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생명 / 김남조

운우(雲雨) 2018. 8. 14. 07:57

생명 / 김남조

 

 

생명은

추운 몸으로 온다

벌거벗고 언 땅에 꽃혀 자라는

초록의 겨울보리,

생명의 어머니도 먼 곳

추운 몸으로 왔다

 

 

진실도

부서지고 불에 타면서 온다

버려지고 피 흘리면서 온다

 

 

겨울나무들을 보라

추위의 면도날로 제 몸을 다듬는다

잎은 떨어져 먼 날의 섭리에 불려가고

줄기는 이렇듯이

충전 부싯돌임을 보라

 

 

금가고 일그러진 걸 사랑할 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

상한 살을 헤집고 입 맞출 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

 

 

생명은

추운 몸으로 온다

열두 대문 다 지나온 추위로

하얗게 드러눕는

함박눈 눈송이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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