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봄 / 유안진

운우(雲雨) 2018. 11. 27. 20:07

봄 / 유안진

 

 

저 쉬임 없이 구르는 윤회의 수례바퀴 잠시 멈춘 자리

이승에서, 하 그리도 많은 어여쁨에 흘리어 스스로 발길

내려 놓은 여자, 그 무슨 간절한 염원 하나 있어, 내 이

제 사람으로 태어났음이랴

 

 

 

머언 산 바윗등에 어리운 보랏빛, 돌각담을 기어오르

는 봄햇살, 춘설을 쓰고 선 마른 갈대대궁, 그 깃에 부는

살 떨리는 휘파람, 얼음 낀 무논에 알을 까는 개구리, 실

뱀의 하품 소리, 홀로 찾아든 남녘 제비 한 마리, 선머슴

의 지게 우에 꽃혀 앉은 진달래꽃.......

 

 

처음 나는 이 많은 신비에 넋을 잃었으나, 그럼에도

자리잡지 못하는 내 그리움의 방황 아지랭이야, 어쩔 셈

이냐, 나는 아직 춥고 을씨년스런 움집에서 다순 손길이

기다려지니, 속눈섭을 적시는 가랑비 주렴 너머, 딱 한

번 눈 맞춘 볼이 붉은 소년

 

 

내 너랑 첫눈 맞아, 숨바꼭질 노니는 산골짜기에는 뻐

벅국 사랑노래 자지러지고, 잠든 가지마다 깨어나

며 빠져드는 어리어리 어지럼증, 산 아래 돌부처도 덩달

아 어깨춤 추는, 사방 세상은 첫사랑 앓는 분홍빛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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