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의 문학 오페라

영욕으로 점철된 대시인의 삶 단테는

운우(雲雨) 2021. 12. 17. 09:23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 1265~1321)는 1265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단테의 일생에 대해서는 역시 피렌체 출신으로 단테에 대해 거의 신에 버금가는 존경심을 품고 있던 보카치오의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전기라기보다 자기 고장 출신 시인에 대한 찬사의 성격을 띠고 있어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는 단테를 '피렌체의 영광' 이라고 하면서 그에 의해 죽었던 시가 되살아나고, 이탈리아의 일상어가 알맞은 가락을 갖추게 되었다고 극찬했다. 보카치오는 단테가 48살 때 태어났으며, 단테가 죽었을 때 그는 8살이었다. 겹치는 기간이 8년밖에 되지 않는 데다가 한 인물을 관찰하고, 그에 대한 나름의 견해를 갖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보카치오의 기록은 현재 남아 있는 단테에 대한 기록 중 가장 중요하고 신빙성 있는 기록으로 꼽힌다. 보카치오는 단테와 같은 고향 사람으로 그의 삶과 가장 근접한 시기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에 관한 자료를 접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단테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집이나 교회 혹은 수도운에 딸린 학교에서 기초 교육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보카치오에 의하면 소년 시절 단테는 돈벌이가 되는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베르길리우스, 오비디우스, 호라티우스와 같은 위대한 시인들의 작품에 심취했으며, 역사와 철학 공부에 매진하며 시인으로서의 기본 자질을 키웠다고 한다. 단테는 매우 조숙한 소년이었다. 9살 때 한 잔치에서 베아트리체라는 소녀를 보고 한눈에 반하는데, 당시 심정을 그는 자신의 작품 <새로운 삶>에서 "그때부터 내 사랑이 내 영혼을 완전히 압도했네." 라고 표현했다. 그렇게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의 열정은 아름다운 시가 되었다. 사실 단테와 베앝리체는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였다. 베아트리체가 속한 포르티나리 가문은 당시 피렌체에서 손꼽히는 대부호로 가난한 단테의 가문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더 절절했는지도 모른다ㅣ 이루어질 수 없기에 더욱 절절한, 그리하여 더욱 아름다운 고통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사랑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 보란 듯이 자산가인 바르디 가문 출신의 은행가 사모네와 결혼했다. 단테는 20살 때인 1285년 볼로냐대학교에 들어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중세 신학과 철학, 자연과학을 두루 공부하며 교양을 쌓았다.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보

세번째 층은 카치오의 표현을 빌리면 신학의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으며, 철학에서도 그가 설렵하지 않은 분야가 거의 없을 정도라고 했다. 글쓰기에도 매진해 '맑고 새로운 문체,를 쓰는 이른바 '청신체파,라는 문학 동인을 만들어 시인으로 활동했다. 

그런데 그의 나이 25살 때 시련이 찾아왔다. 그의 영원한 연인이자 영감의 원천이었던 베아트리체가 24살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녀의 죽음 앞에서 단테는 거의 페인이 되다시피 했다. 정신은 물론 육체까지 피폐해져서 보는 사람마다 저러다 큰일 나겠다고 걱정할 정도였다. 가족과 친지들은 그에게 새로웅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이미 오래전에 약혼을 했던 젬마 도나티라는 처녀와 서둘러 결혼을 시켰다. 둘 사이에 네 명의 자녀가 태어났다. 1295년 그동안 시인으로 활동하던 단테가 갑자기 정치에 뛰어들었다. 당시 피렌체 정계에서는 서로 반목하는 겚당과 기벨린당이 당쟁을 일삼고 있었다. 겔프당은 로마 교황 편을 들었고, 기벨린당은 독일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편을 들었는데, 겉으로는 고상한 이념을 내세우며 싸웠지만, 사실 당쟁의 동기는 다분히 감정적인 것이었다. 내 마음에 안 드는 저녀석이 교황파니까 나는 황제의 편을 들어야지. 뭐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이 난장판에 단테가 뛰어들었다. 그가 정치에 뛰어들었을 때는 황제파가 쇠퇴할 무렵이었다. 그렇게 교황파와 황제파의 싸움이 끝나는 듯싶더니 이번에는 교황파가 백당과 흑당으로 나뉘어 다투기 시작했다. 백당은 교황 보나파키우스 8세를 지지하고, 흑당은 교황을 반대했다. 단테는 백당에 속했다. 한동안 그는 잘 나갔다. 통령 선출 심의위원회 위원을 바롯해 피렌체의 요직을 누루 거쳤으며, 정치에 입문한 지 불과 5년 만인 1300년에 6인으로 구성된 피렌체 도시국가 최고위원회의 장관 중 한 명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단테는 로마를 방문했다. 백당의 일원으로서 교황 보니파키우스8세를 알현하고, 피렌체 흑당의 횡포를 고발하는 것이 방문의 목적이었다.  단테는 로마에서 반년 정도 머물렀다. 그런데 그 사이에 흑당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반대파인 단테의 집을 습격하고, 집기를 약탈하는 것도 모자라 집에 불까지 질렀다. 단테의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서둘러 친정으로 피신했다. 

1302년 1월 27일, 단테는 피렌체로 돌아오는 도중에 흑당이 정권을 장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흑당은 그에게 5천 피오리노에 달하는 벌금과 공직 박탈을 선언했다. 하지만 단테는 이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러자 만약 피렌체로 들어오면 즉각 체포해 화형에 처한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결국 귀향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때는 단테 자신은 물론, 그의 가족과 친지, 친구들도 그가 영원히 피렌체에 다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후 단테는 토스카나 지방 여러 곳을 전전하며 살았다. 빈곤과 몸에 배지 않은 노동이 그를 괴롭혔다. 타향살이가 오죽했을까. 게다가 그는 참을성 없는 다혈질이었다. 명예욕도 강했다. 추방당한 후에도 피렌체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어 조바심을 냈으며, 멀리 있으면서도 어떻게든 복귀의 기회를 잡으려 했다. 아울러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든 정적에 대해 이루 말할 수 없는 적개심을 느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그들을 옹호하는 사람이 있으면,여자든 어린이든 상관 없이 "당장 입다물지 않으면 그 입을 찢어 버리겠다."며 길길이 뛸 정도였다. 이 적개심은 그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대시인의 풍모와는 사뭇 다르다. 

위대한 작품을 쓴 사람이 죽는 날까지 권역욕과 명예욕을 버리지 못했다니 보카치오조차도 어찌해서 덕성과 학식의 한가운데 있는 대시인이, 젊은 시절도 아니고, 인생의 의미를 어느 정도 알 만한 나이에 이토록 무모한 일에 열정을 바쳤는지 안타까워할 정도였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참으로 다면적인 존재인 것 같다. 한 인간을 하나의 일관된 논리로 설명하고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단테의 경우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추방 중에도 단테는 피렌체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고, 그는 죽는 날까지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 단테는 당시에는 몰랐을 것이다. 그에게는 개인적인 불행인 '추방,이 인류에게는 얼마나 ,행운'이었는지를, 그리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그 자신에게도 얼마나 위대한 '축복,이었는지를.

비록 강제적으로나마 복잡한 속세의 일에서 해방된 그는 글쓰기에 전념할 시간과 자유를 갖게 되었다. 그 결과 <속어론>, <제정론>, <향연>, <신곡>등의 작품이 탄생했다. 이중 <신곡>은 그의 대표작으로, 추방 당하기 직전에 집필을 시작해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320년에 완성한 필생의 역작이다.

<신곡LaDiviina Commedia>은 <지옥 lnferno> 34곡 서곡 포함, <연옥 Purgatorio> 33곡, <천국Paradiso 33곡을 합해 총 100곡으로 이루어진 장편 서사시이다. <지옥>의 서곡에는 그가 지옥과 연옥, 천국을 여행하는 대장정에 들어가게 된 과정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 

 

지옥을 여행하다

 

중세 사람들은 인생을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여정, 즉 천국으로 가기 위한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지옥> 첫 머리에 "우리 인생의 반고비에"라고 쓴 대로 단테는 나이 35살이 되던 1300년 3월 25일 목요일에 이 여행을 시작한다. 그는 어두운 숲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한 사람을 만난다. 단테가, "당신은 사람이요? 귀신이오? 무엇이든 날 살려주시오."라고 하자 그 사람이 자기를 소개한다. 지금은 사람이 아니나 한때는 사람이었고, 시인이었으며, 오만한 일리온이 잿더미가 된 뒤 트로이에서 온 안키세스의 저 정의로운 아들을 노래했노라고, 그 말에 단테가 경의찬 목소리로 말한다.

"그렇군요. 당신은 장대한 강물처럼 말을 뿜어내던 샘물, 바로 베르길리우스로군요."

그는 존경해 마지않는 베르길리우스에게 자신을 인도해서 슬픈 영혼들을 만나게해 달라고 간청한다. 이리하여 단테와 베르길리우스의 지옥 여행이 시작된다. 두 사림이 어느덧 지옥의 문 앞에 이르렀는데, 지옥의 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이 문으로 들어가는 그대, 일체의 희망을 버릴지어다."

 

그 문을 지나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지옥으로 들어간다. 지옥은 여러 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죄가 가벼울수록 위쪽에, 무거울수록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 제일 위쪽의 층은 '림보,라고 하며 본격적인 지옥이 아니다. 림보는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는 곳으로, 구약의 성자들이 예수가 부활할 때를 기다리며 머무는 곳, 세례를 받기 전의 아이들같이 원죄를 갖고 죽었으나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고, 오로지 한숨만 들린다. 벌을 받지 않고, 평화롭게 살고 있지만 세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수는 없다. 

단테는 여기에 자기가 존경하는 역사 속 인물들을 모두 집어 넣었다. 예수 탄생 이전에 태어났기 때문에 천국에 갈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지옥에 집어 넣기에는 그 삶과 업적이 너무 위대했던 사람들이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를 쓴 서사시인 호메로스, 풍자시인 호라티우스, <메타모르포세이스>로 유명한 오비디우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전쟁을 서사시로 읊었던 루카누스, 아가멤논의 딸 엘렉트라, 프리아모스 왕의 아들 헥토르, 로마를 건국한 아이네이아스, 음악의 신 오르페우스, 정치가 율리우스 카이사르, 철학자 아리스톨레레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로마의 웅변가이자 철학자인 키케로, 로마의 사상가 세네카,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 알렉산드리아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이곳에 있으며, 단테를 지옥과 연옥으로 안내한 베길리우스 역시 이곳에 속해 있다. 

지옥의 두 번째 층 입구에는 무시무시한 모습의 미노스가 버티고 있다. 미노스는 지옥의 심판관이다. 죄지은 영혼이 들어오면 그가 지은 죄를 조사해서 꼬리를 감아 죄의 등급을 표시한다. 여기에는 색욕에 빠져 불륜의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갇혀 있다. 세상에 많은 죄가 있는데, 단테는 그중 애욕의 죄를 비교적 가벼운 죄로 보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여기서는 죄인들이 시도 때도 없이 폭풍에 휩쓸리는 벌을 받고 있다. 

세 번째 층은 탐욕을 가진 자들을 벌하는 곳이다. 커다란 우박과 구정물이 눈과 섞여서 하늘에서 쏟아지고, 땅에서는 악취가 진동한다. 머리가 세 개 달린 케르베로스라는 개가 날카로운 발톱으로 죄인들의 몸을 조각조각 찢어발긴다.

네 번째 층에는 낭비의 죄를 지은 자들이 갇혀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은 자들, 돈을 무분별하게 낭비한 자들을 벌하는 곳이다. 죄인들은 평생 탐욕에 빠진 벌로 자신들이 모았던 커다란 돈주머니를 굴리는 형벌을 받고 있다. 단테는 이곳에 자기가 알아볼 만한 성직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다.

다섯 번째 층은 분노를 다스리지 못한 사람을 벌하는 곳이다. 죄인들이 스틱스의 늪에 빠져 벌을 받고 있다.

여섯 번째 층부터 지옥의 하부에 해당된다. 여기에서는 이교도와 그의 두목들이 뜨거운 관에 갇혀 있는데, 죄가 무거울수록 열기가 강해진다. 몸이 죽으면 영혼도 같이 죽는다고 설파했던 그리스의 쾌락주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도 여기에 있다. 

일곱 번째 층은 폭력을 저지른 사람들을 가두는 곳으로, 폭력의 종류에 따라 벌을 받는 곳이 다르다. 먼저 타인에게 폭력을 행한 사람은 피 끓는 플레게톤강에 빠져 고통을 당하는데,  강에서 나오려고 하는 자는 누구나 겐타우로스가 쏘는 화살을 맞게 되어 있다. 두번째 고리는 자기에게 폭력을 가한 자, 즉 자살을 한 사람이 가는 곳이다. 이들은 최후의 심판 후에도 몸을 찾지 못하고 나무가 되어 스스로의 육신을 매다는 고통을 당한다. 세 번째 고리는 신의 섭리와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는 짓을 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다. 신성 모독자, 동성애자, 고리대금업자들이 사막에서 뜨거운 우박을 맞으며 벌을 받고 있다.

지옥의 여덟 번째 층은 사기를 친 사람들이 가는 곳이다. 인신매매범들은 악마의 채찍을 맞고, 아첨꾼들은 오물에 처박힌다. 성직을 사고판 사람들은 거꾸로 처박혀 발에 불이 붙는 형벌을 당하며, 마법사, 점쟁이, 거짓 예언자들은 머리가 뒤로 뒤틀린 상태로 걸어야만 한다. 탐관오리들은 끓는 역청 속에 빠져 고통당하고, 위선자들은 겉은 금이나 속은 납으로 만들어진 엄청나게 무거운 옷에 짓눌려 있다.

도둑들은 뱀과 도마뱀에게 물리며 끊임없이 뱀과 도마뱀으로 변신하는 벌을 받고 있으며, 사기꾼들은 뜨거운 화염에 휩싸여 있다. 분열을 조장한 자들은 악마들에게 칼로 찔리는데, 찔린 곳에 다시 새살이 돋아나면 또다시 칼에 찔린다. 위조범들은 온갖 종류의 병에 시달린다. 

지옥의 가장 아래층인 아홉 번째 층은 배신의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가는 곳이다. 지옥에 있는 강들이 마지막으로 모이는 이곳에는 코카투스라는 얼어붙은 강이 있다. 배신의 대상에 따라 갇혀 있는 구역이 다른데, 제1구역 카이나에는 가족과 친척을 배신한 자, 제2구역 안테노라에는 조국과 동료를 배반한 자, 제3구역 ㅍ톨레메오에는 친구를 배신한 자, 제4구역 주데카에는 손님을 배반한 자들이 얼음 속에 꽁꽁 언 채로 갇혀 있다.

 

지옥에서 만난 프란체스카

단테의 ,신곡>은 지금까지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소설, 연극, 음악, 조각, 영화, 발레에 이르기까지 <신곡>을 소재로 한 작품이 얼마나 많은지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그중에서 예술가들이 가장 많이 눈독을 들였던 이야기는 <지옥> 제5곡에 나오는 프란체스카의 사연이다.

<지옥> 제5곡은 애욕에 빠진 자들을 벌하는 지옥의 두 번째 층을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단테는 프란체스카라는 여자를 만나는데, 그녀는 시동생 파올로와 불륜을 저지르다 애인과 함께 남편에게 살해 되는 비극을 겪은 실존 인물이다.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는 단테가 <신곡><지옥>에 프란체스카를 등장시키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프란체스카는 1255년에 태어나서 1285년에 세상을 떠났다. 라벤나 영주 귀도 타 폴렌타의 딸로, 원래는 프라체스카 타 폴렌타로 불리다가 20살 때 리미니의 말라테스타 가문으로 시집을 가면서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가 되었다. 그녀가 말라테스타 가문으로 시집을 가게 된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프란체스카의 친정인 라벤나의 폴렌타 가문은 리미니의 말라테스타 가문의 군사적 지원을 받아 라벤나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1275년, 라벤나 영주가 된 귀도 일 베키오 폴렌타는 폴렌타 가문과 말라테스타 가문의 결속을 다지려고 자기 딸 프란체스카를 비루키오 말라테스타의 아들 지오반니에게 시집보냈다. 신랑인 지오반니는 다리를 저는 불구로 ,잔지오토'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절름발이 지오반니'라는 뜻이다.

프란체스카는 지오반니와 결혼해 콘코르디아라는 딸을 낳았다. 하지만 그 후 남편의 동생인 파올로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파올로 역시 1269년 오라빌레라는 여성과 결혼을 해 아들과 딸을 둔 유부남이었다. 서로 가정이 있음에도 두 사람은 남의 눈을 피해가며 무려 10년 동안이나 불륜 행각을 벌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만 지오반니에게 들키고 말았다. 자신의 아내와 동생이 한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지오반니는 두 사람을 그 자리에서 칼로 찔러 죽였다. 

여기까지가 실제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어떤 기록으로도 남아 있지 않다. 불명옛러운 남녀상열지사까지 일일이 기록으로 남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대에는 이 사건이 인구에 널리 회자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프란체스카와 같은 시대 사람인 단테 역시 이 사건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옥> 제 5곡에 프란체스카를 등장시켰고, 이로써 이 이야기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만약 단테가 <신곡>에서 이것을 언급하지 않았다면 프란체스카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는 당대의 가십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지옥>의 제5곡은 애욕에 눈이 멀어 죄를 저지른 자들을 벌하는 지옥의 광경을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는 프란체스카와 그녀의 애인 파올로를 비롯해 아시리아 니누스 왕의 왕비로 정부와 짜고 남편을 죽인 세미라미스, 아이네아스를 사랑한 카르타고 여왕 디도. 스파르타왕 메넬라오스의 아내로 트로이 왕자 파리스와 바람이 나는 바람에 트로이 전쟁의 빌미를 제공했던 헬레나, 프리아모스의 딸 폴릭세네를 사랑했다가 계략에 말려들어 죽은 아킬레우스, 켈트족의 전설에 나오는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갇혀 있다. 

애욕에 눈이 먼 죄인을 가둔 곳은 지옥의 두 번째 층에 해당된다. 이는 림보 바로 아래층으로 비교적 죄가 가벼운 사람들이 가는 곳이다. 그 밑의 세 번째 층에는 탐욕의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갇혀 있다. 이렇게 단테는 애욕의 죄를 탐욕의 죄보다 가벼운 것으로 보았다. 그들이 저지른 불륜의 사랑을 한없이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로맨틱하게 묘사했다. 지옥에 있는 프란체스카는 이곳을 찾은 단테에게 말을 거는데, 이렇게 지옥에서 단테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거는 여자는 프란체스카가 유일하다.

 

"오! 살아있는 사람이여, 자비롭고 친절하십니다.

이 검은 허공을 지나면서 

세상을 피로 물들였던 우리를 찾아 주셨군요.

 

우주의 왕께서 우리의 친구라면 

우리의 무자비한 고통을 불쌍히 여기는

당신의 평화를 간구하겠어요.

 

당신이 듣고자 하고, 말하고자하니

지금처럼 바람이 윙윙거리기를 그친 동안

기꺼이 당신과 함께 말하고 듣겠어요.

 

내가 태어나고 자란 땅은

포강이 지류들과 함께 바다로 흘러

휴식을 얻는 곳이지요.

 

사랑은 온화한 가슴에 이내 스며드니

지금은 내게서 없어진 아름다운 몸으로 이분을

사로잡았어요. 그 일이 아직도 나를 괴롭힙니다.

 

사랑은 사랑 받는 사람을 결코 놓아주지 않으니 

이분에 대한 차오르는 기쁨으로 나를 사로 잡았어요"

보다시피 이분은 아직도 내 곁을 떠나지 앟고 있어요.

 

사랑은 우리를 하나의 죽음으로 이끌었지요.

우리를 죽인 그 자를 카이나가 기다리고 있어요."

이런 말들이 우리에게 들려왔다.

 

상처 입은 영혼들의 얘기를 들으며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시인이 입을 열었다. 

"무얼 생각하느냐?"

 

나는 대답했다. "아! 얼마나 많은 덜콤한 생각과 

얼마나 큰 욕망이 저들을

이렇게 고통스러운 길로 내몰았던 것일까요?"

 

나는 그들에게 말머리를 돌렸다. 

"프란체스카여! 당신의 기구한 운명이 나를

울리는구려. 슬프고 가여울 뿐입니다.

 

말해 보시오. 한숨 짓는 달콤한 욕망으로 살던 

그 시절에 어떻게 사랑이 

당신의 숨은 열정을 알려 주었단 말이요?"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당신의 선생님은 아시겠지만

비참할 때 행복했던 옛 시절을 떠올리는 일만큼

괴로운 것도 없어요.

 

그러나 사랑의 뿌리가 우리를 어떻게 옭아맸는지

그렇게 간절히 알기 원하신다면 

이렇게 울며 고백하겠어요

 

어느 날 우리는 한가롭게

랜슬롯의 사랑 이야기를 읽었어요.

우리뿐이었어요. 거리낄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요.

 

읽어가는 동안 우리는 서로 여러 번 눈을 마주쳤어요.

얼굴도 여러 번 붉혔지요.

그리고 단 한순간이 우리를 엄습했어요.

 

사랑에 빠진 그 연인이 오랫동안 기다린 입술에

입 맞추는 대목을 읽었을 때

그이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내게

 

입을 맞추었지요. 그리고 나를 결코 떠날 수 없게 되었어요.

그 책을 쓴 자는 갈레오토였어요.

우리는 그날 더 이상 읽지 못했어요."

 

한 영혼이 말하는 동안

다른 영혼은 울고 있었다. 비통한 소리에 에워싸인 나는

그들이 불쌍해 죽어가는 사람처럼 정신을 잃고

 

시체가 쓰러지듯 지옥의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단테는 울고 있는 프란체스카의 모습을 보고 그녀가 너무 가여운 나머지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만다. 이렇게 단테는 불륜을 저지른 죄로 벌을 받고 있는 프란체스카에게 강한 측은지심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를 진실한 사랑의 희생자로 승화시켰다. 

그는 프란체스카가 파올로와 사랑에 빠지는 장면도 로맨틱하게 묘사했다. 프란체스카와 파올르는 어느 날 갈레오토가 지은 랜슬롯과 귀네비어의 사랑 이야기를 함께 읽고 있었다. 이것 역시 불륜의 사랑 이야기이다.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동안 두 사람의 눈이 여러 번 마주쳤다. 그러다가 귀네비어가 랜슬롯과 키스를 하는 장면에 이르게 되었다. 그 순간 프란체스카는 더 이상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 파울로가 온몸을 떨며 그녀에게 키스했기 때문이다. 그 키스가 두 사람을 운명적인 사랑으로 옭아매고 말았다. 그 결과 두 사람은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단테의 <신곡>에서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비극적인 죽음은 비탄과 동정의 대상이다. 하지만 이들을 죽인 프란체스카의 남편 지오반니는 포학하고 잔인한 인물로 그려진다. 지오반니가 속한 말라테스타 가문은 싸움 잘하기로 소문난 이른바 무사 집안이었다. 그들은 칼의 힘으로 프란체스카의 친정인 폴렌타 가문을 도와 라벤나를 손에 넣도록 했다. 그런데 단테는 싸움꾼인 말라테스타 가문을 은근히 무시했던 것 같다. 

사실 불륜을 저지른 아내를 죽인 지오반니의 행동은 당대의 가치관으로 볼 때 그다지 비판받을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단테는 불륜을 저지른 프란체스카보다 그녀를 죽인 지오반니를 더 포악하고 죄 많은 인간으로 그렸다. 그는 프란체스카의 입을 통해 지오반니가 그들보다 무거운 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바로 "우리를 죽인 그자를 카이나가 기다리고 있어요." 라는 대목이다. 여기서 카이나는 지옥의 가장 낮은 곳, 즉 가장 죄가 무거운 사람들이 가는 아홉 번째 층의 제1구역이다. 배신의 죄를 지은 사람 중에서 특히 가족과 친척을 배신한 자들이 이곳에 갇혀 있다. 자기 아내와 친동생을 살해한 지오반니 역시 곧 이곳으로 오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지오반니는 프란체스카를 죽인 후, 잠브라시라는 여자와 재혼을 했다. 그런데 단테는 잠브라시의 아버지 테발텔로 잠브라시도 지옥으로 보냈다. 테발델로 잠브라시가 갇힌 곳은 아홉 번째 층 제2구역인 안테노라이다 안테노라는 조국과 동료를 배신한 자들이 가는 곳이다. 

단테가 프란체스카를 가혹하게 단죄히지 못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사랑의 열정, 도덕고 인습을 뛰어넘는 간절한 사랑에 대해 일종의 로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유년 시절 그의 가슴을 강타한 첫사랑 베아트리체에 대한 추억이 그로 하여금 평생 사랑에 대해서는 무조건 죄를 묻지 않도록 만든 것일까. 게다가 단테는 프란체스카와 불륜을 저지른 파올로와 직접 만난적도 있었다. 파올로는 1282년 교황 마르틴 4세에 의해 피렌체의 장관으로 임명되었는데 , 이때 단테를 만났을 것으로 추측된다. 단테는 자기 고향 피렌체에서 장관 노릇까지 한 사람을 차마 파렴치한 불륜범으로 몰 수 없었던것이 아닐까. 단테와 파올로가 피렌체에서 만나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파올로는 친형 지오반니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단테는 프란체스카의 친정인 폴렌타 가문과의 인연도 깊다. 폴렌타 가문의 도움으로 말년을 편안하게 보냈기 때문이다. 프란체스카의 아버지 귀도 타 폴렌타와 그의 아들 람베르토 타 플렌타에 이어 1316년 람베르토의 조카인 귀도 타 노벨로 포렌타가 라벤나 영주 자리에 올랐다. 노벨로는 시와 학문, 예술에 대해 남다른 소양을 지닌 사람으로 일찍이 단테의 위대함을 알고 있었다. 단테는 추방당하기 전에 <지옥> 제7곡까지 썼고, 제5곡에 노벨로의 고모에 해당하는 프란체스카가 나오지만, 노벨로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여하튼 그는 영주가 된 이듬해인 1317년 단테가 로마냐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사람을 보냈다. 단테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그가 자신의 성에 머물러준다면 한없는 기쁨으로 생각하겠노라는 말을 전했다. 단테는 이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고, 그 후 노벨로는 단테가 필요한 모든 것을 무한정 제공했다. 오랜 유랑 생활에 지친 단테는 이곳에서 비로소 안정을 찾고 <신곡> 집필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320년 20여 년에 걸친 <신곡> 집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이듬해인 1321년 단테는 세상을 떠났다. 노벨로는 위대한 시인의 마지막을 최대한 예를 갖추어 마무리했다. 단테의 시신을 시적인 헌사로 장식한 장례운구 위에 올려놓고, 라벤나의 유명인들로 하여금 묘지까지 운반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것을 소 기사단의 성소까지 가지고 가서 미리 준비한 석관 안에 뉘었다. 오늘날 단테의 무덤이 고향 피렌체가 아닌 라벤나에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보카치오의 해설

 

<신곡>에 나오는 프란체스카의 이야기에는 단테보다 한 세대 후대 사람인 보카치오에 의해 드라마적인 요소가 가미 되었다. <데카메론>의 작가로도 유명한 보카치오는 단테가 죽은 지 반세기가 지난 1373년 피렌체 당국의 요청으로 단테의 <신곡> 강연을 시작했다. 보카치오의 설명에 의하면 프란체스카는 사기결혼을 당한 것이었다. 딸을 말라테스 가문에 시집보내고 싶었던 귀도 일 베키오는 신랑이 불구자인 지오반니라는 것을 알면 딸이 결혼하지 않겠다고 할까봐 잘생긴 그의 동생 파울로를 신랑이라고 속여 결혼식을 치렀다는 것이다. 하지만 첫날밤에 프란체스카는 자기가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그때부터 남편을 멀리하고 파올로와 은밀히 사랑을 나누었다. 

보카치오는 두 사람의 최후도 자세하게 기록했다. 프란체스카와 파올로가 방에 함께 있는데, 지오반니가 문을 두드렸다. 놀란 프란체스카는 파올로를 바닥에 있는 작은 문으로 도망가도록 했다. 그리고 문을 닫았는데, 문에 박힌 못에 파올로의 옷이 걸리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하지만 프란체스카는 그것도 모르고 지오반니에게 방문을 열어주었다. 방에 들어온 지오반니는 금새 파올로를 발견했다. 화가난 그는 파올로를 칼로 찌르려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런데 프란체스카가 이를 막으려고 중간에 끼어들었다가 대신 칼을 맞았다. 프란체스카가 쓰러진 후, 지오반니는 결국 파올로를 칼로 찔러 죽였다. 이후 프란체스카와 파올로는 많은 사람들의 슬픔 속에 장례식을 치르고 같은 묘에 합장되었다. 보카치오의 설명은 여러가지 정황으로 볼 때 픽션일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예술가들에게는 오히려 강렬한 영감을 주었다. 정략결혼, 뒤바뀐 신랑, 불구의 남편, 시동생과의 불륜, 남편의 복수 등 드라마적인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그동안 프란체스카를 소재로 수없이 많은 소설, 시, 영극, 음악, 그림, 조각, 영화, 발레가 만들어졌다. 오페라만 해도 작픔 수가 무려 20여 편이나 될 정도다. 오페라 중에서 지금까지 가장 널리 공연되고 있는 작품은 잔도나이의 <리미니의 프란체스카 Francesca da Riminia>이다.

 

잔도나이의 오페라<리미니의 프란체스카>

 

리카르도 wks도나이Riccardo Zandonai, 1883~1944는 이탈리아 작곡가이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재능이 있었던 그는 본격적으로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16살 때인 1899년에 페사로 음악원에 들어갔는데, 이때 9년 과정을 3년에 마칠 정도로 천재성을 보였다. 음악원에서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작곡가로 유명한 마스카니를 사사했다. 젊은 시절부터 장래가 촉망되는 작곡가로 주목받았는데, 특히 작곡가이자 대본작가인 보이토로부터 푸치니의 뒤를 이을 재목이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잔도나이는 음악원 졸업 작품으로 제출한 <율리시스의 귀환>을 비롯해서 여러 편의 오페라를 썼다. 그중 대표적인 작품은 1914년에 발표한 <리미니의 프란체스카>이다. 오페라의 대본은 이탈리아 작가 가블엘레 단눈치오가 쓴 시극 <리미니의 프란체스카>를 바탕으로 티토 리코르디가 썼다.

오페라 <리미니의 프란체스카>는 모두 4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막은 프란체스카의 집이다. 시녀들이 광대에게 노래를 시킨다. 그런데 그 노래가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불륜의 사랑을 그린 노래이다. 

 

그리하여 모르가나는 아서왕에게,

용감한 트리스탄과 

아리따운 이졸데와 

깊은 사랑을 예언하는 그 방패를 보내네,

그리고 이졸데는 트리스탄과 함께

어머니 로따가 그녀와 마르코 왕이 

마시도록 준비했던 그 사랑의 묘약을 마시는데

그 묘약은 효력이 너무 좋아 

그 연인들은 죽음에 이르네.

 

광대는 음산한 오케스트라 음향을 배경으로 마치 말을 하듯이 낮고 어두운 음색으로 이야기를 읊는다. 가사 속에 이미 불륜의 사랑을 한 두 연인이 어떤 최후를 맞이할지 암시하고 있다. 

이런 광대의 노래는 프란체스카의 오빠 오스타시오와 공증인 톨도의 등장으로 중단된다. 오스타시오와 톨도는 프란체스카와 지오반니의 결혼을 위해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다. 그때 방에서 시녀들의 노래가 들려온다. <이제야 깨달았어.Oime che adesso ioProvo>로 시작되는 노래인데, 내용은 열정적인 사랑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것이다. 음악이 아주 신비롭고 아름다우면서 슬프다. 곧 프란체스카가 여자들의 노래에 동참한다. 아직 사랑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이들은 사랑의 고통에 대해 말하며 삶이 온통 비탄으로 가득차 있다고 노래한다.

바로 그때 시녀들이 프란체스카의 신랑감이 도착했음을 알린다. 

먼 발치에서 파올로를 본 시녀들이 앞다투어 그의 훌륭한 자태를 칭찬한다. 프란체스카 역시 파올로를 보고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한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파올로 역시 걸음을 멈춘다.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쳐다본다. 악사들이 연주를 시작한다. 시녀들이 <오월의 대지 위로Per la terra di maggio>라는 합창을 부르는 동안 프란체스카는 장미꽃을 꺾어 파올로에게 준다.

2막의 배경은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후의 말라테스타 저택이다. 프란체스카는 파올로가 신랑인줄 알고 결혼에 응했다. 하지만 곧 진짜 신랑이 지오반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이 때문에 그녀는 매우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프란체스카는 궁사들이 전투 준비를 하고 있는 망루에서 파올로를 만난다. 그녀는 파올로가 자기를 속인 것에 대해 화를 내지만, 내심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특히 적군이 쏜 화살에 파올로가 쓰러지자 비명을 지르며 본심을 드러낸다. 이런 프란체스카의 반응을 보고 파올로는 그녀가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때 지오반니가 돌아온다. 그는 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고 자랑하면서 프란체스카에게 포도주를 따르라고 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파올로가 괴로워 한다. 곧 말라테스타 가의 막내인 말라테스티노가 부상을 당한 채로 실려 들어온다. 그는 눈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이다. 다시 싸움이 시작되고, 지오반니가 전쟁을 지휘한다. 화살과 불이 난무하는 무시무시한 전투가 벌어진다.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다

 

제3막의 무대는 프란체스카의 방이다. 프란체스카가 시녀들에게 갈레오토가 쓴 <아서왕>을 읽어 주고 있다. 기사 렌슬롯과 왕비 귀네비어가대화를 나누는 대목이다. 책을 읽다가 시들해진 프란체스카는 악사를 불러 연주를 하라고 지시한다. 시녀들이 봄이 온 것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이중창<3월이 오자 2월은 Marzo e guinto e febbraio>을 부른다. 

악사와 시녀들이 물러갔을 때, 파올로가 들어온다. 파올로는 프란체스카에게 망루에서 있었던 일을 상기시키지만 그녀는 모든 것을 다 잊었다고 말한다. <파올로, 제게 평화를 주세요. Paolo, datemi pace>라면서 달콤했던 추억을 이제 잊을 것이라고, 그것은 그저 삶을 흔들었던 일순간의 광풍일 뿐이라고, 이제 평화를 찾고 싶다고 덧붙인다. 그러자 파올로는 그녀에 대한 사랑의 괴로움을 토로한다. 

 

나들은 기뻐하는 일들이 

내겐 다 성가시고 불쾌해졌소.

광명은 적이 되고, 어둠이 친구가 되었소.

거기서 말없이, 바로 나 자신에게서 태어난

영원한 고통의 심연에서 태어난

흡사 파멸의 원천 같기도 하고

흡사 다시 타는 불꽃 같기도 한

차가운가 하면 ㄸ겁고, 둔한가 하면 날카로운

때로는 혼란으로 횃불처럼 달아오르다가 

때로는 등불처럼 온화한 

그런 여인이 찾아왔었소.

언제나 내 불면을 양식으로 살아가는 듯

내게로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오.

하지만 별이 가뭇거리는 시간이 되어,

그녀가 떠나고 나면 그때는

불꽃도 분수도 없어지곤 했지요.

 

그때 파올로의 눈에 프란체스카가 읽고 있던 책이 들어온다. 파올로는 큰 소리로 책을 읽는다. 그리고 다음 구절은 프란쳇카에게 단테의 <신곡>에서 프란체스카가 두 사람이 함께 갈레오토가 지은<아서왕>을 읽다가 그만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고 한 바로 그 대목이다. 그들은 창백한 얼굴을 책 쪽으로 숙이고, 책을 번갈아 읽어 나간다. 이 때문에 서로의 뺨이 가까이 스친다. 프란체스카는 괴로워하면서도 계속 책을 읽는다.

 

그리고 왕비는 그 기사가 그 이상은 감히 나아가지 않을 것을 안다. 

품 안에서 그에게 조여들며 천천히 입맞춤한다.

 

파올로가 책 속의 랜슬롯과 같이 프란체스카에게 입을 맞춘다. 프란체스카는 비틀거리며 베개 위로 몸을 던진다. 이렇게 홰서 두 사람은 걷잡을 수 없는 열정의 노예가 되고 만다.

제4막의 무대는 말라테스타 가의 성이다. 지오반니의 동생인 애꾸눈 말라테스티노가 들어온다. 프란체스카는 그가 포로들을 너무 잔인하게 다룬다고 비난한다. 이 자리에서 말라테스티노는 프란체스카에게 은근히 추파를 던진다. 그리고 그녀와 파올로의 불륜을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한다.

말라테스티노가 나가자 지오반니가 들어온다. 프란체스카는 남편에게 말라테스티노의 잔인함에 치가 떨린다면서 자리를 뜬다. 곧 말라테스티노가 적군의 잘린 목을 들고 들어온다. 지오반니가 그의 잔인함을 꾸짖자 말라테스티노는 자기는 형제의 여자를 건드리는 자를 가만두지 않는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이 말에 수상함을 느낀 지오반니가 다그치자 말라테스티노는 파올로가 밤에 프란체스카의 방에 들어갔다가 새벽에 나오는 것을 보았다고 대답한다. 이 말이 지오반니는 경악한다. 그리고 오늘 밤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하겠다고 다짐한다.

2장의 무대는 프란체스카의 방이다. 음악적으로 이 오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애절한 멜로디가 흐르는 가운데 프란체스카가 방을 배회하고 있다. 그러다가 결혼하지 말고 자기와 같이 살자고 애원하던 동생을 생각하며 눈물짓는다. 비탄의 노래는 곧 체념으로 바뀐다. 자기 팔자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고 푸념하는데, 파올로가 들어온다. 그는 <오, 내 생명 이처럼 미친 듯이 O mia vita non fu maitanno foili>라며 격정적인 사랑을 쏟아낸다.

 

오, 내 생명, 이처럼 미친 듯이 

당신을 갈망한 적이 없었소,

벌써 내 가슴속에 

그대 눈의 생생한 

그 정기가 조금씩 다다르는 느낌이요.

그 힘 때문에 나는 이 밤에 길을 잃고 있었소.

그 힘은 내 가슴에서 용솟음치는 

무서운 핏물 같은 것이었소.

그 힘으로 두려움이 내 영혼에서 사라지고 있었소.

 

이런 파올로의 고백에 프란체스카 역시 격정적으로 대답한다.

 

용서해줘요. 용서해줘요!

전에 없이 충격적인 꿈이

쇠막대기처럼 

제 영혼을 때려 박살냈어요.

그리고 부스러진 부스러기 위에

절 쓰러뜨렸어요.

용서해줘요. 용서해줘요.

정겨운 친구! 당신이 날 깨웠어요.

온갖 고통에서 해방시켜주었어요.

그리고 새벽은 없어요.

별들은 바다 위에서 사라지지 않고

여름은 죽지 않았어요.

당신은 내 것. 난 전부 당신의 것

완벽한 열락이 우리 생명의 열정 속에 있어요.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에 격정적으로 키스를 퍼붓는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밖에서 지오반니의 소리가 들린다. 놀란 프란체스카는 파올로에게 바닥에 난 문으로 도피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방문을 연다. 문을 열자 완전무장을 한 지오반니가 들어와 동생을 찾는다. 그때 흉갑 때문에 뚜껑 문에 걸려 발버둥치는 파올로를 발견한다. 지오반니는 파올로의 머리칼을 움켜잡고 그를 억지로 끌어 올린다. 그리고 두 사람을 칼로 찌른다. 지오반니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는 가운데 막이 내린다.

 

데카당스의 화신

 

잔도나이의 <리미니의 프란체스카>를 베리스모verismo 오페라 \로 보는 시각이 있다. 베리스모 오페라는 다른 말로 사실주의 오페라라고 히는데, 신이나 왕, 귀족,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닌,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오페라를 말한다. 1889년,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시작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1918년 푸치니의 <외투>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잔도나이가 <리미니의 프란체스카>를 발표한 1914년은 베리스모 오페라의 열풍이 시들해지고 있던 시기였다. 물론 이탈리아 오페라의 대가인 푸치니는 이때도 여전히 베리스모 오페라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이탈리아 밖의 사정은 달랐다. 프랑스와 독일, 오스트리아의 작곡가들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새로운 장르의 오페라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드뷔시가 1902년 <펠라아스와 멜리장드>라는 상징주의 오페라를 발표했고, 독일에서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1905년과 1908년에 각각 <살로메>와 <엘렉트라>를 발표해 모더니즘의 문을 열었다. 

신이나 영운, 왕들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았다는 점에서, 치정에 얽힌 살인이라는 인간적인 주제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리미니의 프란체스카>를 베리스모오페라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페리스모오페라를 구분하는 기준을 단순히 소재적인 측면에만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작품의 주제와 그것을 다루는 방식, 미학적인 관점에 대한 고려도 있어야 한다.

이 오페라의 대본은 단눈치오가 1901년에 쓴 <리미니의 프란체스카>를 바탕으로 한다. 단눈치오는 이탈리아 데카당스문학의 대표 작가로 꼽힌다. 데카당스는 일종의 세기말적 현상으로, 형식적으로 난숙기에 빠진 예술이 갈 길을 잃고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자 자극적 향락에 빠지는 현상을 말한다. 데카당스 예술가들은 감각적인 자극이나 도취를 추구하고 아름다움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탐미주의적 경향을 보인다. 그들의 예술은 건강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퇴페적이고, 우울하고 감각적이며, 때로 기괴하기까지 하다.

물론 단눈치오는 단테의 <신곡>에서 작품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하지만 단테가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사랑을 신의 뜻에 반하는 죄로 규정하고, 그에 대한 벌로 지옥에 떨어진 프란체스카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것과는 달리, 단눈치오는 이에 대한 도덕적인 판단을 하지 않는다. 그의 목적은 두 사람을 단죄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베리스모 오페라처럼 불륜을 저지른 연인들의 비극적 최후를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단눈치오가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사랑을 자기 작품의 소재로 선택한 것은 그 자체가 '죄악,이고 ,불륜'이기 때문이다. 데카당스 작가들은 사랑을 미화하지 않는다. 사랑 자체를 죄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죄악을 쾌락의 원천으로 삼는다. 악을 행하는 것에서 지고의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프란체스카와 파올로는 지옥의 꺼지지 않는 불처럼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 욕망으로 서로의 육체를 탐닉한다. 이렇게 욕정의 늪에 빠진 두 사람의 모습을 단눈치오는 요란한 말의 성찬으로 풀어냈다. 

 

하지만 프란체스카가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자 파올로를 놓아준다. 

이때를 놓칠세라 파올로가 단검을 뽑는다. 지오반니 역시 물러서며

칼을 뽑는다. 그러고는 파올로에게 공격을 가한다. 칼이 부딪치며 

한차례 섬광이 인다. 이때 프란체스카가 둘 사이에 뛰어든다. 가슴에

관통상을 입은 프란체스카가 비틀거리다가 파올로 쪽으로 쓰러진다. 

파올로는 칼을 떨어뜨리며 팔로 그녀를 받는다. 파올로는 한순간 멈

칫 하다가 프란체스카가 파올로의 가슴에 파고들어 입술로 그의 향

긋한 입술을 덮는 것을 보고 광분한 나머지 지오반니는 옆구리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한다. 한 덩어리로 얽힌 두 남녀의 육신이 기울

어질 듯 흔들거린다. 신음 소리 한번 없이 두 사람은 서로 엉킨 채

바닥에 쓰러진다.

 

단눈치오의 <리미니의 프란체스카>는 ,피와 욕정의 서사시'이다. 여기서 프란체스카와 파올로는 욕정의 마지막 남은 한 방울까지 모두 소진시키는 욕망의 화신으로 나온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의 입술을 탐닉한다. 지오반니의 칼에 맞은 프란체스카가 파올로의 품에 쓰러지면서 자신의 입술을 파올로의 입술에 포갠 것이다. 그러한 행동이 지오반니의 행동을 화를 더욱 돋우었음은 물론이다.  분노한 지오반니는 파올로의 옆구리를 칼로 힘차게 찌르고, 치명상을 입은 파올로는 프란체스카와 몸이 엉킨 채 바닥에 쓰러진다. 여기서 단눈치오는 "죽어가는 프란체스카의 입술이 정부의 향긋한 입술을 덮는다." "한 덩어리로 얽힌 두 육신" 이라는 표현을 썼다. 잔인한 살인과 죽음의 순간을 탐닉하는 데카당스의 전형을 보여준 것이다. 

오페라 <리미니의 프란체스카>에서 데카당스는 신비롭고 몽환적인 인상주의 기법으로 치환된다. 잔도나이가 이 오페라를 작곡할 당시 그는 음악적인 기로에 서 있었다. ,푸치니의 계승자'라는 세간의 평가에 부응해 이탈리아 서정 오페라의 전통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푸치니가 "알프스 저편에서 음악의 성병"이라고 극렬하게 비난했던 모더니즘을 따를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푸치니의 뒤를 따랐다면 베리스모오페라가 되었을 것이고, 모더님즘을 추구했다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와 비슷한 오페라가 되었을 것이다. 

잔도나이는 베리스모어페라 작곡가인 마스카니의 제자이자, 이탈리아 서정 오페라의 거장 푸치니의 계승자로 꼽혔던 인물이다. 한때 드뷔시의 인상주의 오페라에 크게 매료되었으며, 프랑스 상징주의 문학에도 심취했다. 그런가 하면 바그너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풍성하고 다채로운 관현악법에도 큰 영향을 받았는데, 이렇게 다양한 잔도나이의 경험은 오페라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라미니의 프란체스카>는 빛과 그림자, 잔혹함과 부드러움, 폭력과 사랑이라는 대조적인 정서가 공존하는 오페라이다. 잔도나이는 그 콘트라스트를 음악의 대비를 통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도록 했다.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사랑은 인상주의적인 기법을 구사해 탐미적으로 그렸고, 지오반니와 말라테스티노의 야만성은 말의 억양을 그대로 살린 성악 파트와 강렬한 오케스트레이션을 통해 사실적으로 그렸다. 

원작으로 삼았던 단눈치오의 시극에서 잔도나이는 ,피비린내'를 제거했다. 중간에 치열한 전투 장면과 말라테스티노가 포로들을 고문하고 죽이는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프란체스카와 파올로가 지오반니의 칼에 맞아 죽는 피날레도 오페라는 아주 간략하게 처리한다. 그냥 후딱 끝난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잔도나이가 자신의 오페라를 통해 구현하고 싶었던 것은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사랑이었던 것 같다. 금지된 사랑이기에 더욱 간절하고 위태로운 사랑, 그 사랑을 잔도나이는 곧 사라지고 말 백일몽처럼 황홀하게 그렸다. 특히 프란체스카와 파올로가 처음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1막의 후반부는 마법과 같은 신바로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아름다운 시녀들의 합창이 울려 퍼지고, 류트, 피페로, 비올라 폼포사와 같은 이국적인 악기들의 오블리가토(주 멜로디에 얽히는 또 하나의 멜로디 라인)가 아라베스크 무늬처럼 화려하게 펼쳐진다. 음악이 너무 아름다워 그 순간에 완전히 귀의하고 싶은 충동이 일 정도다.

단눈치오의 희곡과 잔도나이의 오페라는 모두 20세기 초에 쓰였다. 하지만 그 정신에 있어서 이 두 작품은 스러져가는 세기말적 징후를 보여준다. 두 예술가는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사랑은 물론, 그로써 겪게되는 두 사람의 심적 고통과 비극적인 죽음마저도 탐닉한다. 

그리하여 프란체스카를 지옥에 보낼 수밖에 없었던 단테의 고뇌를 무색하게 만든다. 13세기의 프란체스카는 불륜의 사랑을 저지른 죄로 지옥에 갔지만, 19세기 말의 프란체스카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빈사의 백조처럼 아름답게 꺼져가는 데카당스의 화신이 되었다.

 

유언장 위조범잔니 스키키

 

<산곡>의 지옥편에 나오는 사람들은 이승에 있을 때 어떻게 살았을까? 요즘 말대로 하자면 아마, 잘 먹고 잘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살아 있을 때 ,잘 먹고 잘 살려고' 남을 속인 댓가로 지옥에서 완전히 미치광이가 되어 남을 물어 뜯는 벌을 받는 사람이 있다. 바로 피렌체 사람 잔니 스키키이다. 

단테는 지옥의 여덟 번째 층에 있는 위조범울 벌하는 곳에서 고향 사람 잔니 스키키를 발견한다. 잔니 스키키는 단테와 동시대 사람으로 우언장을 변조한 죄를 지었다. 변장술에 능했던 그는 죽은 아버지의 유산을 노리는 시모네 도나티의 부탁을 받고, 시모네의 죽은 아버지로 변장한 다음, 거짓 유언을 했다. 그리고 죽은 후에 유언장을 변조한 죄로 지옥에 떨어져 온갖 고초를 겪는데, 단테는 그 광경을 <지옥> 제30곡에서 자세하게 묘사했다.

 

우리에서 풀려 뛰쳐나오는 돼지 떼처럼

서로를 물어뜯으며 내달리던 두 명의 비쩍 마른 

망령들보다 잔인하지도 모질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중 하나가 카포키오에게 덤벼들어

목덜미를 이빨로 물어 질질 끌고 갔다.

배가 돌바닥에 긁혔다.

 

이 광경을 보던 아레초 사람이 덜덜 떨며

내게 말했다. "저 미친 망령은 잔니 슽키키요.

저렇게 광포하게 우릴 쫓아다니며 괴롭힙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다른 망령이 당신을 

물어뜯지 않으면 좋겟소만, 그 망령은 대체 

누구요? 가버리기 전에 말해주시오."

 

"죄많은 미라의 오래된 영혼이오.

미라는 올바른 사랑에서 벗어나

자기 아버지의 연인이 되었소.

 

이 여자는 다른 사람으로 변장해서

대범하게도 자기 아버지와 죄를 지었소.

저기 가는 저놈과 마찬가지였소.

 

저놈은 가축 중 제일 좋은 놈을 얻기 위해

부오조 도나티로 변장해서 

유언을 했고, 유서를 변조했소."

 

<지옥>에 나오는 잔니 스키키에 대한 정보는 지극히 단편적이다. 피렌체 사람이고, 시모네의 부탁을 받고 그의 아버지로 변장해 유언장을 위조한 다음 그 대가로 가축 한 마리를 받았다는 것이 전부이다. 그런데 이탈리아 작곡가 푸치니는 이 이야기를 토대로 흥미진진한 희극 오페라 <잔니 스키키>를 만들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단테의 <신곡>은 등장 인물이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해주는 별도의 주석이 없으면 이해하기 힘든 작품이다. 그래서 상세한 첨부해서 책을 출판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1866년 이탈리아 문헌학자 피에트로 판파니가 펴낸 <신곡>의 주석에 잔니 스키키의 유언장 위조 사건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와 있었다. 14세기의 피렌체 사람이 말했다는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병을 앓아 죽을 때가 임박한 부오조 도나티는 사람들 앞에서 유언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아들 시모네가 이를 막았다. 아버지가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유산을 남길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결국 보오조 도나티는 유언을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시모네는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을 숨겼다. 아버지가 앓아 눕기 전에 이미 유언장을 작성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황한 시모네는 잔니 스키키에게 조언을 구했다. 잔니 스키키는 부오조가 아직 죽지 않은 것처럼 하고, 자기가 죽어가는 부오조로 변장해서 유언을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시모네가 원하는 것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 

드디어 공증인이 들어오고 가짜 부오조의 유언이 시작되었다. 잔니 스키키는 일꾼이나 교회에 조금씩 나누어 준다는 말로 유언을 시작했다. 시작은 그런데로 괜찮았다. 시늉으로라도 교회에는 어느 정도 주어야 하니까.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가짜 부오조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내 재산 중 500플로린을 잔니 스키키에게 준다."

당황한 시모네가 급히 사태 수습에 나섰다.

"아버지, 그런 말은 이 유언에서 할 필요가 없는 말이에요."

그러자 가짜 부오조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다. 애야, 나는 잔니 스키키에게 줄 거야. 내 재산을 내 마음대로 주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니? 너한테도 충분히 줄 거야. 아마 만족할 거다."

이 말에 시모네는 침묵을 지켰다. 속이 부글부글 끓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것이 연극이라는 사실이 들통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 유언은 계속되었다. "난 잔니 스키키에게 내 노새를 준다."

잔니 스키키는 부오조가 토스카나 지방에 좋은 품종의 노새를 기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노새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이런 유언을 한 것이다. 그 말에 시모네가 당황했다. 

"아버지, 잔니 스키키 씨는 이 노새하고 아무 상관도 없어요.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아버지보다 내가 더 잘 알아요."

시모네는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유언은 계속 되었다. 

"이웃 사람이 나에게 빚진 100플로린도 잔니 스키키 씨에게 넘긴다. 그리고 지금 말한 나의 유언을 15일 이내에 실행에 옮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모든 유산을 교회에 넘긴다."

유언이 끝나고 사람들이 모두 돌아갔다. 잔니 스키키가 침대에서 나오고 대신 그 자리에서 죽은 부오조의 시신이 눕혀졌다. 잔니 스키키와 시모네는 울면서 사람들에게 부오조가 사망했음을 알렸다. 

여기까지가 <신곡>의 주석에 나오는 잔니 스키키 유언장 위조 사건의 전말이다. 내용이 너무 자세해서 사실보다는 픽션에 가까울 가능성이 크지만, 여하튼 이것이 오페라 작곡가 푸치니와 대본작가 포르차노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오페라 <잔니 스키키>이다.

 

희극 오페라의 소재가 된 지옥

 

<잔니 스키키 Gianni Schichi>는 푸치니의 <삼부작2 Tritico>중 제3편에 해당된다. <삼부작>은 분위기가 각각 다른 세 편의 오페라를 한 자리에서 공연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다. 제1편 (외투2 Tabarro)는 삼각관계가 빚은 치정 살인을 그린 비극이고, 제2편 <수녀 안젤리카 Suor Angelica>는 수녀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애절한 서정 드라마이며, 제3편 <잔니 스키키>는 유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을 그린 유쾌한 희극이다. 이 세 편이 단테의 <신곡>중 각각 지옥, 연옥, 천국을 대변한다는 말도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단테의 <신곡>과 관련이 있는 것은 <잔니 스키키> 한 편 뿐이다. 

오페라의 배경은 1299년 피렌체, 이 지역의 부호 부오조의 집에 친척들이 모여 있다. 오페라는 소란스러운 오케스트라의 불협화음ㅇ로 시작한다. 악기들이 이음줄과 스카타트로 이루어진 특이한 음형을 반복해서 연주하는데, 이것이 바로 ,애도'모티프이다. 애도라고는 하지만 전혀 슬픈 느낌이 들지 않는다. 속마음은 딴 데 있으면서 겉으로는 억지로 슬픈 척하는 ,거짓 울음'을 우스꽝스럽게스럽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친척들은 하나같이 "불쌍한 부오조"라고 슬퍼하지만 사실 이것은 거짓 슬픔이다. 그들의 머릿속은 부오조가 남긴 막대한 유산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다. 부오조가 전 재산을 수도원에 기증했다는 기증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데,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이때문에 친척들은 서로 유언장을 찾으려고 난리법석을 떤다. 그러는 동안 애도의 모티프는 여러 가지 형태로 반복해서 나타난다.

드디어 치타의 조카 리누치오가 금고 안에서 유언장을 찾아 낸다. 모두들 초조한 마음으로 유언장을 뜯고 있는 동안, 혼을 비롯한 금관 악기들이 하강하는 음형으로 이들의 초조한 마음을 드러낸다. 유언장에는 그들의 우려대로 모든 재산을 수도원에 기증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러자 음악이 곧바로 비장한 무드로 돌아간다. 금관악기까지 동원한 오케스트라의 울림이 친척들이 느끼는 절망감이 얼마나 큰 것인지 보여준다.

이들의 절망감은 곧 자기들의 재산을 빼앗아갈 교회와 신부에 대한 분노로 이어진다. 친척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분통을 터트리는 이 대목은 매우 빠르고 리드미컬하게 전개된다. 예사롭지 않은 불협화음과 리듬의 사용, 악기의 절묘한 조합을 통한 음악적 유머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들이 각종 새들의 이름을 연달아 주위섬기는 대목이 재미있다.

 

신부들이 도나티 가문의 재산으로 돼지가 되어가는 것을 보게 되겠군. 

그 멋진 금화들이 모두 신부들의 사제복 속으로 들어간단 말이지?

우리의 재산을 전부 빼앗아 신부들이 신부들이 흥청망청 잔치를 벌인

다니. 신부들이 우리 포도밭에서 나온 포도주를 들이키는 동안 더 이상

시나에서 술도 못마시겠구먼, 우리가 분통을 터트리는 동안 엄청 쳐먹

어서 사제복의 폼이 점점 늘어나겠지. 산타 페파타라 수도회가 내 행복

을 앗아가다니, 팔자 좋은 신부들아 수도원의 식품 창고를 열고, 이빨을

갈아 놓아라. 일등급 과일과 채소들로 입맛을 다셔보아라. 불쌍한 수도

사들아, 여기 살찐 지바퀴들이 있다. 맛깔스런 메추리들, 종달새, 산새,

휘파람새, 맛있는 메추리, 살찐 거위들, 산새들, 수닭들, 영계들, 가장

부드러운 영계들, 그렇게 쳐먹어서 건강해진 얼굴로, 붉고 기름진 뺨으

로 이렇게 말할 거야. 봐라! 저기 돈티 가문 사람이 간다. 저 사람들은

유산을 받기를 원했었지. 형제들이여 우리 저들을 비웃읍시다. 도나티

가문의 재산을 비웃읍시다.

 

하지만 친척들은 부오조의 유산을 결코 교회에 빼앗길 수 없다는 생각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그래서 무슨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는데, 리누치오가 이 문제를 잔니 스키키와 상의하자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잔니 스키키를 부르는 것을 꺼리는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그가 타향 출신이기 때문이다. 사실 리누치오는 잔니 스키키의 딸 라우레타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데, 도나티 가문 사람들은 모두 이들의 결혼을 반대한다. 도나티 가문의 남자가 근본도 모르는 타향 출신의 농부 딸과 결혼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단테의 <신곡>에는 안 나와 있지만, 이 대목은 원작자인 단테의 의중을 반영하고 있다. 단테는 지역과 계급에 대한 편견이 심한 보수주의자였다. 피렌체의 순수 혈통인 겔프 가문 사람이라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던 단테는 피렌체 출신이 아닌 사람이나 농부같이 미천한 신분의 사람들을 협오했다. 

이런 단테의 생각은 <지옥>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지옥에서 세 명의 피렌체 귀족들을 만난 그는 자기 고향에 대해 궁금해하는 그들에게 피렌체가 '벼락부자,들의 소굴이 되었다고 한탄한다. 벼락부자란 신분은 미천하지만 장사와 같은 일로 돈을 번 사람들을 말한다. 단테는 그런 사람들을 경멸했는데, 잔니 스키키도 그중 하나였다. 그가 <지옥>에서 잔니 스키키를 지옥의 밑바닥인 여덟 번째 층에 가두고 완전히 미치광이로 만들어버린 것도 이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의 아내 젬마는 잔니 스키키에게 농락당한 도나티 가문 출신이었다. 그러니 잔니 스키키를 좋게 볼 리 없었다. 불륜의 죄를 저지른 프란체스카는 상대적으로 벌이 가벼운 지옥의 위 칸에 두고, 유언장을 위조한 잔니 스키키는 벌이 무거운 지옥의 아래 칸에 두었다. 한 사람의 지역과 신분에 대한 편견이 때로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법이다. 

 

피렌체 찬가

 

하지만 도나티 가문의 젊은이 리누치오는 깨인 생각을 가진 청년이다. 그런 속 좁은 편견을 버리라면서 지역주의의 편견을 타파하는 노래<피렌체는 꽃피는 나무와 같죠Firenze e come un albero fiorito>를 부른다. 노래는 금관악기들이 당당하게 저음부를 받쳐주는 가운데 마치 팡파르처럼 씩씩하게 전개된다. 그러다가 중간에 서정적인 아리아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O, miobabbino caro>의 선율이 살짝 나타나기도 한다. 

 

페렌체는 꽃피는 나무와 같죠.

줄기와 잎새는 시뇨리아 광장에 있지만 

그 뿌리는 맑고 비옥한 계곡으로부터

새로운 생기를 빨아드리죠.

별들까지 닿을 듯한 장엄한 대저택과

미끈한 탑들과 더불어 피렌체는 꽃핍니다.

아르노강은 바다로 들어가기 전에

산타 크로체 광장에 입 밎추며 노래하죠.

개울들도 모두 모여 함께하는 그 노래는

너무나도 달콤하고 부드럽죠.

그처럼 여기 저기서 모여든

여러 예술가들과 과학자들이

피렌체를 풍요롭고 화려하게 만들지요.

멋진  탑을 세우기 위해 엘자 계곡의 성채에서 온

아로놀포를 환영합시다.

통 큰 거상인 메디치를 환영합시다. 

옹색한 심술과 미움은 이제 됐습니다.

새로 온 이주민들과 잔니 스키키여 영원하라!

 

여기서 리누치오는 산타 크로체 성당과 피렌체 대성당, 베키오 궁전을 설계한 아르놀프와 두오모 광장에 있는 종탑을 설계한 지오토디 본도네 그리고 유명한 예술 후원 가문인 메디치를 찬양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본래 피렌체 사람이 아니고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인데, 피렌체로 와서 문화와 예술의 꽃을 피웠다는 것이다. 노래를 부르는 목적은 역시 타향 사람인 잔니 스키키를 추켜세우기 위한 것이지만, 그 속에는 문화예술의 도시 피렌체에 대한 자부심도 있다. 

곧 잔니 스키키와 라우레타가 도착한다. 두 사람이 입장할 때 다시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의 선율이 살짝 나온다. 이 선율은 오페라에서 라누치오와 라우레타의 사랑의 테마처럼 사용된다. 잔니 스키키와 부오조의 침상을 들여다보고 그의 죽음을 확인하는 동안에는 앞에서 나왔던 애도의 모티프가 나온다. 잔니 스키키는 슬픈 척하는 친척들의 연기력에 감탄을 보낸다. 

도나티 가문의 사람들은 잔니 스키키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리누치오의 고모 치타는 지참금 없이 조카를 결혼 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고, 이 말을 들은 잔니 스키키는 화를 내면서 다시 돌아가려 한다. 리누치오가 유산을 되찾는 일을 도와달라지만 저런 부류의 인간들을 도울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한다. 여기서 오케스트라는 매우 그로테스크한 음향으로 잔니 스키키의 분노를 드러낸다. 

그런데 치타와 잔니 스키키가 서로 막말을 주고 받는 동안에도 리누치오와 라우레타는 서로를 간절히 원한다 .두 사람이 사랑의 눈길을 주고 받는 이 대목은 음악적으로 매우 서정적으로 처리되어 있다. 갈등을 나타내는 그로테스크한 음악과 사랑을 나타내는 서정적인 음악이 교차해서 나타난다. 바로 이때 라우레타가 잔니 스키키의 품에 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유명한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를 부른다.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저는 그를 좋아해요.

그는 정말 잘생겼죠.

저는 결혼 반지를 사기 위해 

포르타 로사 거리로 가길 원해요.

그래요. 그래요. 정말로 가기를 원해요.

제가 만약 헛되이 그이를 사랑했다면 

베키오 다리로 가서

아르노 강물에 몸을 던질 거예요.

저는 조바심이 나고 고통스럽답니다.

오! 주여!

저는 죽길 원해요.

아버지.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제목만 보면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담은 노래처럼 보인다. 제목 뿐만 아니라 멜로디도 그렇다. 그 서정적인 멜로디를 듣고 있으면 아버지를 존경과 사랑이 담뿍 담긴 눈으로 바라보는 딸의 모습이 연상된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이런 상상과는 거리가 멀다. 리누치오와 사랑에 빠진  라우레타가 아버지에게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간청하면서 이 노래를 부르는데, 그 내용이 거의 협박 수준이다. 그녀는 만약 자기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강물에 몸을 던지겠다며 아버지를 위협한다. 그리고는 "저는 죽고 싶어요."라는 말로 다시 한번 아버지의 놀란 가슴에 쐐기를 박는다. 

자기 말에 안절부절 못하는 아버지를 보고 라우레타는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오! 신이여, 저는 죽고 싶어요."라고 노래할 때는 은근슬쩍 그것을 즐기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마지막에 애원조로 "아빠, 불쌍히 여겨 주세요. Babbo Pieta Pieta"라고 노래하지만 사실 베키오 다리에 가서 아르노 강에 몸을 던지겠다는 말을 했을 때부터 이미 결론이 난 것이나 다름없다. 딸이 죽겠다는데, 허락하지 않을 아버지가 어디 있을까. 그렇게 아버지의 맹목적인 사랑을 담보로 딸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

노래의 마지막에 나오는 단어 ,Pieta'는 '불쌍히 역소서'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이 단어가 나올 때는 대개 심각한 상황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베르디의 <리골레토>에서 리골레토가 자기 딸을 납치한 대신들에게 딸을 돌려 달라고 애원할 때 'Pieta Pieta'라고 노래한다. 딸을 잃은 아버지의 처절한 절규가 그렇게 통렬할 수가없다. 

하지만 <오! 사랑하는 아버지>에서의 'Pieta'는 다분히 응석이 섞여 있는 애원이다. 죽겠다는 협박으로 이미 충격에 빠진 아버지에게 살짝 간청의 형식을 갖추기 위한 장치라고나 할까. 단어에 실린 멜로디는 정말로 간절하지만, 오히려 그 간절함에서 과장 연기의 의도가 엿보인다. 결국 잔니 스키키는 딸의 결혼을 위해 유산을 나누는 일에 개입하기로 한다. 그는 부오조가 죽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니 자기가 부오조로 위장해서 새 유언장을 작성하겠다고 제안한다. 그러자 친척들은 각자 받고 싶은 유산이 어떤 것인지를 말한다. 잔니 스키킨ㄴ 그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기로 약속한다. 그러면서 만약 속임수를 썼다는 것을 들키는 날에는 모두 오른 손이 잘린 후 피렌체에서 추방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부오조로 위장한 잔니 스키키는 공증인 앞에서 유산 분배에 대한 유언을 한다. 장례식과 수도승들을 위하여 실제적으로 계산된 비용들 이외에는 일제 수도원에 기증하지 않는 대신, 친척들에게는 기본적인 재산이 돌아가도록 한다. 그런 다음 마지막으로 중요한 재산에 대한 유언이 시작된다. 

 

나는 금화 300 플로린의 가치가 있는 토스카나 지방의 노새를 내 헌

신적인 이웃 잔니 스키키에게 물려준다. 피렌체의 이 저택은 헌신적

이며 충직한 사랑하는 내 친구 잔니 스키키에게 물려준다.

 

이 말을 듣고 친척들이 경악을 금치 못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중세의 피렌체 법에 따르면 유언장을 위조한 사람은 팔목을 자르고 피렌체에서 추방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잘 아는 잔니 스키키는 유언 중간에 이런 상황을 빗대는 "천국같은 하늘이여. 안녕! 잘린 팔을 흔들며 내게 작별을 고한다." 라고 말한다. 

잔니 스키키는 부오조의 마지막 남은 유산인 시냐의 방앗간 마저 자기가 갖는다. 

 

시냐의 방앗간은, 피렌체여. 안녕. 내 절친한 친구 잔니 스키키에게 준다.

 

중간에 들어간 '피렌체여, 안녕!'은 유언장 위조범이 받게 되는 벌을 상기시키는 일종의 협박용 멘트이다. 

드디어 유언이 모두 끝났다. 공증인이 나가자 친척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잔니 스키키에게 덤벼든다. 하지만 그는 이제부터 이 집의 주인은 자기라면서 친척들을 쫓아낸다. 아버지가 부오조의 유산을 상속받게 되면서 라우레타는 리누치오와 결혼할 수 있게 되었다. 두 연인은 밝은 태양이 비치는 피렌체를 바라보며 행복한 미래를 설계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잔니 스키키가 관객에게 이렇게 말한다.  

 

신사 숙녀 여러분, 어디 한번 말해보세요. 부오조의 돈을 이보다 더 

잘 쓸 수 있었을까요? 사람들은 못된 속임수에 대한 벌로 절 지옥에

보냈지요. 그러라지요. 하지만 여러분께서 오늘 저녁을 즐기셨다면 ,

우리의 위대한 단테께서도 정상을 참작해서 저를 용서해 주시지 않

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