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백령도 문학기행을 다녀와서.....

운우(雲雨) 2011. 11. 6. 11:35

 

10월 27일 벡령도를 가기 위해 간단한 짐을 배낭에 챙기고 집을 나섰다.

우선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로 향했다.

나는 약속을 잘 지키는 편이기에 좀 약속 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나갔다.

약속 시간이 되니 전화가 걸려 왔다.

함께 나와 간단한 먹을 거리를 사서 배낭에 챙겼다.

그런 다음  친구의 배려 덕분에 친구의 차로 연안부두에 편히 도착을 할 수 있었다.

원래는 백령도를 함께 갈 친구들과 동인천역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차로 오니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연안부두의 식당에서 매운탕을 시켜 간단한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 어느 때 보다도 맛난 저녁 식사였다.

시간을 보니 동인천역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때 마침 전화가 온다.

동인천역에서 만난 후 자유공원으로 장소를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유공원을 한바퀴 돈 다음 챠이나타운으로 장소를 옮겨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친구의 덕분에 무사히 자유공원에 내려 일행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를 자유공원에 내려 주고 친구는 혼자 차를 몰고 떠났다.

미안한 마음 금할 길 없었다.

자유공원을 걸어 내려온 일행은 차이나타운으로 향했다.

차이나타운에서 김진초 작가의 안내로 인천문인협회의 단골이라는 동좌란 중국요리집으로 들어갔다.

차이나타운에 있는 중국집은 아무 곳에나 있는 그런 중국집이 아니었다.

주인도 종업원들도 한결같이 중국말을 쓰고 있었다.

요즘 부쩍 늘어난 중국 관광객을 잡기 위해 그렇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에겐 조금 불편한 점이 있었다.

우리가 한국인이라 한국말을 하는데 중국인 종업원의 한국말이 매우 서툴렸기 때문이다.

잠시 후 나온 음식들은 내가 중국에 갔을 때 보았던 푸짐한 음식 그대로였다.

그러나 다른 것은 중국에서 먹었을 때의 독특한 향이 있는 음식은 아니었다.

한국인 입맛에 맞게 만든 음식이라 다들 잘들 먹는다.

그러나 나는 연안부두에서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었기에 먹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먹어 보라고 권하는 바람에 몇가지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저녁을 먹으며 주고 받는 이야기 속에 김병총 선생의 입심은 좌중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모두가 김병총 선생의 입김에 압도되어 웃음꽃이 만발하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택시 3대를 불러 4명씩 나누어 타고 연안부두에 도착을 하니 택시비가

5.600원가량 나온다.

연안부두에 내려 숙소를 잡으려 하니 숙소를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모든 모텔들이 손님이 만원이라 초저녁부터 불을 끈 곳이 대부분이었다.

몇시간인가를 헤매었을 것이다.

연안부두에서 떨어진 곳에 블랙로즈란 모텔이 비어 있는 방이 있었다.

그곳에서 여장을 풀고 있는데 늦게 곡성에서 이재백 선생님이 올라 왔고 통일문학포럼의 멤버들인

이정, 최태형, 안성교, 오효진 등 몇명이 더 가세를 하였다.

이재백 선생이 저녁을 먹지 못한 관계로 늦은 시간에 식당을 찾았으나 그 시간에 식당이 있을리 없었다.

할 수 없이 찾아든 곳이 호프집이었다.

호프집에서 1시 30분까지 맥주를 마신 후 숙소로 돌아 오니 방엔 사람들이 만원이다.

숙소는 우리가 잡고 숙박비도 모두 지불 했는데 주객이 뒤바뀐 것이다.

할 수 없이 껴서 새우잠을 잘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라도 잠을 잔 후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를 했다.

그리고 짐을 챙긴 후 식당에 들려 북어 해장국을 시켰다.

그런데 잠시 후 많은 사람들이 식당의 큰 홀을 꽉 채울 정도로 밀려 들어 온다.

알고 보니 중국인 관광객들이었다.

이제서야 지난 밤에 모텔들이 불을 끄고 손님을 받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식사 후 연안부두에 나가니 벌써 함께갈 동료들이 반가운 얼굴들로 맞이해 준다.

그리고 8시 50분 배에 승선을 했다.

4시간 반을 뱃길로 가는 길이 지루한 것 같다.

일부는 배 뒤 갑판에서 술판을 벌리고 있다.

말 그대로 망망대해를 뱃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가는 길에는 작은 섬하나 보이질 않는다.

그렇게 도착을 하니 1시 30분이 넘어 있었다.

버스에 오르니 우리가 1박을 할 숙소로 안내를 한다.

그곳에 짐을 풀고 옆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음식은 대부분이 해물 일색이다.

식사를 마치고 간 곳은 두무진, 해풍에 깎인 바위의 형상들이 너무 기묘하게도 아름답다.

두무진을 돌고 오니 저녁시간이다.

저녁은 싱싱한 회가 나왔다.

함께 식사를 한 여성 작가인 구자인혜와 이승채가 남자들보다 더 잘 먹는다.

많이 배가 고팠던 듯....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세미나실로 향했다.

세미나의 타이틀은 <2011 백령도 "분단에서 통일로 가는 심포지엄">

주제는 "북한문학 어디까지 왔나"였다.

발표는 문학 평론가 임ㅇㅇ이었다.

그러나 평론가 임ㅇㅇ의 순서에 앞서 손ㅇㅇ  부이사장이 폐암 수술을 받은 관계로 참석치 못한

이동하 이사장을 대신해 한 인사말에서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 대한 우파적인 발언을 하자 집어

치우라는 야유가 터져 나왔다.

이런 모습을 보았을 때 문학단체에도 사상적인 면에서 골이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또한 "분단문학 어디까지 왔나"의 주제 발표자인 평론가 임ㅇㅇ도 진보적 성향인 인물이란 걸

알 수가 있었다.

세미나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 오니 앞마당에서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파티에 앞서 우리는 최정호 작가가 배가 출출하다 하여 백령도 시내에 나가 라면이라도 한그릇 하자

하여 시내로 나왔다.

그러나 조그만 시내에 다방이 왜 그리 많은지 자그만치 열 몇개가 된다고 하였다.

아마 군인이 많은 섬이기에 면회 오는 사람들에겐 만남의 장소가 필요해 그렇다는 것이었다.

간단하게 라면을 시켜먹고 오니 앞마당에선 파티가 거나하게 열리고 있었다.

"내일은 비"를 써서 150만부 판매 기록을 달성했던 김병총 선생과 미스터 고대 출신인 정태룡 선생과

함께 자리를 했다.

김병총 선생이 옛날 이야기들을 누에 실풀어 내듯 술술 잘도 풀어 낸다.

많이 웃으며 12시가 넘도록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아침식사를 마치고 천암함 전몰장병 위령탑을 참관하기 위하여 위령탑으로 향했다.

그곳에 가기 전에 북한 장산곷이 빤히 보이는 곳에서 해병 장교의 브리핑을 들었다.

정말 북한의 포들이 즐비하게 포진한 장산곷이 지척에 있었다.

그러나 백령도는 최전선에 있는 섬이었지만 적과 대치하고 있는 최전방의 긴장감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해병 장교의 브리핑을 듣고 천안함 전몰장병 위령탑으로 향했다.

위령탑에는 그때 조국의 바다에서 꽃으로 산화한 젊은 넋들의 흉상이 하나하나 새겨져 있었다.

그곳에서 묵념을 하고 내려와 심청각으로 향했다.

그곳엔 심청각이란 누각이 있었고 심청의 상이 서 있었다.

그런데 재미 있는 것은 심청이 치마를 걷어 올린 상태의 상이었다.

그것을 보고 한 여류 작가가 한마디 농담을 던진다.

"쟤는 인당수에 투신을 하면서 왜 치마를 걷어 올리고 자기 아랫도리를 보여주고 싶었을까?"

그러자 와~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심청각을 한바퀴 돌면서 사진들을 찍고 콩돌해변으로 나갔다.

콩돌해변의 돌들은 참 예쁘기도 했다.

그러나 가지고 올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만약 가지고 나올 수 있는 것이라면 그곳의 돌들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콩돌 해변을 돌아 본 뒤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점심의 메뉴는 백령도에서 나는 메밀로 만든 냉면이었다.

식사를 끝낸 후 백령도 쑥으로 만든 한약재를 견학을 하고 선착장으로 가는 도중에 사곷해변을 돌아 볼 수 있었다.

물이 빠진 사곷해변은 정말 활주로로 쓸 수 있을 정도로 딱딱했다.

그곳에서 사진을 촬영을 한 후 버스에 타니 잠시 후 버스는 백령도 선착장에 도착을 한다.

이곳에서의 1박 2일의 코스가 모두 끝난 것이다.

또 다시 4시간 반이란 시간을 망망대해에서 보내야 한다.

그렇게도 술에 빠진 듯 마셔대던 김병총 선배는 더 이상 술을 마시지 못했다.

한계에 온 듯 계속 음료수만 마신다.

여기저기 구석에 한무리씩 떼를 지어 술판이 벌어졌다.

통일문학포럼 멤버들이 선내 좁은 통로에서 자리를 잡고 파티가 벌어졌다.

옆을 지나는 나를 끌어 앉힌다.

함께 어울리다 보니 어느새 인천연안부두에 도착을 했다.

어둠이 깔린 연안부두에 별안간 인파로 법석인다.

인천의 문인들이 저녁을 산다하여 모두 연안부두 앞에 있는 한국관이란 식당으로 갔다.

식사가 끝나는대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일행들 끼리 자리를 뜬다.

나도 식사가 끝나자 후배인 이승채와 함께 버스로 동인천역으로 이동을 한 후 지하철을 탔다.

이렇게 2박 3일간의 백령도 문학기행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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