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상고사

고구려의 역사서 <신집>과 <유기> 과연 남아있을까?

운우(雲雨) 2014. 12. 6. 08:39

 

여러분들은 고구려에서 명운을 걸고 만들었던 역사서인 유기와 신집이 아직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물론 엄청나게 오래된 일이긴 합니다만 <사기>라는 중국 희대의 역사서가 전해져 오는 것을 보면 이 두 역사서가 남아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어느 책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지도 모를 이 역사서들이 남아있을까요?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2개의 답변

답변
  • 신집

    고구려의 역사편찬에 대해서는 아래 사료가 유일한 것이다.

     

    詔太學博士李文眞 約古史 爲新集五卷 國初始用文字 時有人記事一百卷 名曰 留記 至是刪修 (삼국사기)권 20 영양본기 동 11년(60 0년)정월 조)

    (이달에)태학박사 이문진에게 조서를 내려 고사를 축약하여 신집5권을 만들게 했다. 국초부터 문자를 사용하기 시 작하여 어떤 사람이 사실 100권을 기록, 이름을 유기라고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그것을 刪수한 것이다.

    이에 의하면, 고구려에서는 국초에 누군가가 국사책으로 유기 100권을 지었는데, 말기에 해당하는 영양왕때에 이문 진이 왕명을 받들어 이를 요약하고 손질하여 신집5권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고구려가 국초에 유 기를 편찬한 것은 확실한 셈이다. 다만 그 시기를 둘러싸고 학계에서는 약간 다른 견해들이 엇갈리고 있다.

     

    -> 출처 :  인터넷 역사 연구회

     

     

      ;;;  정확한 이유란 게 그냥 왕명을 받들어서 유기 100권을 요약한 거라고밖에 할 수 없네요 ;; 

     

  • 2013년4월 러시아에서 중앙아시아 고대사를 공부하는 젊은분과  잠시 만나 고구려 이문진의 新集이 러시아에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이야기하는 본인도 공부에 필요해서 내용중 일부를 도서관에서 찾아 본 적이 있었다고 하는군요. 

     

    소장하는 기관에서 신집은 1912년~35년사이 당시 러시아가 몽골의 공산종주국일 당시 내몽골까지 들어가 중국영토내에 보관중이던 고서수장고를 탈취하여 말 그대로 빌리자면 화차23량에 고서를 5차례나 실어 러시아로 가져갔다고 하는군요. 당시 러시아군이 탈취해간 고서중에 고구려로 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신집등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후대 발해나 거란이 재편찬한 판본일수도 있겠습니다)

     

    게르만족의 이동을 촉발시켜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게된 훈족의 유럽 침입은 고구려 장수왕 시대에 고구려에 반역을 한 고구려의 최고위층이 현재의 동유럽으로 도망가자 고구려군이 이를 추격하는 도중에 촉발된 대규모 민족간 전쟁이라고 하는군요. 당시 고구려 장수왕의 추격을 받은 고구려 최고위층 반역자가 누군지 혹은 그가 아틸라인지는 더 확인해 보아야 할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