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한라산 겨울등반기

운우(雲雨) 2011. 6. 19. 16:33
 

한라산 겨울 등반기

나는 항상 새해 1월1일이면 새 아침을 산 정상에서 맞이하기 위해 산에 오른다.

그동안 설악산이나 지리산엔 많이 올랐지만 정작 한라산 등산은 못했었다.

12월31일 친구들과 김포공항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에 나가니 다들 나와 있었다.

하늘을 보니 쾌청 하기만한 하늘이 내일 한라산 등반이 순조로울 것 같은 기분이다.

제주공항에 내리니 예상대로 날씨가 맑아 다들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그러나 제주 특히 한라산의 기후는 예측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1년에 이렇게 맑은 날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일단 여관을 정하고 몇몇은 제주에서 생선회라도 먹어야겠다며 나간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하늘이 어제같이 맑지를 않다.

아침 식사를 간단하게 마치고 어리목으로 출발하는데 하늘에서 눈발이 내리기 시작한다.

대단한 눈은 아니기에 그대로 강행하기로 하고 어리목에 도착하니 웬 까마귀 떼가 그리

많은지 계속 날면서 까~옥 까~옥 울어댄다.

일행 중에 한 친구가 한마디 한다.

“에이 재수 없는 저놈의 까마귀 때문에 등산 초장부터 잡쳐서 한라산에 오르지 못하는 것 아냐”

눈은 점점 더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 일행은 눈에 아랑곳 하지 않고 어리목을 출발해 세차게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무가 무성한 지대를 지나니 그때부터는 민둥산처럼 앞이 훤하다.

거기서 부터는 바람 때문에 그런지 키 큰 나무는 없고 키 작은 철쭉나무 지대다.

눈은 더 세차게 내리고 앞을 분간하기가 어렵다.

길에 간간이 대나무를 꽂아 놓고 위에 헝겊을 매어놓아 그 표시를 보며 오르는 것이다.

앞으로 전진 하기가 어려워지자 나와 유석전 선배가 앞장을 서기로 했다.

천신만고 끝에 윗세오름 산장에 도착하니 많은 등산객들이 경찰의 제지로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발이 묶여 있었다.

눈은 계속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내리고 오르기는 해야 하는데 조난당할 우려가

있다며 경찰은 제지하고 모든 등산객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때 경찰 한사람이 나와서 제안을 한다.

대한 산악연맹 소속팀이 있으면 나오라고 한다.

우리는 대한산악연맹 소속이었기에 당당이 앞으로 나갔다.

그들은 우리에게 앞장서서 길을 뚫고 오르라고 하며 등반을 허락한다.

나는 유선배와 길을 뚫는데 눈이 너무 많이 쌓여 도저히 전진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머리를 쓰기로 했다.

둥그렇게 자란 철쭉나무를 밟으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상상외로 쉽게 등산로가 확보되기 시작한다.

이제 넓은 평지를 지나 한라산 백록담 있는 봉우리가 눈앞에 우뚝 서 있다.

우리는 그 봉우리를 향하여 한발 한발 전진하기 시작했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쌓인 눈 때문에 오르기가 쉽지 않다, 넓은 평지 위에 여인의 유방처럼

덩그러니 솟아 있는 백록담은 퍼 붓는 듯 내리는 눈과 결코 쉽게 백록담 정상을 내어 줄 수

없다는 것처럼 휘몰아쳐 오는 바람 때문에 앞으로 전진이 더디기만 하다.

그러나 얼마 남지 않은 백록담 정상을 향하여 한발 한발 내딛으며 악전고투 끝에 기어이

정상에 서고야 말았다.

그러나 백록담에 오르니 캄캄하여  방향을 잘 몰라 어디가 백록담인지 알 수가 없다.

다만 한라산 정상에 세워둔 백록담이란 팻말을 보고야 백록담 위에 서 있는 줄은 알았는데

정작 백록담이 어디 있는지를 눈보라 때문에 분간 할 수가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눈보라와 싸우고 있으려니 남쪽부터 구름이 걷히기 시작한다.

파란 하늘이 나타나고 햇볕이 나기 시작하니 여기저기서 환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백록담 아래서 내려다보이는 광경은 은빛 세상인데 꼭 우리가 은백색으로 펼쳐진 남극이나

북극에 와 있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너무나 아름다운 세상이다.

어린 아이처럼 동심이 발동한다.

저 흰 눈 위에 어린아이처럼 뒹굴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 마음을 억누르고 내려오는 길이 미끄러움으로 만만치가 않다.

그렇게 퍼부으며 한라산 정상을 내줄 것 같지 않던 눈보라는 언제 그랬냐는 듯 햇볕이 쨍쨍

내려 쬐어 눈을 녹이기 시작한다.

제주 한라산의 날씨는 변덕스러워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악천후 속에서도 기어이 정복했다는 뿌듯한 포만감을 안고 하산하는 길은 발길이 가벼웠다.

올라갈 때는 우리가 길을 만들며 올랐지만 내려오는 길은 많은 사람들이 밟아서 길을 만들어

놓아 쉽게 내려 올 수 있었다.

하산 길은 너무 아름다웠다.

나무에 만발하게 피어난 설화가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여기저기서 환성이 터져 나온다.

사진 찍기에 바쁜 사람들이 셔터를 눌러 달라고 부탁을 한다.

우리도 유 선배와 눈과 설화가 만발한 나무를 배경삼아 몇 장의 기념  사진을 찍었다.

내려오는 길은 눈이 녹아 좀 질퍽하고 미끄러웠지만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산행이었다는

것을 지울 수가 없다.

윗세오름 산장에 내려오니 눈이 많이 녹아서 나무에 피어난 눈꽃이 많이 훼손되어 있다.

어리목에 도착하니 이미 제주의 포근한 바람에 눈이 언제 왔었느냐는 듯 깨끗이 녹아

있었고 거리는 비가 온 뒤의 땅처럼 축축이 젖어 있었다.

일행이 다 내려오자 바로 버스를 타고 제주공항으로 직행, 바로 비행기를 탔다.

구름위로 나는 비행기 안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간간히 보이는 풍경들이 작게 보인다.

김포공항에 도착하니 어둠이 내려져 있다.

짐들을 챙기고 집에 가는 직행 버스를 타니 1박2일의 피곤함이 밀려든다.

31일 출발해 새해 1월1일에 왔으니 꼬박 2년을 한라산 등반을 한 셈이다.

새해 첫날 멋진 출발을 했으니 정말 새해에는 멋진 일만 있기를 기대해 본다.


                                   


출처 : 한 알의 밀알이.....
글쓴이 : 봉필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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