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민달팽이 / 오남희

운우(雲雨) 2019. 9. 22. 15:58

민달팽이 / 오남희

-노숙인

 

 

종일 흥건한 숙취에 젖어

어둠이 오면 어둠을 등에 지고

찬바람이 불면 찬바람을 안고

밀려가는 삶 누가 뭐라랴

 

 

울적하면 허공에 대고 울분을

풀다가 지치면 자고, 가진 게 없어도

이 순간 술 한 잔이면 족하다

 

 

낡은 배낭에 생을 걸머지고

철새처럼 삶을 옮기는

질펀한 육신에 기대 춤추는 혼백

 

 

한때는 꿈꾸는 해오라기

먹이를 잡아 나르는 아비였으리

 

 

배밀이로 기어가는 아스팔트

길 위에서 잃어버린 인격 자존감

널부러져 피가 고인 조각난 생을

별을 향해 깁고 깁는 달팽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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