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상고사

漢字를 한국인이 만들었다고?

운우(雲雨) 2014. 9. 13. 08:42

[탐구] ‘동이족 창제설’의 겉과 속
2014년 09월 05일 (금) 16:27:23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empal.com

인터넷과 SNS 상에는 종종 ‘한자는 한(韓)민족이 창제했다’는 내용의 글들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뜬금없어 보이는 이 주장은 그저 과도한 민족주의의 산물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가게 된다.

호기심을 가지고 연구를 지속해 보면 한자가 만들어졌다고 생각되는 시기에 과연 중국(中國)이라는 문화적 정체성이 존재하기나 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쉽게 생각해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3천 년 전에 그려진 암각화가 발견됐다고 해서 그것을 앵글로색슨 문명이라고 말하는 것은 코미디라는 것과 같다. 같은 이유로 영국인들은 영어 알파벳을 자신들이 만들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천부경

한자는 한(漢)나라 때 만들어지지 않았다!

한자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날 중국대륙이라 불리는 지역에 5천 년 전 중화(中華)라고 부를 만한 문명은 없었다. 우리가 중화라고 부르는 문명의 개념은 사실 한(漢)대에 정립됐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한 무제가 서역의 돌궐과 북방 흉노를 물리치고 동으로는 고조선을 멸하면서 중국은 오늘날 ‘중국’이라는 호칭에 맞는 위상을 정립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바로 그 업적을 기리고자 집필된 역사서다.

문제는 한자(漢字)가 그 이름대로 한(漢)나라 때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자의 기원에 대해서는 팔괘설(八卦說)을 비롯해 실로 다양한 이론들이 있지만 검증은 되지 않는다. 오히려 한자는 전설에 따라 황제시대에 네 개의 눈을 가진 창힐이라는 자가 새의 발자국을 보고 모방했다는 전승이 차라리 믿을 만하다.

한자의 기원에 대한 논쟁이 붙은 것은 한자가 동이족에 의해 창제됐을 가능성에 대해 중국 학계가 이를 상당 부분 인정하면서부터였다. 그로부터 ‘동이족은 한민족을 일컫는 것이니 동이족이 한자를 만들었다면 한국인의 조상들이 한자를 만들었다’는 논리로 ‘한자 한국인 창제설’이 주장되기에 이른다. 이 주장의 대표적인 학자가 바로 원로 국어학자 진태하 명예교수(인제대 국어학)다.

문제는 ‘한자 동이족 창제설’에서의 동이족이 반드시 한국인의 조상들만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흔히 진(秦)나라 이전, 즉 선진(先秦)시대라 불리는 시기의 동이족은 중국 동부와 남부에 자리 잡은 쌀 농경문화의 제족이었다.

이 동이족을 처음 거론한 주체는 바로 3천 년 전의 은(殷)나라였다. 동이(東夷)라는 글자의 상형문은 쌀가마(東)를 옆에다 두고 쭈그려 앉은 사람(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은(殷) 대에 사용한 상형문이 이미 한자로서 문법 체계가 완성돼 있다는 점에서 한자의 기원과 활용은 은나라 이전으로 소급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것은 상당히 곤혹스러운 사실이었다. 은대 이전이면 하(夏)의 시대고 하나라는 아직 그 정체성이 확실히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학자들은 한자의 고대음가가 지금의 북경어와는 달리 광동어와 유사하거나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것은 스웨덴 출신의 19세기 언어학자 칼그렌(Karlgren)이 중국어의 시경(詩經)을 연구하다가 음률들이 문장 안에서 서로 맞지 않는 현상에 주목하고 이를 다른 원전에 사용된 용례로부터 유추해 맞추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그렇게 재구성된 음가는 놀랍게도 북경어가 아니라 상해와 같은 광동어였다.

그렇다면 한자는 고대 광동어를 기록한 것이며 광동어의 주체는 과거 한족(漢族)이 아닌 오(吳) 월(越) 초(楚)와 같은 이들이었고 그들이 바로 은나라가 ‘동이’라고 불렀던 이들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한자의 동이족 창제설’은 그러한 발견에 기반을 뒀다.

아울러 진한시대 이전의 유물들이 보여주는 바는 동이족의 문화가 오늘날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본류라고 여기는 화하(華夏)의 것들보다 우수하다는 점이다. 이로부터 한자의 창제 역시 동이족의 문화로부터 유래했을 거라는 데 중국학자들은 의심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갑골문자

‘동이족’은 누구였던가

이제 과연 이 한자가 창제된, 적어도 5천 년 이전의 시기에 우리 한민족은 동이족과 어떤 관계에 있었느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답을 아는 이는 없다. 고조선을 제외하고 사료로 확인할 수 있는 한민족의 역사는 남한에서 BC 1세기 삼한시대 이전으로 올라가지 못한다. 우리는 삼한 이전의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그렇다고 신라, 백제, 가야인들이 살던 한강 이남의 한반도에 삼한 이전이라고 사람들이 살지 않았을 리도 없다. 만일 동이족이 우리 민족의 조상이라면 이 부분이 밝혀져야 한다. BC 1세기 이전 남한에서 활동했던 한인(韓人)들의 조상은 누구인가. 그들은 중국에서 한자를 창제하고 동이문화권을 형성한 주체들과 동일한 이들인가, 아니면 다른 이들인가. 대답할 수 있는 역사학자는 역시 아무도 없다.

다만 20세기 후반 언어학과 유전자 인류학은 이러한 문제에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 줬다. 일본 교토대학의 연구팀 조사에 의하면 한반도 중남부의 고대 한국인 유전자는 고대 일본인들, 그리고 고대 중국 동남부인들과 그 거리가 가장 가깝다. 우리는 당연히 지리적 여건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유전자 거리가 말해주는 중국 동남부인들, 즉 고대에 동이족이라고 불렸던 이들은 사실 오늘날 베트남과 말레이를 중심으로 하는 오스트로아시아(Austroasiatic)계다.

대만의 고산족들도 이 부류에 속한다. 뉴질랜드의 마오리족, 하와이 원주민들이 바로 이들의 후손이다.

   
황해 해수면 변화에 의한 인류 이동 경로

그래서 한자 창제 기원 논쟁은 복잡해진다. 만일 한국인의 조상이 동이족이 맞고 이들이 중국 동남부의 고대인들과 같다면 우리는 조상님들의 얼굴을 저 북방 몽골리언이 아니라 남태평양 마오리족의 얼굴이나 말레이시아 또는 베트남인들의 얼굴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현실은 그것이 ‘맞다’고 말해준다. 한국인의 유전자 가운데 약 40% 이상은 남방계다. 이 남방계 몽골리언 유전자가 북방보다 오래됐다. 한국인은 스스로 믿고 싶은 바처럼 단일민족은 아니며 과거 남지나해를 타고 올라오는 쿠로시오 해류로 인해 남방계 민족들이 일본과 한반도에 무수히 오고갔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물론 다른 가설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1만 년 전 황해와 제주도는 대륙 평원으로 연결돼 대만 부근까지 육지로 연결돼 있었다. 여기에 사람들이 살았다는 증거는 1만 년 전으로 소급되는 제주 고산리 토기가 말해준다. 1만 년 전 해빙기로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거대한 황해평원은 바다로 변해갔고 사람들은 북쪽 한반도와 중국 동남부, 일본 등지로 흩어져 갔다. 이들이 한국인의 유전자 속에 등장하는 남방계 인자라면 우리는 아주 중요한 하나의 문화적 힌트를 얻게 된다.

3천 년 전 돌[石]이라는 글자를 중국인들이 시(shi)가 아니라 딱(tak)이라고 읽었고, 곰[熊]을 숑(xiong)이 아니라 굼(gum)으로, 흑(黑)을 허이(hei)가 아니라 커먹(khmek)으로 읽었던 것은 우리가 그 발음을 차용한 것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그러한 기본 어휘는 차용되지 않는다. 그러한 문제의식이 올바른 ‘한자 한민족 창제설’에 진지하게 도전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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