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우(雲雨)의 소설 창작론

소설이란 무엇인가?

운우(雲雨) 2013. 1. 6. 23:52

 

소설이란 무엇인가?

 

 

소설은 고정된 물체가 아니고 정신적인 산물이며, 역사적 변천과 함께 무한한 변모의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정의를 내리기 쉽지 않다. 그러나 클린 브룩스와 워렌이 정의한 바처럼 「소설은 사실에 토대를 두고 있으면서 그 사실의 구성에 있어서는 조작된 이야기 즉 픽션(Fiction)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소설에 대한 정의는 소설의 다양한 성격을 말해주는데 대체로 소설은 다양한 인간 군상의 삶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짜여진 서사적 구조물이며, 이 이야기는 산문의 형태로 허구를 통해서 진실을 드러내는 것을 본질로 하고 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인간에 대한 해석이요 사회에 대한 깊은 천착이며 역사에 대한 냉철한 비판이다.
소설은 여러 문학장르 가운데 가장 근래에 생성 발전된 장르이지만 그 역사적 연원을 살펴보면 장구한 세월속에서 인류가 생산하고 향유해온 언어 예술이다. 먼저 어원을 고찰하면서 소설에 대한 정의를 밝혀보자. 어원을 살펴보면 오늘날 소설의 개념과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그 기원을 살펴볼 수 있는데 동양의 경우 고대 중국의 문헌에 나오는 소설의 개념은 다음과 같다.

* 飾小設 以干縣令 (식소설이간현령).
-소설을 꾸며 현령에게 아첨한다. < '장자' 잡편 외물(莊子 雜篇 外物) >

* 小說家者流 蓋出於稗官 街淡港語 道聽塗說者之所造也(소설가자류 개출어패관 가담항어도청도설자지소조야).
- 소설가란 무리들은 대개 패관에서 나왔으니 (소설은) 길거리의 이야기나 항간에 떠도는 소문을 곧잘 아는 것처럼 남에게 말하는 자가 지은 것이다. <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

동양의 경우 소설이란 말이 맨 처음으로 쓰인 것은 장자의 외물편이다. 이때 소설이란 말은 '하잘 것 없는 이야기' '민간의 사소한 사건, 유행, 풍속, 뜬소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 명칭부터 떳떳하고 공식적인 이야기가 아닌 자잘하고 변변치 못한 이야기라고 지칭했듯 수령 같은 사람들한테서 환심 따위를 사려는 가치 없는 말재간 정도로 여겨왔다. 이런 소설에 대한 인식은 당나라 명나라 청나라로 들어오면서 그 존재 가치를 점차 새롭게 중요시하게 되었다.
개화기를 전후한 신소설기 무렵부터는 근대소설의 효용가치를 차차 인정하게 되었다. 우리 문학사에서도 白雲小說 등이 이같은 의미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또한 고려말에 새로 등장한 假傳體나 일본문학의 物語 등이 이러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서사문학이었으며 稗說, 民譚, 傳說, 說話 등의 다양한 장르가 소설의 등장이전에 소설의 출현을 예고하는 문학이었다. 동양에서 소설이 오늘날의 개념에 근접한 개념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일본의 소설가인 쓰보우치 소요(坪內逍遙)가 평론집 <소설신수(小說神髓)>(1885)에서 유럽의 novel을 소설이라고 번역한 후부터이다. 그는 유럽의 novel을 이라는 말을 '소설'이라고 번역하면서 근대의 문학 장르적 개념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서양에서는 영어의 novel은 스페인어의 novela, 불어의 nouvelle, 이탈리아의 novella에 해당하는 말인데 이는 새롭다는 뜻인 라틴어 'novellus'에서 나온 것이다. 18세기까지 그 말은 특히 로망스에 상대되는 개념으로 사랑과 음모에 대한 짧은 허구의 이야기를 언급하는 것이었다. 이는 기존의 로망스와 차이가 있으며 기존의 short story의 공백을 매꿀 수 있는 용어이었으며, 새로운 허구적 서사물을 지칭하는 장르 개념으로 정착하면서 로망스는 인생이나 허구에서 사랑이야기나 음악작품에서 짧고 친화적인 작품을 뜻하거나 라틴어에서 파생된 언어를 지칭하는 의미로 변화해 나갔다. 18세기에 이르러 오늘날 소설 개념이 정착되었으며 소설은 사랑과 모험에 관한 서사적 이야기인 로망스에 비하여 비교적 길고 새로운 서사문학으로 길이가 6만에서 20만 단어 또는 300에서 1300여 페이지에 걸친 허구저구 서사물을 가르키게 되었다. 이렇게 novel은 가상의 이야기로 로망스를 계승하는 한편 로망스를 달리 개신한 서사장르라 할 수 있다.


소설의 개념, 소설의 정의

우선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소설은 작가가 상상력과 구상력에 의해서 창조해 낸 가공적인 허구의 세계를 현실적인 인물이나 사건의 전개를 통해서 통일성 있게 구성하여 진실한 이야기인 것처럼 그리는 산문문학의 한가지'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은 시, 수필, 희곡, 평론 등과 함께 문학의 5대 장르의 하나이다. 이것은 고대의 전설, 서사시, 중세의 설화 등의 계보를 이어받아 근대에 발달하고 19세기에 완성된 리얼리즘 소설의 개념에 가까운 정의이다.

소설은 하나의 이야기이다. 흔히 소설을 '스토리'라 하고, 단편을 'short story', 전기적인 장편을 'roman'이라 하는데, 이것은 모두 '이야기'를 뜻한다. 아래 정의에 나타나듯이 소설은 우선 '이야기'라는 기본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소설가는 이야기를 통하여 독자에게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며 작품과 현실 사이에 자리잡고 독자를 위하여 그 현실을 해석해 보이는 것이며, 서술된 허구적인 스토리에 예술적인 형태를 부여한다.

* 소설이란 적당한 길이의 산문으로 된 가공적인 이야기다. -- E. M. 포스터
* 소설은 이야기, 즉 인물에 대하여 꾸며 놓은 이야기다. -- R. P.워렌 C. 브룩스

앞에 나온 소설의 정의처럼 소설은 이야기이며 그것은 소설의 기원에서부터 근대 소설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누군가가 어떠한 사건을 겪으면서 시간과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소설은 그 속성상 이야기의 형식을 기본적 구조로 갖고 있으므로 시간 예술의 영역에 속하며 영화나 만화처럼 서술(narrative)을 생명으로 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여러 가지 다른 방법으로 그리는 것을 언급한 바 있는데 이것이 서사물 '이야기? 혹은 서술적 방식?'이라 부르고, 이야기를 통해서 사건을 모방하고 모든 인물들의 행동을 묘사하는 것을 그 특징이라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인생과 세계에 대한 다양한 묘사와 해석으로 채워져 있다. 소설은 현실을 보여주고 설명하면서 때로는 교훈을 주거나 때로는 즐거움을 주면서 인생과 세계에 대한 작가의 시각과 해석을 담고 있다.

* 소설은 인생의 회화이다. -- P. 러복크
* 소설은 인생의 해석이다. -- W. H. 허드슨

소설은 작가가 선택한 인생의 회화이자 해석으로 대중의 취향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취향을 창조하기도 한다. 소설은 인생의 표현이요 인간성의 탐구로 삶의 형태만큼이나 다양하다. 따라서 소설은 그 시대의 사회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항상 현실과 사회 그리고 역사 속에서 변형하며 존재하는 산문 양식이다. 소설은 사람의 유형만큼이나 다양한 삶의 모습이나 인간의 모습과 행동을 그려내며 작품이 제공하는 스토리, 유형, 신화들을 재생시키면서 문학의 매혹적인 힘을 더욱 증대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은 현실을 단순히 반영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창조적으로 재구하기도 한다.

* 소설은 가공의 역사이다. --R.웰렉 A.워렌
* 소설이란 산문체의 가공적인 이야기에 의한 인생의 해석이다. -- A. 벡커

이는 소설이 거짓말로 꾸며진 세계임을 말하는 것이다. 영어로 소설을 'fiction'이라고 하는데, 픽션이란 가공적인 이야기, 허구의 세계를 뜻하는 것이다. 허구성과 진실성은 서로 상반된 것 같지만 이는 소설이 한편으로 현실을 초월하며 다른 한편으로 미적 체험을 구현하는 예술임을 보여주는 바이다. 허구성은 사실(Fact)과 진실(reality), 사실과 허구(Fiction)의 관계에서 잘 이해할 수 있는데 우선 진실(reality)의 의미는 사실과 상관없는 참된 그 무엇이라 할 수 있다. 픽션(Fiction)은 진흙으로 형상 빚는다는 뜻을 지닌 라틴어 'fingere'에서 나왔는데 이는 형상화를 통한 재창조를 의미한다. 진흙으로 모양을 만든다는 행위는 실제의 사실의 복사도 아니며 온전한 거짓말도 아니다. 이는 '있음직 하지도 않은 진실(improbable truth)'의 세계가 아닌, 있음직한 허위(probable falsehood)'의 세계를 그려 진실을 추구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같은 관점에서 보면 소설은 '꾸며낸 이야기 즉 허구'.(부룩스, 워어린)이자 '가공의 이야기'(E.M. 훠스터) 또는 가공의 역사(웰렉, 워렌)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소설이란 세계와 인생의 진실을 추구하면서 이를 허구적으로 표현하는 산문적인 문학 양식'이라고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