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버린 장군
6·25 전쟁에서 연합군 중 프랑스군을 지휘하던
라울 마그랭 베르느레 중장은 제1차 세계대전 참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독일군을 상대로 나르비크 전투를
승리로 이끈 맹장이었습니다.
전쟁 후 3성 장군까지 계급이 올라갔지만,
6·25 전쟁에 참전할 때는 5단계나 계급이 내려간
중령 계급장을 달고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 유린당한 나라를
재건하던 프랑스는 해외에 대규모의 파병을 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 생각한 라울 마그랭 베르느레 중장은
제2차 대전에 참전한 경험 많은 예비역을 주축으로
일부 현역 자원병을 지원받아 대대 단위의 부대를 창설했고
스스로 지휘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국방차관이 중장이라는 높은 계급으로
대대장을 맡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하자
스스로 계급을 중령으로 강등하고
참전한 것입니다.
당시 그에게는 새로 태어날 자녀까지 있었기에
아내뿐만 아니라 주변 모두가 만류했지만,
그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나에게 계급은 중요하지 않다.
곧 태어날 자식에게 유엔군의 한 사람으로서
평화라는 숭고한 가치를 위해 참전했다는
긍지를 물려주고 싶다"
그렇게 대대장이 된 라울 마그랭 베르느레 중령은
1951년 2월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 전투에서
중공군과 북한군의 공세를 막아내어 유엔군이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 혁혁한 전공을 세웠습니다.
지평리 전투 당시 프랑스군은 중공군 3개 사단에
완전히 포위된 상황이었으나 사흘간의 백병전에서
중공군을 격파했으며 유엔군이 중공군을 상대로 거둔
첫 승리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전쟁사를 살펴보면
라울 마그랭 베르느레라는 이름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유 프랑스군에서
활약할 때 사용한 가명인 '랄프 몽클라르'라는 이름을
6·25 전쟁 당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목숨을 걸고 싸웠던
당시의 이름을 6·25 전쟁에서도 상기시켜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군인에게 계급이란 때로는 목숨보다도 소중한
그동안의 명예가 담겨 있는 상징과 같은데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서
계급을 낮춘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는
평화와 자유 등 많은 소중한 것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더욱 그 많은 희생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 오늘의 명언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한국을 끝까지 지키겠다.
– 월튼 워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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