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련의 여인 2 / 오남희
날개 접힌 이 시대의 마지막 유물
세월의 풍상에 이끼로 덮인 동구 밖
할머니의 열녀 비문이 햇살을 지핀다
열세 살에 꽃가마 타고 시집와
열다설 살에 홀로 된 할머니의 할머니
대물린 몸짓에 젖어 너덜대는 낡은 허물
불꽃으로 태우고 맨몸으로 천상을 날고 싶으셨을까
함묵 속에 하얗게 녹아내린 구십여 성상
열네 살 새신랑 얼굴이나 기억하실까
열다섯 살 소녀 휘어진 등 위로 핏빛에 물든
산그늘이 가랑비에 젖는다
죽어서도 한에 맺힌 영혼
비문 언저리를 맴도는 산새들의 울음소리가
한 여인의 비련과 동그랗게 엉켜
손녀의 가슴에서 서러운 시간 돋아나 애잔한
갈바람으로 부서져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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