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운우(雲雨) 2019. 4. 8. 05:29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사람의 운명이란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이런 글을 쓰면 그렇지 않다는 말로 반대의 편에 설 사람이

많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그러나 나는 세상을 지금 것 살아오며 노력하면 운명은 얼

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란 생각으로 살아 왔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결

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끝없이 노력하며 내게 주어진 운명의 굴레를 벗어 보려 무

던이도  노력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제자리였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내 자리를 더 좋은 곳으로 바꾸

어 보려고 노력했지만 언제나 내자리는 그 자리였다.

 

그렇게 70여 년이란 세월이 흐르고서야 조금씩 운명의

굴레가 벗겨져 가고 있는 느낌이다. 하는 것마다 실패였던

것이, 이 나이가 되어서야 조금씩 풀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있기 때문이다.

 

허기사 너도 나도 대통령이 된다면 낮은 자리에서 있을 자 

누구며 높은 자리에 앉아 있을 자 누구인가?  누구도 낮은

자리에서 일만 꾸역꾸역 하다 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

다.

 

마치 벌과 개미의 세계가 그런 것처럼 인간계도 그와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개미도 일 개미는 일 개미로 태어나 일만 하다 죽는 것이고,

벌도 일 벌은 일 벌로 태어나 일만 하다 죽는 것이다. 

 

이렇게 태어나 일만 죽도하다가 죽는 사람이나 개미나

벌들의 일생이 무엇이 다른가?

 

어느 방송국에서 뭐든 하면 잘되는 사람과 했다하면 실패

하는 사람을 반반으로 뽑아 심지뽑기를 시키는 것을 방

송으로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뭐든 하면 된다는 쪽은 심지 뽑기를 해도 되는 것이

고  역시 안 되는 쪽은 심지뽑기를 하는 족족 안 되는 것이

다.

 

그 방송을 보며 역시 안 되는 사람은 무엇을 해도 안되는구

나 하며 가지고 태어난 운명은 결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된다는 것을 느낀 적이 있다.

 

그러나 운명이란 끝까지 그런 경우가 있고 어떤 경우는 인

생의 끝자락에서 반등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보았다.

 

반등이란 그냥 주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란 것이다. 감나무

에서 감이 떨어질 때를 기다리며 입을 벌리고 있다고 감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스스로 감이 떨어지게 자신이 노력을

했을 때만이 그 기회를 신(神)은 주는 것이다.

 

인생이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어 죽도록 고생을 했지

신(神)은 인생 막판에 반등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 해놓았다

는 것이다.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운명을 가지고 태나지만 마지막에

반등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해 놓았다는 것을 알기에 인생

은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것을 느끼며 오늘도 힘을 내어 다

시 뛰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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