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분수에 맞는 삶

운우(雲雨) 2015. 11. 18. 08:30

분수에 맞는 삶을....

 

어제 동묘 역에서 지하철을 타려고 하는데 휴대폰의 신호음이 울린다.

휴대폰을 열어 보니 중국의 친구에게서 온 전화다.

지하철이라 전화를 받지 못하고 집에 와서 전화를 하니 내가 잘 아는

후배가 죽었다는 소식을 알려 주려고 했었다는 것이었다.

8월이던가? 그 후배가 병이 진해서 자신을 찾아 왔노라고 나에게 전화

가 온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병이 너무 중하니 그의 아내나 자식, 형제들에게 알렸으면

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그 후배의 형제들에게 전화를 했지만 이미 알고

있는지 아무도 전화를 받는 사람이 없었다.

중국에 있는 친구도 그 후배의 형제나 아내 자식에게 전화를 했지만

아무도 받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중국에 사는 조선족이었는데 몇 년 전 한국에 와서 일을 할 때

나와 잠시 알게 된 사이였다.

그런데 사람이 의리가 있고 착해서 중국에서 어떤 사건에 연류 돼 출

국 정지를 당해 한국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그 후배를 부탁한 적이 있

었다.

그는 산동성(山東省)에 있는 후배를 찾아가 자신의 집이 있는 동북

(東北)으로 가서 숙식을 제공하며 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후배가 미안했던지 어느 곳으로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어느

날 동북(東北)을 홀연히 떠났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몇 년간 소식이 전혀 없더니 지난 8월에 자신을 찾아 왔는

데 얼굴이 퉁퉁 붓고 배가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미 그는 온몸이 병이 들어 갈곳도 없어 그 친구에게 죽을 곳을 찾

아 온 것이나 다름없는 처지였던 것 같다.

그 후배는 그 친구를 찾아와 그렇게 약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하염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난 그 후배를 생각하며 사람이란 자기가 들어갈 무덤은 자신이 파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한국에서 나와 같은 직종에서 일을 했었다.

그러던 그가 중국에 가서 청바지를 만들어 한국 시장에 판다는

것이었다.

그는 조금 허풍기가 있었지만 마음은 착하고 인정도 많았다.

그런데 그에게 불행이 닥치기 시작 한 것은 중국에서 대형식당을

동업으로 시작한 것이 불행의 단초였다.

동업자란 사람들이 부부 행세를 하는 남녀였는데, 그 사람들에게

사기를 맞은 것이다.

그가 거기에 동원한 돈은 형제들과 처제에게서 빌려다 댄 것까지

7억 원이 넘는 돈이었다.

그 많은 돈을 그 두 사람에게 몽땅 사기를 맞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중국에서 그 부부 행세를 하는 사람들을 만나

기 전에 중국에서 청바지를 만들어 한국으로 가져와 파는 일을 했

었다.

그러나 중국 공장에서 옷을 잘못 만들어 팔 수 없는 물건이 되어

옷을 만드는 제품공장에 한화로 약 1억 3천 만원을 주지 못한 것

이 있었다.

중국에 갔다가 돌아오려고 하는데 그 공장 사장이 출국 정지를

시켜 놓은 것 때문에 한국으로 나올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아는 사람도 없는 중국에서 말도 통하지 않고 어떻게 생활을 했

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니 그가 어떤 고생을 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렇게 몇 년간을 중국 땅에서 살면서 큰 병을 얻은 것일 것이다.

그렇게 후배는 자신은 이름도 알 수 없는 땅에서 죽어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의 친구가 시체라도 한국으로 돌려 보내주고

자 그의 아내와 그의 딸, 그의 형제들에게 전화를 했으나 그 누구

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다.

나 또한 전화를 해봤지만 아무도 받질 않았다.

중국 친구는 할 수 없이 한국 영사관에 전화를 하니 할 수 없이

중국에서 화장을 해 중국 땅에 뿌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는 것이

다.

비록 아내나 형제들에게 돈에 대한 피해는 줬다고는 하나 무척

성실하게 살았던 후배였다.

끝내 가족과 형제들에게 마저 외면을 당한 채 자신의 죽은 육신

마저도 고국에 오지 못한 채 타국에 외로운 고혼이 되고만 것이

다.

내가 이 글을 쓰며 느끼는 것은 한국이었다면 그가 진 빚이 얼마

가 되었던 그렇게 외롭게 죽어갈 수 있었을까?

그런데 며칠 후 중국 친구에게서 전화가 다시 왔다.

그의 큰 형과 그의 매형이 중국으로 들어온다고 연락이 왔다는

것이었다.

그의 큰 형과 매형이 중국에 와서 화장을 해 유골로 한국으로 들

어갔다는 것이었다.

그의 유골은 납골당에 안치 한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죽기 전 타국에서 외롭게 죽어 갔지만 죽은 후에라도 따뜻한 조

국의 품에 안겼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삶이란 분수에 맞는 삶이어야지 분수를 넘

는 삶은 꼭 불행을 야기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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