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상고사

제 1장 조선 고대 총론

운우(雲雨) 2014. 5. 8. 11:47

1, 조선민족의 구별

 

고대 아시아 동부의 종족(種族)은 (一)우랄 어족(語族), (二)중국 어족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는데, 한족(漢族). 묘족(苗族). 요족(搖族). 등은 후자에 속하고, 조선족. 흉노족(匈奴族) 등은 전자에 속한다.

조선족이 분화하여 조선. 선비(鮮卑). 여진(女眞). 몽고(蒙古). 퉁그스 등의 종족(種族)이 되고, 흉노족이 흩어져 돌궐(突蹶: 지금의 신강족(新疆族)-원주)

헝가리, 터키, 핀란드 등의 종족(族)이 되었는데, 지금의 몽고, 만주, 터키, 조선, 네 종족 사이에 왕왕 동일한 말과 물명(物名)있는 것은 몽고(大元-원주)제국 시대에 피차간에 관계가 많았으므로 영향을 받은 것도 있지만, 고사(古史)를 참고하면 조선이나 흉노 사이에도 관명(官名). 지명(地名). 인명(人名)이 같은 것이 많은데, 이는 상고(上古)에 있어서 이들이 동일한 어족(語族)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2 조선족의 동래(東來)

 

인류의 발원지(發源地)에 대하여는 (甲)파미르 고원(高原), 몽고 사막이란 두 가지 설(說)이 있으나 아직 그 시비(是非)가 확정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고어(古語)로써 참고하면, 왕의 성씨(王姓)를 '해(解)'라 고 한 것은 (예를 들면, 해모수(해모수)-옮이) 태양(太陽)에서 그 뜻을 취한 것이며, 왕호(王號)를 <불구래(佛矩內: 불구내)>라고 한 것은 태양의 빛(光揮:불그스름함)에서 그 뜻을 취한 것이며, 천국(天國)을 <환(桓國); 환국)>이라 한 것은 광명(光明: 환함)에서 그 뜻을 취한 것이니, 대개 조선족이 최초에 서방 파미르 고원 혹은 몽고 등지에서 광명의 본원지(本原地)를 찾아서 동방(東方)으로 나와서 불함산(不咸山: 지금의 백두산-원주)

을 바라보고 명워(明月)이 출입하는 곳 - 곧 광명의 신 (光明神)이 쉬고 잠자는 곳으로 알고 그 부근의 토지를 <조선>이라 불렀다. <조선>도 고어(古語)의 광명(光明)이란 뜻으로, 후세에 와서 <조선>은 이두자로 <조선>이라 쓰게 되었다.

 

3 조선족이 분포해 있었던 <아리라>

 

우리 고어(古語)에서는 <오리(鴨)><아리>라 하고, <강(江)>을 <라>라 하였는데, 압록강(鴨綠江). 대동강(大同江). 두만강(豆滿江). 한강(漢江). 낙동강(洛東江)과 길림성의 송화강(松花江). 봉천성(奉天省)의 요하(遼河). 영평부(永平府)의 난하(煖河) 등을 이두자 쓴 옛 이름을 찾아보면 아례강(阿禮江). 아리수(阿利水). 욱리하(郁利河). 오열하(烏列河). 열수(列水). 무열하(武列河). 압자하(鴨子河)라 하였는데, 아례(阿禮). 아리(阿利). 오열(烏列 wulie). 무열(武列 wulie) <列(열: lie)은 모두 <아리>의 음역(音譯)이며, 압자(鴨子: 고어(古語)에서 <오리>를 "아리"라 하였음-원주)는 <아리(=오리)>의 의역(意譯)이고 강(江). (河). 수(水)는 모두 <라>의 의역(意譯)이다. 위의 각 큰 강들은 모두 조선족 선조들이 지은 이름들이고, 조선 고대의 문화는 거의 다 위의 큰 강의 강변에서 발생하였으므로, <삼국지(三國志)>에도 "句麗作國, 依大水而居(구려작국, 의대수이거)"(->고구려는 나라를 세우면서 큰 물가에 터를 잡고 살았다.)라고 했던 것이다. <나라>는 고어에서 <라라>라 하였으니, <라라>는 본래 <나루>를 가리키던 명사로서 후에 와서 국가(國家)를 가리키는 명사로 된 것이다.

그리고 고대 지명의 끝에 붙은 나(那) 라(羅) 노(奴) 루(蔞) 누(縷) 량(良). 랑(浪) .양(穰). 양(壤). 강(岡). 아(牙). 야(倻) 등은 모두 <라>의 음역(音譯)이고, 川(천). 原(원). 京(경울). 國(국) 등은 모두 다 <라>의 의역(意譯)이다. 이들 양자는 다 <라라>의 축역(縮譯: 줄여서 번역한 것)인바, 강(江)은 어렵(漁獵)의 밑천이 되고 배로서 오고 갈 수 있는 편리함을 제공하므로, 상고의 문명은 거의 대부분 강가에서 발원하였던 것이다.

 

4, 조선의 최초를 개척한 부여(扶餘)

 

원시 인민들이 강하(江河)의 어류(漁類)와 산과 들 (山野)의 금수(禽壽)와 초목의 열매 같은 각종 천연산물로 식료(食料)를 삼다가, 인구가 번식함에 따라 그 식료의 부족을 느끼게 되었으며, 그 부족한 것의 보충을 위하여 목축업과 농업이 생겨났다.

농업은 대개 불(火)의 힘을 이용하여 초목을 태워서 전야(田野)를 개척한 뒤에 비로소 시작되기 때문에, 고어(古語)에서 야지(野地)를 <불(=벌)>이라 하였던 것이다. 불의 이용을 발견한 것은 단지 농업을 유발하였을 뿐만 아니라 불로서 굴속을 태워 맹수도 죽였고, 가죽을 부드럽게 하여 옷이나 신발도 만들었으며, 진흙을 구워 그릇을 만들고, 성벽을 쌓았고, 쇠를 달구어 기계를 만들었으며, 기타 인류의 생활에서 날마다 사용하는 온갖 편의를 제공함으로써 인간의 지혜를 계발시켜 주었다. 그래서 근세의 일반 사학자들은 고대의 불의 이용의 발견을 곧 근세의 증기(蒸氣)나 전기(電氣)의 발견과 같은 사회생활의 대혁명(大革命)을 일으킨 대발견(大發見)이라고 한다.

동서 고대의 인민들이 다 불의 발견을 기념하여 그리스의 화신(火神)페르시아의 화교(火敎), 중국의 수인씨(燧人氏) 등의 전설이 있게 되었으며, 우리 조선에서는 더욱 불을 사랑하여 사람의 이름을 <불>이라 지은 경우도 많은데 <夫婁(부루)>, <稟離(품리)> 등이 다 불의 음역(音譯)이다.

불이라 지은 지명도 적지 않으데 扶餘(부여). 夫里(부리). 불내(不耐). 불이(不而). 국내(國內). 불(弗). 伐(벌). 發(발) 등이다. <불>의음역이다.

<고기(古記)>, <고사기(古事記)>, 등을 참고하면,  조선 문화의 원시(原始) <수두>의 발원(發原)은 거의 송화강변의 하얼빈 부근에서이며, 하얼빈은 그 옛 이름이 부여(扶餘)이다. 그러므로 송화강은 조선족이 최초에 그 뿌리를 내리고 정주(定住)를 시작한 <아리라>이고, 하얼빈은 조선족이 최초로 개척한 야지(野地) - <불>이며, 그 이외의 모든 扶餘(부여) 夫里(부리)...등은 연대를 따라서 차례로 개척된 야지(野地) - <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