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상고사

1, 역사(史)의 정의와 조선역사의 범위

운우(雲雨) 2014. 4. 16. 22:42

역사(歷史)란 무엇인가.

인류사회의 <아(我: 나)><비아(非我: 나 아닌 나의 상대)의 투쟁이 시간적으로 발전하고 공간적으로 확대되는 심적(心的) 활동(活動)의 상태에 관한 기록이다. 세계사(世界史)란 세계의 인류가 그렇게 되어온 상태의 기록이며, 조선사(朝鮮史)란

무엇을 아(我)라 하고 무엇을 비아(非我)라 하는가? 한마디로 쉽게 말하자면, 무릇 주관적(主觀的)에 선 자를 <아(我)라고 하고 그 외에는 모두 "비아(非我)>라 한다. 이를 테면 조선인은 조선을 <아(我)>라고 하고 영국, 미국, 프랑스, 러시아 등을 <비아(非我)>라 하지만, 영국, 미국, 프랑스, 러시아 등은 각기 자기 나라를 <아(我)>라 하고 조선을 비아(非我)라 한다. 무산계급(無産階級)은 무산계급을 <아(我)>라 하고 지주나 자본가 등을 비아(非我)라 하지만, 지주나 자본가 등은  각기 자기와 같은 계급을 <아(我)>라고 하고 무산계급을 <비아(非我)>라 한다.

뿐만 아니라 학문이나 기술, 직업이나 의견, 그 밖의 어떤 부분에서든 반드시 본위(本位)인 <아(我)가 있으면 따라서 아(我)와 대치되는 <비아(非我)>가 있는 것이다. <아(我)> 내부에도 <아(我)>와 <비아(非我)>가 있고 <비아(非我)>안에도 또한 <아(我)와 <비아(非我)가 있다.

그리하여 <아(我)>에 대한 <비아(非我)>의 접촉이 빈번하고 심할수록 비아(非我)>에 대한 <아(我)>의 투쟁도 더욱 맹렬하여 인류사회의 활동이 멈출 때가 없고 역사의 전도(前途)도 끝날 날이 없다. 그러므로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의 기록이다.

 

<아(我)>도, <아(我)와 상대되는 상대되는 <비아(非我)>의 <아(我)>도, 역사적인 <아(我)가 되려면 반드시 다음의 두 개 속성(屬性)을 가져야 한다.

 

1, 상속성(相續性) : 시간적으로 생명이 끊어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2, 보편성(普遍性) : 공간적으로 영향이 파급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인류를 제외한 다른 생물들의 경우에도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없지 않으나, 그러나 그 <아(我)>의 의식이 너무 미약하여 상속적(相續的), 보편적(普遍的), 이 되지 못하므로, 결국 역사란 인류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사회를 떠나서 개인적인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도 없지 않으나, 그러나 그 <아(我)>의 범위가 너무 약소하고 또 상속적 보편적이 되지 못하므로, 인류로서도 사회적 행동인 경우에만 역사가 되는 것이다. 동일한 사건일 경우에도 두 가지 속성 - 상속성 . 보편성 - 의 강하고 약함(强弱)에 따라서 역사의 재료로 될 수 있는 분량이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한데, 예를 들어 김석문(金錫文)은 3백 년 전에 지전설(地轉說)을 주창한 조선의 학자이지만, 그의 지전설에 <브루노 (1548 - 1600), 이태리 사람으로 지원설을 주장하여 화형을 당했음)>의 지원설(地圓說)과 동등한 정도의 역사적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이유는, 부르노의 지원설은 그 학설로 인하여 유럽 각국에서 탐험 열기가 한껏 달아 올라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하기에 이르렀지만, 김석문의 지전설은 그런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金錫文(1658 - 1735) : 조선 후기(英祖) 때의 성리학자. 통천 군수 역임.역학(易學)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 천문 지리학까지 공부하였으며, 청나라에 온 서양 신부의 책을 통해 지원설(地圓說) 및 프톨레미의 천동설(天動說)과 지구를 중심으로 달과 태양이 회전하여 우주를 형성한다는 이론을 알고 나서 한발 나아가 지구 자체도 남북극을 축으로 제자리에서 1년에 366회전 한다는 지전설(地轉說)을 주장하였다. 저서로는 <역학도해(易學圖解)>가 있다. - 옮긴이)

정여립(鄭女立 : 조선 선조 때 역모 사건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죽었음. - 옮긴이)은 4백 년 전에 군신강상설(君臣綱常說) : 임금은 신하에 대하여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이 된다는 동양 전래의 유교적 학설)을 타파하려고 했던 동양의 위인이지만, 그를<민약론(民約論)을 쓴 "루소(j. j Rrousseau)와 동등한 역사적 인물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당시에 정여립의 주장에 다소 영향을 받은 인계나 양반살육계 등 전광석화처럼 한때 반짝했던 움직임이 없지 않았으나, 그러나 루소의 <민약론>에 영향을 받아 그 후 거대한 파도처럼 장엄하게 전개된 프랑스 혁명에는 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非我(비아)>를 정복하여 <아(我)>를 드러내면 투쟁의 승리자가 되어 미래 역사에서 그 생명을 이어가고, <아(我)>를 소멸시켜 <비아(非我)>에 공헌하는 자는 투쟁의 패망자가(敗亡者)가 되어 역사에 그 흔적만 남기는데, 이는 고금(古今)의 역사 속에 바뀔 수 없는 원칙이다.

승리자가 되려 하고 패배자가 되지 않으려 하는 것은 인류의 공통된 본성인데도, 매번 기대와는 달리 승리자가 아니라 패배자가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무릇 선천적(先天的) 실질(實質)로 말하면 <아(我)>가 생긴 뒤에 <비아(非我)>가 생긴 것이지만. 후청적(後天的) 형식(形式)으로 말하면 <비아(非我)>가 있은 뒤에 <아(我)>가 있게 되는 것이다.말하자면, 조선민족 - 즉, <비아(非我)>-이 있게 되는 것이니, 이는 선천적인 것에 속한 것이다. 그러나 만일 묘족(苗族) . 한족(漢族) 등 <비아(非我)>인 상대자가 없었다면 조선이란 국명(國名)을 세우거나 삼경(三京)을 만들거나 오군(五軍)을 두거나 하는 등 두거나 하는 등 <아(我)>의 작용도 생기지 못하였을 것이니, 이는 후천적인 것에 속한 것이다.

정신의 확립으로 선천적인 것을 호위(護衛)하고, 환경에의 순응으로 후천적인 것을 유지(維持)하는데, 만약 두 가지 중 한 가지가 부족하면 패망하고 말기 때문에, 종교가 성하였던 유태 민족이나 무력을 구비하였던 돌궐이 몰락의 화(禍)를 면할 수 없었던 것은 후자가 부족하였기 때문이며, 공화제(共和制)를 채택하였던 남미와 학문이 흥성하였던 이집트가 쇠퇴의 우환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은 전자가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조선사를 서술하려는바, 조선민족을 <아(我)>단위로 잡고,

(가) <아(我)>의 태어나고 자라고 발달해온 상태를 서술의 제1 요건으로 하고, 그리하여

1) 최초 문명은 어디에서 기원(기원)하였으며

2) 역대 강역(강역)은 어떻게 늘어나고 줄어들었으며

3) 각 시대의 사상(사상)은 어떻게 변천해 왔으며

4) 민족의식은(민족의식)은 어느 때에 가장 왕성하였고, 어느 때에 가장 쇠퇴하였으며

5) 여진(女眞), 선비(鮮卑), 몽고(蒙古), 흉노(匈奴), 등은 본래 <아(我)>의 동족(同族)이었는데 어느 때에 분리 되었으며, 분리된 뒤의 영향은 어떠하였으며.

6) <아(我)의 현대의 지위와 부흥 부의 문제가 성공할지 못할지 등을 나누어 서술하고

(나) <아(我)>와의 상대자인 사방 각 이웃 민족과의 관계를 서술의 제2 요건으로 하고, 그리하여

1) <아(我)>에서 분리된 흉노, 선비, 몽고와 <아(我)>의 문화의 강보(襁報)에서 자라온 일본(日本)이, <아(我)>의 한 부분이 되어 있었던 것이 현재는 그리되어 있지 않은 사실과,

2) 인도로부터 간접적으로, 중국으로부터는 직접적으로 <아(我)가 그 문화를 수입(輸入)하였는데, 어찌하여 그 수입하는 분량이 많아짐에 따라 민족의 활기(活氣)가 여위어가고 강토의 범위는 줄어들었는지,

3) 오늘 이후는 서구의 문화와 북구의 사상(思想)이 세계사의 중심이 되고 있는데, <아(我)>조선은 그 문화사상의 노예가 되어 소멸하고 말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잘 씹어 소화하여 새 문화를 건설할 것인지, 등을 나누어 서술함으로써 앞의 (가), (나) 두 가지로 본 역사의 기초를 삼고

(다) 언어. 문자 등 <아(我)> 사상을 표시하는 연장은 예리한지 둔한지, 그리고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라) 종교가 오늘날에는 거의 가치없는 페물이 되었지만, 고대에는 확실히 한 민족의 존망과 성쇠의 관건이었는데 <아(我)의 신앙에 관한 추세는 어떠하였느지

(마) 학술, 기예 등 <아(我)>의 천재를 발휘한 부분은 어떠하였느지,

(바) 의식주의 정황과 농상공의 발달, 토지 분배, 화폐 제도, 기타 경제 제도 등은 어떠하였는지.

(사) 인민의 이동과 번식, 강토의 신축(伸縮)을 따라서 인구의 가감(加減)은 어떠하였는지,

(아) 정치제도(政治制度)의 변천은 어떠하였는지,

(자) 북벌진취(北伐進取)의 사상(思想)은 시대를 따라 어떻게 진퇴(進退)하였는지,

(차) 귀천과(貴賤)과 빈부(貧富) 각 계급간의 압제와 대항, 그 성쇠(盛衰)와 소장(消長)의 대세는 어떠하였는지,

(카) 지방자치제(地方自治制)가 태고(太古)부터 발생했으면서 근세에 와서는 형식만 남고 정신은 사라져 없어진 원인은 무엇인지.

(타) 외세(外勢)의 침입으로부터 받은 거대한 손실과, 그 반면에 얻은 다소의 이익은 어떤 것인지,

(파) 흉노(匈奴), 여진(女眞), 등이 일단 <아(我)>와 분리된 뒤에는 다시 합해지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하) 옛날부터 문화에 있어서 <아(我)>의 창작이 적지 않았으나, 매번 고립적이고 단편적인 것으로 끝나버리고, 계속적인 것으로 되지 못한 이상한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힘써 참고하며 논의를 전개하여, 앞의 (다), (라), 이하 각종 문제로 본 역사의 요목(要目)을 삼으려 한다. 그리하여 일반 역사 독자들이 조선 면목(面目)의 만분의 일이라도 알게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