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비련의 여인 2 / 오남희

운우(雲雨) 2019. 10. 4. 07:25

비련의 여인 2 / 오남희

 

 

날개 접힌 이 시대의 마지막 유물

세월의 풍상에 이끼로 덮인 동구 밖

할머니의 열녀 비문이 햇살을 지핀다

 

 

열세 살에 꽃가마 타고 시집와

열다설 살에 홀로 된 할머니의 할머니

대물린 몸짓에 젖어 너덜대는 낡은 허물

불꽃으로 태우고 맨몸으로 천상을 날고 싶으셨을까

 

 

함묵 속에 하얗게 녹아내린 구십여 성상

열네 살 새신랑 얼굴이나 기억하실까

열다섯 살 소녀 휘어진 등 위로 핏빛에 물든

산그늘이 가랑비에 젖는다

 

 

죽어서도 한에 맺힌 영혼

비문 언저리를 맴도는 산새들의 울음소리가

한 여인의 비련과 동그랗게 엉켜

손녀의 가슴에서 서러운 시간 돋아나 애잔한

갈바람으로 부서져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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