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외숙모의 장례식

운우(雲雨) 2016. 2. 28. 08:58

지난 25일이다.

강의를 듣고 있는데, 카톡에 글자가 뜬다.

"형, 엄마, 오늘 넘기기 힘들대."

"어느 병원에 계시는데?"

"고대 안암병원. 4층 중환자실."

"알았어. 끝나면 들릴께."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잠시 후 다시 휴대폰에 문자가 뜬다.

"형, 엄마 금방 돌아 가셨어."

그 동안 간경화증으로 고생하더니 나의 세째 외숙모가 돌아 가신 것이다.

착하게만 살았던 외숙모였는데 밑에 동생이 속을 썪이다 그 동생을 간암

으로 잃고 오랫동안 가슴앓이를 앓으며 살아온 세월이었다.

거기에 4년 전 잉꼬처럼 살던 외삼촌이 교통사고로 죽었으니 마음은 더

아팠을 것이다.

우리는 아버지가 3대 독자였기에 가까운 친척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형제들은 외삼촌댁과 더 가까이 지냈고 외사촌들과는

형제처럼 지냈다.

또 외숙모는 어머니가 돌아 가신 후 어머니처럼 다정다감했던 사람이었다.

생각에 빠져 있을 때 휴대폰에 다시 문자가 뜬다.

"형, 고대 병원에 모실 방이 없어 청량리 성바오로 병원으로 옮기기로 했어."

"응, 알았다."

나는 마침 나에게 와 있던 누나와 함께 성바오로병원으로 향했다.

성 바오로 병원으로 가보니 아직 빈소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조금 있으니 흰 국화꽃이 들어오고 밖에 조화도 하나 둘 놓이기 시작한다.

나도 내 이름으로 조화를 하나 주문했다.

소설가 아무개라고 쓴 조화가 빈소  앞에 자리를 잡으니 좀 보기가 나은 것

같다.

그렇게 조금 있으니 우리 형제들이 하나 둘 오기 시작한다.

8남매 식구들이 오니 모두 우리집 형제들의 판이다.

원래 초상집은 첫날은 조문객이 별로 없게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 형제들이 자리를 채우니 한결 초상집 분위기가 난다.

그렇게 여럿이 모여 돌아가신 고인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옛날 시집온 날 연지곤지 찍고 외갓집 안방에 앉아 있었던 모습의 이야기

부터 시작해 외삼촌 군대에 있을 때 상관의 명령으로 사고를 치게된 일이

있었다.

그로 인하여 외삼촌이 군대 감옥에 가 있게 되었다.

그때 외숙모는 면회를 가며 매일 울었다.

그런 일을 처음 당해본 외숙모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을 것이다.

지나간 일이기에 우리는 고인을 생각하며 이 이야기를 화제로 올려 이야기

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그 당시의 외숙모 마음이 어땠을까?

시집온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새색시 때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이야기의 꽃을 피우는 동안에 시간이 가고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도 다시는 보지 못할 외숙모가엾다는 생각만 들었다.

땅에서는 슬픈 일도 많았지만 하늘에 가서는 늘 좋은 일만 있기를 기도하는 

음으로 돌아 왔다.

"외숙모, 이젠 모든 것 내려 놓으시고 편히 쉬세요."

나는 가만히 집으로 향하는 전철안에서 외숙모의 인자했던 모습을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