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사모 / 조지훈

운우(雲雨) 2018. 8. 4. 15:08

사모 / 조지훈

 

 

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

정작 할 말이 남아 있음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랑이 되어 있었다.

불러야 할 뜨거운 노래를 가슴으로 죽이며

당신은 멀리로 잃어지고 있었다

하마 곱스런 눈웃음이 사라지기 전

두고두고 아름다운 여인으로만 잊어달라지만

남자에게 있어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

다섯 손가락 끝을 잘라 핏물 오선 그어

혼자라도 외롭지 않은 밤에 울어 보리라

울다가 지쳐 멍든 눈흘김으로

미워서 미워지도록 사랑하리라

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또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그리고 한 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마지막 한 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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