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모정만리 / 장귀녀

운우(雲雨) 2022. 2. 11. 17:48

모정만리 / 장귀녀

 

진달래 살며시 자취 감춘 자리 

함박웃음 철쭉이 고개 내밀어 

말갛게 시작한 연두빛 캔버스에

찬란한 햇살 입에 물고

초록물 입혀간다.

 

시공을 수놓는 새들의 재잘거림은 

오월을 향해 추억을 실어 나르는데

하늘을 곱게 머금고 그리움 따라

잉어들 노닌다.

 

고사리 손가락 엄마 젖 끌어안고

앵두입술 젖꼭지 한껏 물어

별초롱 눈동자 

엄마 눈 속을 한없이 노 저으며

예쁜 미소를 방긋.

 

옹알이에 이어 엉금엉금,

젖꼭지 깨물더니

새싹처럼 돋아난 하얗고 작은 이빨,

어영차 붙들고 섰는데 아장아장,

그리고는 엄마, 아빠, 맘마, 어부바-

 

미운 일곱 지나 학교 종이 땡땡땡

새 친구 만나 신기해하면서

책가방 무게 따라 잘도 커왔구나

 

첫돌을 눈앞에 둔 어느 날

낮잠에서 깨어난 어린 것이

마른입에 식빵 먹고 호되게 체해

사오일간 입원하고 

애 말라했던 그날들...

 

효린이 두 살 때 수술실 들어가기 전

효린이 기도해야지 하는 엄마 말에 

작은 손 모아 아직 서툰 애기 발음이 

"예수님, 잘 낫게 해주세요. 아멘" 하고

들어간 수술실 앞에 넋놓고 홀로 앉아 

밤새도록 뼈 말리며 찡한 코에

꺼억꺼억 눈물 흘린 일...

 

아, 그리고 수린이 6학년 때였나 보다.

재잘대던 네 이야기 들으며 

선생님께 이 엄마가 

오해받게 된 것이 화가 나

밥 먹는 아이 무섭게 야단을 쳤었지.

그 후로는 배 아프다는 소리에 아니,

네 손이 슬며시 배에 올라가기라도 하면

가슴 밑바닥부터 도려내는 아픔이 엄습한다.

 

이러 저러한 삶의 무게에 짜증을 실어

어린 가지 여린 심성에 

상체기는 얼마나 주었는지!

순수한 도화지에 그려 넣은

이 어미의 못난 자화상이 

지울 수 없는 죄의식 되어

뭉게구름처럼 피어나면 

간절한 기도를 눈물에 담는다.

 

"주님! 어미로써 어찌 이리도 못갖췄는지요. 

아이들에게 행한 잘못들이 끈질긴 아픔되어

심연으로부터 갈기갈기 찢겨옵니다.

주여! 주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한ㄹ나라 보배들이요

제게 주신 보물들입니다.

섬세한 손길로 일그러진 곳 손질하시고

상처 난 곳 치유하셔서 권능의 팔로 

붙들어 온전케 회복하여 주소서.

주의 넓은 품으로 안으시어

포근한 숨결 느끼게 하옵소서.

 

이 죄인을 용서하시고 

주님의 사랑으로 온전히 변화시키옵소서.

불같은 혀로 부드러운 혀로 바꾸시고

짜증대신 미소를 주옵소서.

순간마다 지혜를 더하시고

하늘의 능력을 입히시어 

언제나 믿음으로 보물들을 보물답게 

대하게 하옵소서.

 

그 고유한 빛갈을 찬란하게 빛내어서

좋을 수, 이웃 린, 

효도 효, 이웃 린, 

주님께 영광되는 보물들로

가꾸고 돌보는데

부족함이 없는 어미 되게 하옵소서."

 

잔잔한 호수 위에 청동오리 한 마리 날아와

수면위에 예쁜 그림 이리 저리 춤춘다.

저녁나절이면 하루일과 재잘대던 너,

엄마와 단둘이서 나란히 걸으며

이야기 할 때가 가장 행복했었다며

팔짱끼며 매달리던 너,

친구와의 갈등, 고민거리, 속상하던 일들을

엄마와 얘기하고 나니 맘이 편하다며

손을 꼬옥 잡던 너,

엄마 사랑해요 속삭이던 너희들 목소리

청둥오리 되어 힘찬 비상을 한다.

 

아침저녁 예배시간 빈자리 하나

식구들 모여 노래하면

엄마 아빠 낮은 소리 맞춰 반주하던 손

그 빈자리가 쉴 새 없이 파도 되어

가슴속 깊이 넘실댄다.

 

네 또래 학생들 오며 가며 마주치면

낮은 코에 안경 걸고 눈동자 크게 굴려

네 모습 찾고,

하하호호 신나게 떠드는 그 소리 가운데 

촉각 곤두세워 네 음성 더듬어 본다.

 

전화벨 소리에 네 목소리 건너오면 

식구들 마음 모두 환하게 열리고,

학교생활 비롯하여 근황 전해주는 

활발한 목소리에 가슴 쓸어내리고, 

할머니, 엄마, 아빠 안부에 이어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제 동생이라며 

"공부 열심히 해라, 한국에 있었을 때 

내가 왜 진작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는지 후회한다. 그러니까 너

이 언니 말씀 잘 들어.'

효린이를 훈계하는 모습에 

잔잔한 미소 커다란 파문되어 번진다.

 

"엄마! 여기 교회는 광전리 같지 않아요.

광전리 같은 데가 없어요.

요즘 교회는 어때요?" 하면서

목사님, 박사님, 장로님들,

집사님들 이름마다 찾고 

청년부가 잘되는지 최대 관심사라며

언니 오빠들 안부에다 

"내 친구 정현이는요?"

숨도 안 쉬고 종알대는 물음에 

안부 전해주기 바쁜데

식구들이 그립다며 모두가 보고싶다며 

울음보가 터질듯 힘없이

길게 늘어지는 소리는

천근 만근되어 심장을 휘졌는다. 

 

LA 공항에 널 두고 오던 날 

차오르는 눈물샘 가누며

하염없이 외쳤단다. 

홀로 떨어져 비되어 흐르는

네 눈물 씻기시고 

초롱한 눈망울 속에 

주님의 모습이 언제나 

지워지지 않게 하시며

든든한 보호자로 의지힐 친구요 상담자로

아니, 구세주요 영원한 생명으로 

손잡고 이끄시는 너의 주님으로

끝까지 널 지켜 주십사고,

그리고

언니 떨군 것이 서러워 

집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너댓시간 끊임없이 울어대던

네 동생 효린이와 함께 

형제애 다져지며 꿋꿋하게 커가라고...

 

아이들 웃음소리 호숫가에 퍼지고

납작하고 작은 돌, 곡선 그리며

수면위에 튀어간다. 

너하고, 서너 살 되어 걸음이 아직 서툰 

효린이 데리고 불암산 정상을 이 호수

지나서 아마 서너 차례는 올랐을 거야.

오! 이렇게 가슴앓이 할 줄 알았다면 

내 보물들과의 아름다운 추억거리를 

더 많이 만들었어야 했던 것을...

 

성숙한 녹음을 향해 가는 오월의 푸르름이 

회한을 어르만져 희망을 부풀린다.

예쁜 보물들을 주시고 행복을 

아니 때로는 깊은 아픔이 있어도 

값진 사랑을 알게 하심에 

감사하는 눈길을 

날아드는 햇살 넘어 

저 멀리 하늘 향해 날린다.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짜르트 탄생 250주년 기념 음악회  (0) 2022.02.18
자전거 / 박덕규  (0) 2022.02.14
칼국수 / 박덕규  (0) 2022.02.08
만추 /장귀녀  (0) 2022.02.05
칡덩굴 / 박덕규  (0) 2022.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