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우(雲雨)의 소설

<新作> 혼자사는 남자

운우(雲雨) 2018. 1. 17. 18:52

혼자 사는 남자

 

현묵 형의 소식이 끊긴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나는 현묵 형의 근황이 궁금했다. 오래 전 서울대 역 근처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헤어진 것이 가장 최근의 일이었다. 나는 궁금한 나머지 전화를 해보았다. 가끔 전화를 해봤지만 거의 받지 않아 통화가 성공한 예는 요즈음에는 없었다. 그러나 현묵 형의 소식이 너무 궁금했던 나는 전화를 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지운 채 무심히 전화를 했다. 그런데 전화에서 들려오는 음성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최현묵씨 전화입니다.”

나는 전화 속의 여자가 누구인지 호기심이 발동해 물었다.

“전화를 받으시는 분은 어떤 분이신가요?”

“저요? 저는 최현묵씨 딸이에요.”

“아, 따님이 한분 있다고 하더니 그 따님이었군요.”

“네.”

“그런데 현묵 형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여긴 병원인데 아버지 지금 병원에 입원해 계세요.”

“아니, 왜요? 어디가 편찮으신데요?”

“전부터 아프시던 데가 안 좋으셔서 입원 하셨어요.”

“그럼 병원이 어디지요?”

“을지로6가 국립중앙의료원 ㅇㅇㅇ호실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대답을 하고 퇴근길에 병원을 들리기로 했다. 하루 일과가 끝난 후 나는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내렸다. 그리고 13번 출구를 빠져나왔다. 출구를 빠져 나오니 날이 몹시 춥다. 조금 걸으니 국립중앙의료원이 나왔다. 나는 정문을 통하여 들어가 병원 매점에서 두유를 한 박스 사서 병실을 찾았다. 현묵 형은 오랜만에 보는 나를 보고 반색을 하며 반긴다. 그러면서 그동안 밀렸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형 이제 가지고 있는 재산 딸에게 주고 형이 앞으로 가지고 살 수 있을 만큼만 갖고 살도록 해요.”

“나도 그러려고 해. 그건 그렇고 조금만 있어봐. 내가 퇴원하면 좋은 일이 있을 거야.”

“무슨 일인데 좋은 일이라는 거예요?”

“글쎄, 조금만 기다려. 일단 내가 퇴원을 해야 하니까.”

나는 그렇게 한참을 현묵 형과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가기위해 현묵 형과 작별 인사를 하고 나왔다. 에레베이터 앞에 서있는데 현묵 형의 딸이 와서 나를 잠시 보자고 한다.

“저, 저 좀 잠시 보고 가셔요.”

“아, 그래요. 무슨 일이죠?”

“저의 아빠 못 일어나실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요?”

“아빠 폐암 말기세요.”

“뭐라고요? 요즘 병원에 계속 다닌다고 했는데 그럼 병원에 다니며 무엇을 보았다는 겁니까?”

“저번 세브란스 병원에 갔을 때 폐암이라고 하며 한쪽 폐를 떼어내야 한다고 했는데 아빠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수술 않겠다고 해서 그냥 왔어요. 이번에 여기와 폐 사진을 찍어보니 암이 폐 전체에 퍼져 손을 댈 수가 없다고 합니다. 지금도 폐에 물이 차서 계속 폐에서 물을 뽑아내고 있는 중이에요.”

나는 현묵 형의 딸이 하는 소리를 듣고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러면 어차피 고칠 수 없는 병이라면 아버지께 알려 드려 죽음을 준비하게 하는 것이 원칙이 아니겠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의사들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환자들은 더 빨리 죽고 만답니다. 그래서 아빠께 말을 하지 않고 있어요.”

그 말도 일리가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어차피 나을 병이 아니라면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 말이 입에서 뱅뱅 돌았지만 정작 그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왜냐 하면 나는 현묵 형의 딸 입장에서 볼 때는 3자에 불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현묵 형의 딸에게 형이 폐암 말기라는 소리를 듣고 그대로 갈 수가 없었다. 나는 다시 현묵 형의 병실로 가기로 했다.

“나 아버지 한 번 더 보고 가야 되겠어요. 그런 소리를 듣고 그냥은 도저히 갈 수가 없어요.”

“그렇게 하실래요?”

“그래야만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나는 다시 현묵 형의 병실로 갔다. 다시 오는 나를 보고 현묵 형은 반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간다고 인사까지 하고 왜 되돌아 왔어?”

“형 얼굴이 별안간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그래요.”

“보고 싶긴 이 얼굴이 뭐가 보고 싶어. 세수도 못하고 수염도 깎지 못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아도 병실에 들어올 때부터 현묵 형의 얼굴을 보았는데 얼굴에는 텁수룩하게 하얀 수염이 빳빳하게 자라 있었다.

“하하하, 그렇잖아도 나는 형이 텁석부리 인줄 알았어요.”

“하하하, 그런가.”

형은 내가 다시 오니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아우님, 이제 고생 그만 해도 돼.”

“무슨 일이 있어요?”

“응, 이제 돈이 많이 나올 때가 있어. 내가 빨리 나가서 판을 짜야 되는데 몸이 이러니 현재로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으나 의사가 곧 나가게 된다고 했으니 나가면 멋지게 일해 보기로 하자구.”

상당히 큰일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 마음은 도리질을 치고 있었다. 속으론 울면서 마음으로 말했다.

“형, 형 마음 나 다 알아. 그러나 이제 형은 그 꿈 깨고 정말 기적이 일어나 몸이나 나았으면 좋겠어.”

의사의 말은 한 달을 버티기도 힘들다고 했는데 자신은 나아서 나가면 큰일을 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한 주, 두 주, 지나면 몸은 급격하게 나빠질 것이다. 그날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쓸쓸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