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우(雲雨)의 소설

단편소설 (살)殺(죽일 살)중에서의 일부전문

운우(雲雨) 2012. 3. 4. 09:26

 

손님 중에서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을 하듯이 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 손님은 레스토랑

비엔나에 걸린 그림에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그가 나에게 물었다.

“이 그림 어디서 구입한 겁니까?”

“네? 제 그림입니다.”

“정말입니까? 그럼 미술을 전공하신 모양이지요?”

“그렇습니다.”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 어디에 내놓을 작품도 아닌데 제 그림이라 레스토랑을 개업하며 마땅히 실내에 장식할 것이

떠오르질 않아 제 작품들로 채워 놓은 것이랍니다. 부끄럽습니다.”

“제가 빈말로 칭찬을 한 것이 아니랍니다. 정말 좋은 작품입니다. 그려 놓은 것이 있으면 어떻게

한 점 얻을 수 있을 런지요?”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는 손님이 정중히 요청을 하는데 뿌리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림 한 점을

준 것을 계기로 그와의 사이가 급속도로 가까워 졌다. 그의 이름은 장명재였다. 그는 적은

규모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부모의 유산을 물려받은 게 많아 사업은 소일거리에 불과 했다.

그는 나이가 50세가 넘어 부터 수염을 길렀는데 그의 수려한 외모에 하얀 수염이 제법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특히 외모에서 이중성이 풍기는 사람 이었다. 어떻게 보면 인자하고

온화한 인상을 가진 것 같기도 하고 어느 쪽으로 보면 야수의 냄새도 풍기는 야누스와 같은

상이었다. 선천적으로 남자 없이는 못사는 여자였는지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장명재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장명재는 나의 심리 상태를 파악 했는지 어느 날 나에게 넌지시 물었다.

“미희씨, 바다낚시 좋아해요?”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가보고 싶긴 해요. 바다에서 직접 잡은 생선을 회 떠서 먹는 것을

방송에서 보았는데 너무 좋던걸요. 한번쯤 가보고 싶어요.”

“내가 바다낚시에는 일가견이 있지요. 그렇다면 이번 주말에 바다낚시 어때요?”

“어머, 그래요. 그럼 가기로 해요.”

그렇게 장명재와 약속을 하고 토요일에 떠나 일요일에 돌아오는 바다낚시를 떠나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면 하민규가 문제였다. 틀림없이 민규가 일요일에 올라올 것은 틀림없는 일이었다.

할 수 없이 민규에게 전화를 하기로 했다.

“민규씨, 이번 일요일엔 올라오지 않으면 안돼?”

“무슨 일이 있습니까?”

“일이 좀 있어. 토요일 떠나 일요일에 올라 올 일이 생겼거든.”

“그렇다면 할 수 없지요. 잘 다녀오세요.”

그날 밤 장명재의 차로 출발해 바닷가와 가까운 곳에 민박으로 숙소를 잡았다. 처음엔 방을

2개 얻기로 했으나 무슨 일인지 처음엔 있다던 방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장명재가

민박 주인에게 미리 손을 써 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 또한 내심은 방을 2개 얻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사실 한참 남자를 알만한 나이에 혼자된 몸이 되고 보니 장명재와 함께 오면서

한편으로는 멋진 로맨스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장명재가 방을 2개 얻는다 하니

속으론 실망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상황이 돌변하여 방이 하나 밖에 없다하니 겉으론 싫은 척

하며 속으론 내심 기분이 싫진 않았다. 그러나 여자인 나의 자존심도 세워야 했다.

“방이 2개를 얻기로 하고 왜 별안간 방이 1개 밖에 없다고 하는 거지요?”

“미희씨, 바다낚시를 온 사람들은 많은데 민박이 많지를 않아서 방이 부족한 모양입니다. 우리가

이해를 해야지요. 우리 방에서 잘 때 가운데 텐트를 하나 치고 자면 되잖아요. 하하하”

“좁은 방에서 자며 어떻게 그렇게 해요. 난 피곤해 잘 테니 알아서 자도록 해요.”

나는 장명재가 어떻게 하던 상관이 없었다. 어쩌면 나는 그가 나를 어떻게 해주길 은근히 바라는

마음이 더 강했는지 모른다. 그런 속에 피곤했던 나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인가 가슴이 답답하고 몸이 달아올랐다. 눈을 뜨니 정명재가 벌거벗은 몸으로 나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었다. 이미 내 몸은 실오라기 하나 걸쳐지지 않은 상태였고 내가 숨이 찬 것은

이미 그의 애무에 몸이 후끈 달아올랐기 때문이었다. 사내 냄새를 강하게 풍기며 장명재는 나를

거칠게 몰아쳤다. 나의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 나왔다.

“아- 아-”

그렇게 활화산 같이 뜨거운 시간이 지나고 장명재가 나의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날 밤 그와

나는 벌거벗은 몸으로 꼭 안은 채 잠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죽음의 유희였다는 것을 우리는 몰랐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민박집에서 주는 아침식사를 하고 우리는 바닷가로 나갔다. 그는 준비한 낚시

도구로 갯바위에 앉아 낚시를 시작했다.

하늘은 맑았고 쪽빛바다는 잔잔한 파도만 일고 있을 뿐이었다. 점심은 장명재가 잡은 고기로

일부는 회를 뜨고 나머지는 매운탕을 끓였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떠날 준비를 했다. 그러자

장명재가 남은 고기에 조금만 더 잡아 가지고 가자고 하며 갯바위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맑았던 하늘이 별안간 회색 하늘로 변하며 파도가 치기 시작했다.

“명재씨, 날이 흐리고 파도가 치니 이제 그만 하고 갑시다.”

“알았어요. 낚시를 거두고 바로 내려갈게요.”

그렇게 대답을 하고 명재가 막 갯바위를 내려오려는데 별안간 너울성 파도가 명재를 덮치는

것이었다. 마치 파도가 뱀의 혀인 양 순식간에 덮쳐서 명재를 삼켜 버린 것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명재의 이름을 불렀지만 바다가 삼켜버린 명재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었다.

“명재씨, 명재씨, 안돼요.”

나는 악을 쓰며 명재의 이름을 불렀지만 무심한 파도만이 바위에 부딪쳐 산산이 부서지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