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맏딸 / 화운 임승진

운우(雲雨) 2020. 3. 22. 14:19

맏딸 / 화운 임승진

 

 

가난한 노모는 외롭지 않다

허리가 점점 꼬부라지고

무릎이 화끈화끈 삐걱거리지만

하루하루 위태로운 날들을

그나마 지탱할 수 있으니 고맙다

 

 

숱한 계절이 스쳐 간 고향산천이

어찌 변했는지 궁금해도

부담 줄까 내색하지 못하고 있으면

속을 들여다본 듯 집 앞에 차를 대기시킨다

 

 

입맛 없어 기운 깔아질 때쯤

골목골목 맛집 찾아 데려다주니

갈수록 짧아지는 세월 앞에서

넉넉히 해준 게 없어 명치끝이 저린다

 

 

다만, 새날이 밝아오면 일어나 앉아

여러 자식 걱정에 무릎 꿇으면

유독 마음고생 잦을 날 없는

맏자식 생각에 눈물 고이는 아침

 

 

"기도밖에 해줄 게 없어 미안하다.

그래도 네가 있어 힘이 난다."

아프게 잠기는 목소리를 감추며 전화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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