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비가 내리면 나는 마음이 아파온다

운우(雲雨) 2015. 4. 19. 19:50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약 2년 전 멀리 떠나간 친구가 그리워진다.

 

2년 전 내가 잘 아는 후배에게 속아서 양주에 들어가 컨테이너 박스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그 후배가 공장을 열어야 하는데 전기세가 밀려서 공장의 문을 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은 내 원룸 보증금을 빼서 주면 그의 공장 컨테이너에서 살면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되고 또 내가 빼준 보증금으로 전기세를 지불해 공장을 돌리면 자신도 돈을 벌고 나에게도

 

이익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허나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달콤한 말을 많이 들어 왔기에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그러나 그 후배는 매일 같이 나를 찾아와 사정을 했고 나의 원룸에서 자고 가기도 했다.

 

나는 그가 돈을 번다는 생각에는 부정적이었지만 지금까지의 그의 행적을 보면 남의 돈을

 

떼어 먹을 사람은 아니라는 판단이 섰기에 6개월만 있기로 하고 원룸 보증금을 빼서 그

 

후배에게 주었다.

 

그는 그 돈을 주고 한전에 밀린 전기세를 주고 밀렸던 공장 건물의 세도 일부 주고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봄 상품으로 내어 놓은 상품은 그 해에 유행이 되지 않는 상품이었다.

 

한마디로 잘못 짚은 아이템이었다.

 

상품은 만들어 나갔지만 시장에서의 반응은 전혀 없었다.

 

그러자 그는 일을 보러 나간다고 하고는 소식도 없이 들어오질 않고 있었다.

 

아무리 휴대폰을 걸어 보았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자 건물 주인은 월세를 주지 않는다 하여 내가 살고 있는 컨테이너를 지게차로 실어다

 

큰길가 옆에 같다 놓는다고 으름장을 놓기 일 수였다.

 

이미 한 달이 지났기에 공장의 전기도 끊겼고 내가 살고 있는 컨테이너의 전기도 이미 끊겼다.

 

전기가 끊긴 상태에서 7월의 장마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간 방을 전기로 바닥을 따뜻하게 하여서 별일 없이 살았는데 전기가 나가니 바닥이 냉골이

 

되었고 방바닥이나 컨테이너 벽은 검은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다.

 

또 장롱에 있는 나의 옷에도 곰팡이가 피어나고 있었다.

 

전기불이 없어 컴컴한 밤, 비는 억수 같이 쏟아지고 있는데 휴대폰의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나는 컴컴한 방에서 휴대폰을 받았다.

 

친구 부인의 전화였다.

 

“진구씨, 은철이 아빠가 너무 아파요. 의사가 그러는데 올해를 넘기기 힘들다고 해요. 그런데

 

은철이 아빠 진구씨를 몹시 보고 싶어 해요. 은철이 아빠는 진구씨가 너무 힘들다고 연락하지

 

말라고 했는데 은철이 아빠가 진구씨를 너무 보고 싶어 해서 이렇게 몰래 연락을 드렸어요.

 

힘든데 미안해요.”

 

그러나 나에겐 그 후배 때문에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었다.

 

금년을 넘기기 힘들다 하였으니 그렇게 빨리 가겠나 하는 마음에 7월이었기에 조금의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8월 동료 시인이 도고에 집을 지어 이사를 해 그곳에 명수라는 친구의 화물 트럭을

 

타고 갔다.

 

마침 도고까지 간 길에 명수란 친구에게 친구의 이야기를 하고 공주까지 함께 가기를 요청을

 

했다.

 

명수란 친구는 쾌히 승낙을 한다.

 

난 급히 공주의 친구 부인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은철이 엄마지요? 지금 공주로 가려고 합니다.”

 

“늦었어요. 은철이 아빠 떠났어요.”

 

“그게 무슨 말이예요. 그 친구가 어디를 갔단 말입니까?”

 

“은철이 아빠 하늘나라로 갔단 말입니다. 그렇게도 진구씨를 보고 싶어 했는데~흑흑”

 

“아~ 난 금년 말 안이라 하여 조금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빨리 갔군요.”

 

“지금 장례식 치루고 산에서 내려 왔어요. 그렇지 않아도 은철이 아빠가 가기 전 진구씨

 

한테

 

연락을 한다 했더니 절대 하지 말라 하더군요. 진구씨 너무 힘든데 진구씨한테는

 

큰 부담이 될 거라고 했어요. 어차피 못 왔으니 나중 형편이 폈을 때 여유 있게 왔다가요.”

 

고마운 말이었다. 그러나 그 후배가 마지막 남았던 원룸 보증금까지 떼어먹고 도망을

 

갔으니 약 2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나는 그의 무덤에도 가질 못하고 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삼총사란 이름으로 늘 어울렸다.

 

밤에 만나 12시가 가까우면 통행금지가 있는 것을 원망하며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곤

 

했었다.

 

그와 나는 합기도란 운동을 함께 했었는데 그는 18기와 합기도를 합해 18단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그가 몸이 나빠진 것은 당뇨병을 앓고부터였다.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도 당뇨병이었다.

 

이사를 하던 중 엄지발가락에 어떤 물체가 떨어져 작은 상처가 난 것이 죽음에 이르게까지

 

된 것이다.

 

그 작은 상처가 낫지를 않고 깊이 썩어 들어가 결국 죽고 만 것이었다.

 

그 친구는 나와는 특별한 친구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렇게 비가 내리면 나는 2년 전 친구의 아내에게서 왔던 다급했던 그 목

 

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그가 떠나면서 했다는 말,

 

“언제인지 모르지만 예수님이 재림을 할 때 우리 그때 반갑게 만나자”

 

하고 떠났다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빗소리를 들으며 그때 그 밤 그녀의 다급했던 목소리가 들리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