악이 정신없이 빨라진다. 엑스터시의 경지로 정신없이 내달리는 것이다. 금관악기가 우렁차게 울리고, 나머지 악기들은 반음계로 반짝이며 하강한다. 휘몰아치던 음악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모든 악기소리가 사라지고, 감전된 듯 A음의 현악기 트래몰로만 남는다. 트래몰로 소리가 점점 잦아들 때 앞에 나왔던 오버에의 동기가 다시 등장한다. 그렇게 조용해진 음악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격렬하게 휘몰아친 다음 세 개의 결정적인 화음으로 끝난다.

일곱 베일의 춤 장면에서 슈트라우스의 음악이 발산하는 효과는 가히 압권이다. 슈트라우스는그동안 오리엔트를 배경으로 한 음악들이 그 지방 특유의 이국정취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고 생각해 왔으며, 그래서 이 장면에서 더욱 신경을 썼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음악은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하는 이국적인 모티프로 가득차 있다.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현악 모티브의 불안한 움직임, 아스라이 들려오는 신비롭고 이국적인 관악기 소리, 원시적인 리듬과 흐느적거리는 멜로디, 이 모든 것들이 끝내 파국으로 치닫는 살로메의 욕망을 음산하고 섬뜩하게 그리고 있다.

 

엽기적인 결말, 능멸의 불협화음

 

살로메의 춤이 끝나자 헤롯 왕은 감탄을 금치 못한다. 이런 그에게 살로메는 요한의 머리를 요구한다. 헤롯이 온갖 보물을 들먹이며 살로메의 마음을 돌리려 안간힘을 쓰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요한의 머리이다. 헤롯 왕은 결국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령한다. 

망나니가 우물 안으로 내려가자 잠시 썸뜩한 침묵이 흐른다. 멀리서 조용히 팀파니 소리가 들린다. 요한의 목이 오기를 기다리는 살로메의 초조함을 대변하는 듯하다. 드디어 망나니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요한의 머리를 그녀 앞에 가져온다. 그순간 오케스트라가 엄청난 불협화음으로 폭발한다. 음악이 발작을 일으키는 것 같다. 요한의 머리를 받아든 살로메는 그것을 부등켜안고 중어거린다.

 

아, 당신은 내가 키스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지. 하지만 요한 난

지금 키스할 거야. 잘 익은 과일을 깨물 듯이 내 이로 그 입술을 깨물

어 줄 거야. 내가 그런다고 했지? 그런데 요한, 당신은 왜 나를 쳐다보

지 않는거지? 그토록 무서웠던 두 눈으로 왜 나를 쳐다보지 않냐고?

눈을 떠, 눈꺼풀을 올려보란 말이야.

당신 입에 키스했어. 요한. 입술은 쓰군.피의 맛인가? 아니야. 아

마 사랑의 맛일 거예요. 사랑의 맛은 쓰다고 하잖아?

 

분위기가 갑자기 조용해지고 멀리서 앞의 일곱 베일의 춤에서 나왔던 오보에의 주제가 아련히 들려온다. 이 부분의 음악은 악마적으로 아름답다. 죽은 요한의 머리를 안고 "요한, 당신은 아름다웠지"라고 노래하는 대목에서는 오페라의 모든 주제가 다시 나타나 에로틱한 열망의 오르가즘을 느끼게 한다. 마지막에 살로메가 "당신 입에 키스했어"라는 장면에 이르러 음악이 클라이맥스에 도달한다. c#장조의 격렬한 선율이 스포르찬도로 하강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듣기에 매우 거북한 불협화음, 이제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비정상적인 화음이 등장한다. 이 끔찍한 울림을 얻으려고 슈트라우스는 각기 다른 두 개의 조성이 동시에 나오는 복조성 기법을 사용했다. 

저음부에 A를 근음으로 하는 딸림 7화음을, 고음부에 F# 장조의 으뜸화음을 두어 결과적으로 A, C#, G, a'와 A#, F#, a#동시에 올리게 했는데, 그 소리가 정말 끔찍하고 소름끼친다. 듣는 사람을 능멸의 심연으로 빠트리는 이 화음이야말로 음악적 데카당스의 진수라고 할 만하다. 헤롯 왕으로 하여금 저 미친 물건을 죽이라고 외칠 수밖에 없게 만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