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풀 / 김수영

운우(雲雨) 2019. 12. 18. 08:40

풀 / 김수영

 

 

풀이 늙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가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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