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죽으면 / 화운 임승진
나 죽어 싸늘하게 식으면
관 속에 넣어 땅에 묻겠지
아무리 두껍게 흙을 덮어도
무수한 세월 흐르고 나면
살덩이는 물색없이 허물어지고
백골만 남아 서럽게 후회를 삭이고 있겠지
이따금 아들 딸 무덤에 찾아와
그리워 눈물 흘리더라도
그들마저 세상 등지고 나면
찾아올 자손 몇이나 있을지 몰라
그나마 찾아주는 발길 영 끊어져
풀 섶 무성해지면 하늘 보기도 어려워질 텐데
뼈마디 속속들이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나무뿌리들이 관을 뚫고 들어와
몸속 구석구석 파고들면 어쩌지?
썪어질 육신 남김없이 내어주면서
천천히 어둠을 더듬고 있느니
차라리 훨훨 나는 꽃불이 되어
흔적 없이 날아가는 게 훨씬 낫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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